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평등 원리의 확산이 현재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확산을 가져왔다.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가 자유 시장경제체제를 보호하고 자유 시장경제체제가 국부를 창출하지만 또다시 어떤 형태로든 계급은 만들어진다.
노예제 하에서 자유를 찾아 자기 해방 운동이 일어났고 그것은 그리스도교의 출현을 가져왔으며 그리스도교의 출현은 자유민주주의라는 정치체제로 변화해 왔다(노예제는 인간의 우월욕망이 만들어낸 제도로 우월욕망을 포기한 그룹이 노예임. 그들은 복종을 천직으로 앎)
정치체제도 경제이론이나 경영이론과 마찬가지로 인간에게 내재된 본능에 기초하는데 후쿠야마가 바라본 정치체제의 근간이 되는 인간 본능은 우월 욕망과 평등주의 그리고 인간은 본질적으로 군거성 동물이기에 어떤 형태로든 집단을 이룬다는 전제이다. 이 전제를 통해 어떻게 하면 개인과 조직(그것이 정치체제이든 경제체제이든 경영체제이든 마찬가지이다) 모두에게 이롭게 할 수 있는지를 도출해 낼 수 있다.
가장 합리적인 결론은 인간 개개인을 평등하게 대해주면서 스스로 우월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분위기를 연출하되 조직이 추구하는 방향과 일치시키는 것이다. 그러면 우월의식이 조직이 추구하는 창의적 아이디어로 이어지고 그것은 곧 조직의 성장과 발전을 의미한다.
그런 면에서 인본주의적 경영이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작은 가족조직이든 큰 국가조직이든 개개인의 본능적 욕망을 충족시키는 방향과 조직의 비전을 일치시키는 것이야 말로 가장 중요한 경영이념 또는 정치이념이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내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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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근본적으로 동물과 구별된다. 왜냐하면 인간은 이러한 자연적 욕구와 더불어 다른 인간의 선망에 대한 요구, 즉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갖기 때문이다. 특히 사람은 하나의 인간으로서 즉 어떠한 가치나 존엄성을 지닌 존재로서 인정받고 싶어 한다.
이러한 인간으로서의 가치 욕구는 순수한 위신을 위한 투쟁에 기꺼이 목숨을 거는 자세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가장 기본적인 동물적 본능 그 가운데서도 특히 자기 보존의 본능을 극복하면서(죽음) 더 고차적인 추상적 원리나 목표를 추구해 가는 존재는 인간밖에 없다.
플라톤은 인간의 영혼에는 욕망, 이성, 그리고 그가 말하는 thymos(튜모스) 즉 패기(우월 욕망+대등 욕망)의(우월욕망+대등욕망)의 세 가지 부분이 있다고 갈파했다. 이는 자존심을 느끼는 속성을 말한다.
자기 생각보다 가치 없는 인간으로 취급당하면 분노를 느낀다. 거꾸로 자기가 생각한 만큼 가치 있는 생활을 하지 못하면 수치를 느끼며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 가치에 적합한 대우를 받으면 긍지를 느끼게 된다.
이러한 결투의 결과 인간사회는 자신의 생명조차 아랑곳하지 않는 주군 계급과 죽음에 대한 본능적 공포에 굴복한 노예 계급으로 분할되었다.
결국에는 주군과 노예 어느 쪽에도 그들에 대한 욕망을 충족시켜주지는 못했다. 노예는 어떤 측면에서도 인간으로 인정받지 못했고 주군은 다른 주군들로부터 인정을 받는 것이 아니고 인간성 자체가 불완전하다고 여겨지는 노예로부터 인정을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헤겔은 미국의 독립이나 프랑스혁명에 의해 역사는 결국 종말을 맞이했다고 주장하였다.
