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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지혜를 찾아서/인문학 산책

김 약국의 딸들( 박경리)

by 굼벵이(조용욱) 2019. 1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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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 그녀는 한과 설움의 작가다.

근세 사람들의 아픔을 그녀만큼 잘 표현하는 작가도 드물다.

‘토지’는 그 결정판이다.

책을 읽다보면 너무 아파서 책을 놓을 수가 없다.

근세 여성들의 불행한 삶을 제대로 그렸다.

통영 부호 김약국과 그의 딸들의 몰락과정을 통해 우리나라 근세의 사회상 특히 여성들의 삶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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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민족의 정의가 승리한 일은 없었다

힘이 승리 했었지 카르타고의 시민이나 한니발은 애국심이 모자라서 멸망 하였느냐

대영 제국은 정의의 기치 아래 그 방대한 식민지를 획득하였느냐

어떠한 사상이나 이념 따위는 일 없는 사람들의 소일거리일 뿐이다.

착각하지 마라.

공연이 애국심이니 역사니 하고 자신을 과대하게 꾸며서 우쭐대는 영웅주의자가 되지 말란 말이다

나는 명확하게 충고 해 두겠다

차후 다시는 그 콩밥을 먹지 않게 조심 하란 말이다

 

(의사인 정윤이 날카로운 이성을 번득이며 독립운동 한답시고 나대다가 수감되었던 동생 태윤에게 건네는 충고다.

젊은이가 너무 무관심한 것도 문제지만 소영웅주의에 빠져 우쭐대며 자신의 본질을 망각하고 경거망동하다 인생을 망쳐버린 사람들에 대한 경고다.

내가 생각해도 맞는 말이다.

나이 들어 젊은 날의 나를 반추해 봐도 박경리 작가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계집질하고 노름 하는 놈에게는 밑천을 당해주우도 씹음질 하는 놈한테는 돈을 안 대 준다는 말이 있지

아 계집도 잘 만나믄 덕을 보는 수가 있고 노름도 잘만 하문 수가 터지지만 씹음질이사 나올 구멍이 있나 계집이 군것질 심하문 서방질하고 사내가 군것질이 심하믄 도둑질 하지.

 

(군것질 습관의 무서움을 이 글을 통해 느낄 수 있다.

집사람 군것질이 매우 심한데 큰일이다.)

 

흔히 주색에 빠지고 방탕함으로써 인생을 죄 되게 보낸 사람이 있다

그러나 그런 탕아의 좌절 이상으로 죄악적인 타인에 대한 무관심, 자기를 위한 성문을 굳게 지켜 온 이기적인 김약국이 지금 자기의 육체가 허물어져 가는 마당에서 어떤 마음이 반려자를 구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는 애써 지켜온 고독, 그 고독을 즐기기 조차 했던 지난날에 비하여 너무나 비참하게 그 고독을 무서워하고 있는 것이다

 

(나도 그럴까 겁이 난다.

고독을 즐기는 연습을 하고 고독과 더불어 살아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어느 날 비참하게 그 고독을 무서워하는 날이 올까봐 무섭다.)

 

그는 자살의 유혹을 받은 것이다

불쌍한 것들...

요즘에 와서 곧장 입 밖에 나오는 말이다

이미 무의미하게 된 애정이다

뒤늦게 그의 마음을 사로잡는 마누라와 딸들에 대한 연민이었다

자아 속에서 신음 하던 그는 타아의 인과를 발견하고 타아를 위하여 헛되게 보낸 세월을 후회하는 것이었다

김약국은 마음 속으로 자기의 유산을 셈해 본다

아무것도 없었다

재산과 부채는 꼭 맞먹었다

정국주에게 논문서가 몽땅 넘어간 것은 이미 오래전이다

사랑에 도사리고 앉아 있던 차가운 자기 자신의 모습만이 가족들의 추억 속에 남을 것이란 생각은 그를 더없이 슬프게 하였다

 

(이 대목은 이반일리치의 죽음과 비슷한 뉘앙스를 풍긴다.

나도 무의미하게 된 애정을 되씹을까 겁난다.

아니 이미 그렇게 되어버린 것 같다.

모두 집사람과 아이들에 대한 눈높이를 너무 높은 곳에 두고 있는 탓이다.

모두 내려놓아야 하는데 그게 가족의 가장이다 보니 쉽지가 않다.

갈수록 생각과 행동의 차이는 벌어지고 관계는 더욱더 소원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