수세기에 한사람 나올까 말까한 천재가 여러 가지 말을 남겼다.
본인은 어디에 어떤 말을 남겼는지 모르지만 엮은이는 여기 저기 그가 쏟아낸 글들 속에서 주옥같은 생각들만 골라 ‘니체의 말’이라는 책으로 출간했다.
그런 글들은 많은 생각을 가지고 꼼꼼히 읽어야 한다.
그래서 책의 내용도 한 페이지에 한 가지 주제만 설정해 성글게 엮었다.
170여년 전 인물이 남긴 이야기지만 지금의 우리 생각이 그를 따라가지 못한다.
생각과 망각은 역사와 더불어 진화되지 못하고 계속 되풀이되나보다
엮은이가 니체의 말을 정리하며 느낀 생각을 들어보자.
‘애매한 상태로 완충 지대에 남아 있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인생의 본질이란 유동과 생성 속에 있기 때문이다.
애초에 완충 지대란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런 결단도 내리지 않으면 세상의 탁류에 쓸려 갈 뿐이다.
더불어 높은 곳을 향하기 위해서는 험준한 낭떠러지를 등반 할 때와 다름 없는 수고와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고통은 그만큼 자신을 성장 시키고 보다 많은 쾌락을 가져다 줄 수 있다.
그 쾌락은 이 삶을 살게 되어 다행이라고 여기는 긍정과 종국에는 모든 세상사와 풍경을 긍정 하는 것마저 아우른다.
바로 이것이 니체가 명명한 성스러운 긍정이다'
이제 니체의 말을 새겨보자.
국가는 궁극의 목표를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추잡하고 비인간적인 행위를 아무렇지 않게 신성화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국가의 존립 목표가 국가의 유지라는 것은 근거 없는 소리다.
국가의 권력 체제에 모여드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 이익을 보전 하는 데 혈안이 된 자들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고작 국가를 위해 자신의 이상을 버리거나 가치관을 바꿀 필요가 없다.
오히려 자신의 이상을 달성하기 위해 국가를 희생시키는 것이 더 충실한 삶을 사는 것이다
이 세상으로부터 도망치지 마라
모든 것은 이 세상에서 비롯되었음을 잊지마라
지독히 강하고 인정사정없는 적과 맞닥뜨려 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그때야말로 기뻐하며 맞서라
운명이 당신에게 최고의 승리를 안겨 주기 위해 그를 보냈다
당신은 운명에게 최고급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자신이 무서운 존재로 각인되길 원한다면 무서웠던 체험을 천천히 진지하게 들려주어라
냉혹한 이로 기억되길 바란다면 냉혹했던 체험을 난해한 사람으로 여겨 지 길 원한다면 얽히고설켜 복잡했던 체험을 들려 주면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어난 일과 그 일을 체험한 사람을 분리해 생각하지 않는다
둘을 같은 것이라고 혼동 하며 한 가지 색으로 인상을 물들여 버린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사회 속에서 타인과의 교제를 통해 자신의 순수성을 현저하게 잃어간다
심지어 비열해지기까지 한다.
가치평가를 교묘하게 포장하고 있다.
실제로는 살인에 지나지 않는 것을 전쟁, 분쟁, 사변. 전란, 탄압, 진압, 평정, 혁명,테러리즘이라 부르는 것처럼
타인 앞에서는 소중한 친구에 대해 이것저것 설명하거나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우정은 말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것이기에 그것을 어떻게든 말로 설명하려하면 아무래도 본질을 벗어나는 법이다.
같은 고통을 함께 체험하게 되면 둘은 거의 흡사한 사람이 된다.
동물들은 인간을 이렇게 말한다.
'그저 솔직하게 하루하루 살아가면 될 것을 이러쿵저러쿵 늘 괴로운 표정만 짓잖아'
자신의 재능을 아낌없이 발휘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를 겸비해야 한다.
바로 감사하는 마음과 인간으로서의 순수성이다.
나이가 몇 살이든 사람은 무한히 변할 수 있다.
자신의 가치관과 주장을 똑바로 말하라.
대중 속에 섞여 있으면 개인의 이해력과 판단력은 휘발되고 그 집단을 대변하는 사고방식과 판단에 완전히 물들어 버린다.
매서운 기세로 공격해오는 적의 모습을 또렷이 직시하면 적을 무너뜨릴 싸움의 기술을 발견할 수 있다.
일상의 행동 하나하나가 자신을 새롭게 만들고 변화를 유도한다.
하나의 사실이 있고 그에 직면한 당신이 있다.
이윽고 당신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그 사실은 비로소 가치와 색채를 띈다.
공정하다는 것은 무엇과도 누구와도 일정한 거리를 두고 그것을 유지해 나가는 것이다,
공정한 이의 모습은 고독해 보이는지도 모른다.
허영심이 강한사람은 자신이 타인보다 잘 나보이는 것 외에 관심이 없다.
책을 쓴다는 것은 무언가를 통해 자기를 극복했다는 일종의 증거다.
낡은 자기를 뛰어넘어 새로운 인간으로 탈피했다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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