모든 정치적 공동체는 인정에 대한 욕망을 이용하지 않을 수 없으며 동시에 그 파괴적인 효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어야만 한다. 만일 현대의 입헌주의가 만인을 인정하면서도 독재자의 출현을 저지할 수 있는 시스템을 실현해 냈다고 한다면 이러한 정치체계는 이제까지 지구 상에 나타났던 모든 통치체제 중에서 최고의 안정과 장수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정권교체는 구정권 내부에서 일부 세력이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에 권력을 이양한다고 하는 결단을 ‘자발적으로’ 내리고 있음에 기인한다.
정권 승계에 대해 일반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헌법상의 메커니즘이 없는 이상 지도자의 자리를 서로 노리는 경쟁자는 언제나 정적보다 우위를 점하는 수단으로 ‘개혁’이라는 카드를 사용하고 싶은 유혹에 사로잡힌다.
인류는 결코 퇴화하지 않으며 인류의 지혜의 성장과 발전에는 종국이란 없는 것이다.
칸트는 역사의 종점이 있을 것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최종 목표란인간의 자유의 실현이었다.
역사란 문명 파괴의 연속인데 어떤 문명도 그 문명에 선행된 시대의 유산을 파괴함으로써 더욱 고도의 생활수준을 수립하는 길을 개척해 갔던 것이다.
헤겔은 “세계사는 자유에 대한 인지가 발달되어 가는 것”이외에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고 했다.
보편적 역사란 모든 인간에게 평등하게 자유가 부여되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고 그 점을 헤겔은 “동양의 나라들에서는 단지 ‘한 사람의 인간’만이 자유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 그리스 로마 세계에서는‘일부 사람’만이 자유라고 여겼다. 그런데 현재의 우리들은 ‘모든 인간’이 절대적으로 자유롭다는 것을 알고 있다.
헤겔에 따르면 인간적인 욕망이란 원래 일정한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시기와 문화에 따라서 변해간다고 했다.
우리들의 현재의 욕망은 사회의 환경에 좌우되고 있는데 그 사회 환경은 또 과거의 역사 전체로부터 발생된 것이다. 그리고 어떤 욕망의 특정 대상이란 시대와 함께 변화해 온 ‘인간 본성’의 단순한 한 측면에 불과하고 시대의 변화에 따라 무엇이 중요한 욕망인가 하는 기준도 인간성의 다양한 측면과 관련하여 변화해 왔다.
유독 폐기물의 폐기든 열대우림의 채벌이든 환경을 가장 많이 파괴하는 것은 개발도상국이다. 상대적 빈곤을 해결하려면 천연자원을 개발하는 것 이외에는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오히려 부국이 자원을 보호한다. (북한과 남한의 산을 비교해 보면 안다)
중앙계획경제는 가장 귀한 인적자산 즉 근로를 선으로 하는 노동윤리를 엉망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노동의욕을 부정하는 사회 경제적인 정책을 채택하면 아무리 견고한 노동윤리도 파괴되어버린다.
정치체계가 어떻든 쇄국정책을 유지한 채로 근대화를 수행한 국가는 지금까지 세계적으로 볼 때 한 나라도 없었다. (1982 등소평 연설에서)
좌익세력은 처음에는 빈곤을 식민지주의 탓으로 돌렸고 식민지가 소멸되면 “신 식민지주의”탓으로 최후에는 다국적 기업 탓으로 할 수가 있었다.
인류가 이미 역사의 종점에 도달했다는 코제예프의 주장은 인정받기 위한 욕망이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갈망이라고 하는 그의 견해에 기초하고 있다.
