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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지혜를 찾아서/인문학 산책

면도날(서머싯 몸)

by 굼벵이(조용욱) 2019. 1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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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면도날이란 제목을 선택했는지 모르겠다.

역자는 작품해설을 통해 주인공 래리가 육체는 속세에 있으나 정신은 속세에서 보금자리를 찾지 못하는 어중간한 경계인으로 본다면 면도칼의 날은 그러한 래리의 실존적 위치를 나타내는 하나의 상징물로 해석할 수 있다고 하였다.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작가 몸이 친구인 소피를 죽게 한 이사벨의 잘못된 생각과 행동을 캐묻는 질문이 면도칼처럼 날카롭게 정곡을 찔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생의 마지막까지 귀족 사교계 파티에 몰입한 엘리엇,

동서양을 넘나들며 초지일관 구도의 길을 간 래리,

안락한 부를 택하며 래리와 파혼했음에도 친구를 죽게 하고서라도 사랑하는 래리를 차지하려는 팜므파탈 이사벨의 식을줄 모르는 사랑,

순수한 영혼이 남편과 아이를 순식간에 잃는 고난을 이기지 못하자 극도의 타락과 죽음으로 치닫는 소피,

창녀생활을 통해서라도 살아남아 자신의 재능을 살려내고 상류사회로 진입하는 수잔,

모두 완벽한 삶의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다.

구도자의 삶만이 바른 삶이 아니고 모두 각자가 살아가는 삶을 해피엔딩으로 만드는 삶이 바른 삶이 아닐까 싶다.

각자 그렇게 자신만의 삶을 꽃피우면 되는 것이다.

그런 모습들을 보여줌으로써 삶을 면도칼처럼 분석한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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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모든 것을 끝내며 따라서 포괄적인 결론이다.

그런데 마치 극단이 망한 후라 이제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져서 먼지 가득한 구석에 쌓여 있는 꼭두각시 인형들 같다는 느낌이 드는 거야.

래리가 너한테 했다는 그 말 있지, 죽은 사람은 정말로 죽은 사람처럼 보인다는....그때 나도 그런 느낌이었어.

 

중요한건 남여가 처음 잠자리를 가질 때가아니에요

두 번째 중요한 거라구요.

두 번째 잠자리에서 남자를 잡아둘 수 있으면 그를 영원히 잡아둘 수 있어요.

 

의식은 수면에 비친 나무의 그림자처럼 나무 없이는 존재할 수 없지만 나무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는 논리지.

나 역시 같은 생각이야.

성적인 열정 없이 사랑이 존재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

 

사랑이 열정이 아니라면 그건 사랑이 아니라 다른 것을 사랑으로 착각하는 거지.

그리고 열정은 서로 만족할 때 커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장애가 있을 때 더욱 커지는 법이지.

 

“래리에 대한 네 사랑도, 너에 대한 래리의 사랑도 파올로와 프란체스카의 사랑이나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만큼이나 자연스럽고 단순한 거야.

다행히 네 경우엔 비극적인 결말을 맺진 않았지.

너는 부유한 남자와 결혼해서 잘 살았고, 래리는 세이렌이 무슨 노래를 부르는지 밝혀내기 위해 세상을 떠돌아다녔으니까 너희 둘 사이엔 열정이 개입되지 않았어.”

“선생님이 그걸 어떻게 아세요?”

 

“열정은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으니까.

파스칼은, 가슴은 이성이 이해하지 못하는 나름대로의 이유를 갖고 있다고 말했지.

내 생각이 맞는다면 그건 열정이 가슴을 사로잡으면 가슴은 사랑을 위해 세상을 잃어도 좋다는 것을 입증할 만한 그럴 듯한, 심지어는 결정적인 이유들을 만들어 낸다는 뜻이야.

그래서 명예를 희생시켜도 좋고 치욕도 그리 큰 대가가 되지 않는다는 확신을 주지.

열정은 파괴적인거야.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트리스탄과 이졸데, 파넬과 키티 오셰이도 결국 열정 때문에 파멸로 치닫고 말았잖아.

그리고 열정은 무언가를 파괴하지 않으면 소멸해 비려.

그러고 나면 수년 동안 인생을 허비했다는 걸 깨닫고 비참한 기분이 들겠지.

사람들에게 망신을 당하면서 무서운 질투의 고통을 견뎌내고 그 모든 쓰디쓴 치욕을 삼켜야 하는 순간이 올 테니까.

자신이 가진 애정을 전부 가난한 매춘부한테 소진했음을, 어리석고 하찮은 존재에게 자신의 꿈을 모두 걸었음을, 껌 한 쪽만도 못한 상대에게 영혼을 전부 쏟아 부었음을 깨닫는 비참한 순간이 찾아오는 거지.”

 

여자의 직감은 그 여자가 믿고 싶어 하는 것과 너무도 잘 맞아떨어지기 때문에 도무지 믿을 수가 없다.

 

아무리 가벼운 여자라도 상식과 착한 성품만 갖고 있으면 그리 어렵지 않게 삶을 꾸려나갈 수 있을 것이다.

 

수잔은 묘한 말주변을 가진 여자였다.

자신이 하는 말의 의미를 내 판단에 맡긴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를 사랑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란 걸 직감으로 알고 있었어요.

여자들은 정말 불행한 존재에요.

사랑에 빠지면 매력이 없어지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래서 더 이상 그에게 빠져들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했죠.

 

난 지금껏 래리처럼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행동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그의 행동들이 그렇게 유별나게 느껴지는 거죠.

신은 믿지도 않으면서 모든 행동을 신의 사랑 때문인 것으로 돌리는 사람한텐 적응이 안 되잖아요.

 

정숙해 보이는 여자일수록 묘하게도 외설스러운 것들을 많이 알고 있는 법이다.

 

사람은 자신을 희생시키는 순간 하나님보다 훨씬 더 위대한 존재가 되지.

왜냐면 전지전능한 하나님도 자신을 희생시키진 못했으니까.

기껏해야 자신의 독생자 그러니까 예수만 희생시켰지.

 

성이 난 듯 거친 숨소리, 누구든 쉽게 들을 수 없는 가장 두려운 그 소리에 화들짝 놀라 정신이 번쩍 들었다

흔히 임종 때의 가래 끓는 소리였다.

나는 침대로 가서 등대의 불빛에 의지하여 엘리엇의 맥박을 확인했다.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침대 옆의 램프를 켜고 그를 보았다.

턱이 축 처져 있었다

미처 감지 못한 눈을 감겨 주려다가 잠시 그 안을 들여다보았다.

울컥했다.

뺨을 타고 눈물 몇 방울이 흘러내렸을 것이다

다정했던 옛 친구.

그의 인생이 얼마나 헛되고 어리석고 보잘 것 없었는지를 생각하니 슬픔이 밀려왔다.

수많은 파티에 참석하면서 그 모든 공작, 백작들과 허물없이 지냈지만, 이제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미 그를 잊었으니까.

 

제가 보기에 당신은 신앙과 거리가 멀다고 하지만 그 거리는 얇은 종잇장 두께에 불과합니다.

 

베토벤이 자신의 영광을 위해 교향곡들을 만들었을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마음속에 존재하던 음악을 어떻게든 표현해야 했고, 그래서 자신이 아는 방법을 총동원하여 최대한 완벽하게 만든 것뿐이죠.

 

당신은 하느님은 안 믿지만 매우 종교적인 사람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을 찾아내실 겁니다

당신은 반드시 돌아옵니다.

이곳이 될지 다른 곳이 될지는 오직 하느님만이 아시겠지요.

 

젊다는 것은 그 자체로 천국이 될 수 있다.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신은 신이 아닙니다.

어느 누가 무한한 존재를 말로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윤회가 세상의 악에 대한 설명이 되는 동시에 그것을 정당화한다고 생각해 본 적 있으세요?

우리가 겪는 나쁜 일들이 전생에 지은 업보라면 그저 단념하고 견뎌내려고 노력하지 않을까요?

그 과정에서 선을 추구하면 다음 생에서는 고통이 줄어들 거라는 희망을 가질 수도 있고요.

하지만 자신이 겪는 악이나 불행은 비교적 쉽게 견딜 수 있죠.

 

바다에서 증발한 물이 소나기가 되어 웅덩이를 이뤘다가 개천으로, 시내로 흘러들잖아요.

그런 다음 이리저리 굽이치고 돌멩이와 나뭇가지에 부딪치며 산골짜기와 넓은 평원을 지나 강으로 홀러 들고, 마침 내는 처음 있던 곳-즉 끝없는 바다에 도달하죠.

그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지만 모든 곳에 존재하는 것

만물에 내재되어있지만 동시에 만물이 의존하는 대상, 사람도 아니고 사물도 아니며 원인도 아니죠.

속성도 없고요.

항구불변도, 가변도 초월한, 전체이자 부분이고 유한하면서 무한한 존재에요.

시간에 따라 완성되지도 완벽해지지도 않는다는 점에서 영원하죠.

그것은 진리이자 자유입니다.

 

“먼 훗날 사람들이 좀 더 커다란 통찰력을 얻게 되면, 결국 자신의 영혼에서 위안과 용기를 찾아야 한다는 점을 깨닫게 되지 않을까요?

개인적으로 저는 어떤 대상을 숭배하고자 하는 욕구가 잔인한 신들에 대한 기억의 잔재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즉. 잔인한 신들의 비위를 맞춰줘야 한다는 기억의 잔재라는 것이죠.

신은 제 안에 있는 게 아니라면 어디에도 존재할 수 없다고 저는 믿거든요.

 

주관과 객관의 이원성이 사라지고 절대지가 되는 상태를 삼매라고 합니다.

깨달음을 얻었다는 건 마침내 무지의 굴레를 깨고 나와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절대자가 합치되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겁니다.

 

나는 웃으면서 새끼손가락과 엄지손가락을 맞붙여 보였다

“그것이 인간과 영장류에게만 가능한 일이라는 사실, 알고 계십니까?

우리 손이 그토록 훌륭한 도구가 될 수 있는 건 엄지손가락이 다른 손가락들과 마주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들도 오직 악과 결합해야만 존재할 수 있는 게 아닐까요.

 

인도 현자들의 주장 가운데 가장 꼭 들어맞는 것을 한 가지 꼽자면 성적 금욕이 정신력을 크게 강화해 준다는 것이죠.

 

저는 인간이 세울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이상이 자기완성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렇다면 그것을 추구하려는 게 가치 있는 일이 아닐까요?

 

돈은 나한테 내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줬거든

그건 바로 자유지

선생님한텐 돈이 자유를 의미하지만 저한테는 속박이 될 뿐이죠

 

작가는 몇 달에 걸쳐 책 한 권을 완성하는데 독자는 이 세상에 할일이 하나도 없을 때까지 그 책을 아무데나 놓아둔다고 생각하니 우울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