니체가 말하는 최후의 인간의 본질은 승리를 거둔 노예이다.(자유를 찾았으니...) 그리스도교는 노예의 이데올로기이고 민주주의는 그리스도교의 세속화된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는 헤겔의 설에 니체는 전적으로 동의한다.(나도 동의)
‘누가 존경해 주는가?’라는?’ 문제로 귀착한다. 인정해준 상대가 어떤 인물인가에 따라 만족감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노예에게는 근대적인 의미의 정치적 권리는 하나도 없지만 혈연과 노동, 종교 등에서 결합된 아담하고 안정된 사회집단의 일원이 되면 설사 봉건영주로부터는 종종 착취와 박해를 받는다고 해도 서로 인지하고 서로 존경해 간다. 그에 비해 거대한 아파트 군에서 생활하는 현대 도시 주민은 국가로부터는 인정을 받을지 모르지만 함께 생활하고 노동하는 동료에 대해서는 완전한 타인인 것이다.(노예만도 못한... 우리들)
니체는 실로 탁월한 인간성, 위대함, 혹은 고귀함을 발견할 수 있는 장은 귀족사회뿐이라고 생각했다.(난 지금도 그렇다고 생각) 진정한 자유와 창조성은 ‘우월욕망’ 요컨대 남보다 뛰어난 존재로서 인지시키고 싶다는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현대사회의 귀족은 스스로 귀족적인 생각과 프라이드를 가지고 귀족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 아닐까?)
진정한 탁월은 그것이 어떤 형태로든 자신에 적대하는 자신의 일부이고 궁극적으로는 모든 고통을 동반하는 자기와의 투쟁 즉 고통에서 시작된다고 니체는 지적했다.
노동은 하나의 즐거움이기 때문에 인간은 여전히 일한다. 그렇지만 인간은 그 즐거움이 너무나 고통스러운 것이 되지 않도록 주의한다.
자유민주주의가 생활의 장으로부터 ‘우월욕망’을 성공적으로 추방하고 그것을 합리적 소비로 대체해 가면 그만큼 우리들은 최후의 인간으로 근접해 가는 것이다.
곰곰이 살펴보면 자유민주주의는 과도한 우월 욕망 혹은 과도한 대등 욕망에 의해서 안쪽으로부터 뒤집어질 우려가 있다. 그중에서도 민주주의에 있어서 더 큰 위협이 되는 것은 최종적으로는 대등 욕망이라는 것이 나의 직관이다.
헤겔은 전쟁의 위험성과 전쟁에 뒤따르는 희생이 없어지면 인간은 연약해지고 자신에게만 탐닉하게 되어버린다고 했다. 그리고 사회는 이기적인 쾌락주의로 변모하게 되어버린다고 생각했다. (지금의 우리나라 사회가 그의 견해와 정확히 일치한다. 결혼 거부, 출산 거부, 정치 거부 따위의 현상들이 바로 전형적인 이기적 쾌락주의의 예다) 인간의 주군이며 지배자인 ‘죽음’에 대한 공포는 특별한 힘을 갖고 있고 사람들은 자신의 틀로부터 밖으로 끌어내면서 그들이 독립된 원자와 같은 존재가 아니라 이상을 서로 나눈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해 준다.. 같은 자유민주주의에서도 스스로의 자유와 독립을 지키기 위해 거의 매 세대마다 단기간의 단호한 전쟁을 할 수 있는 사회는 평화만이 계속되는 사회보다 훨씬 건전하고 충족된 상태가 될 것이다. 이러한 헤겔의 전쟁관은 흔히 겪게 되는 전쟁체험을 반영하고 있다. 왜냐하면 전쟁에서 사람은 확실히 지독한 고통을 맛보지만 만약 공포와 비참함은 거의 느끼지 않고 살아남았다고 한다면 이 경험 덕분으로 전쟁 이외의 사물을 모두 어떤 관점에서 조망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 영웅주의보다는 우정이나 용기에 더 가치를 두게 됨
낯익은 사람은 하나도 없었지만 전원이 뜨거운 감정을 공유하고 있었다. 전쟁이다. 전쟁이다. 그리고 모두가 하나로 결속되었던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역사는 영속적으로 발전하는 게 아니고 오히려 순환하는 것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어떤 정권도 어딘가 불완전하고 그 때문에 사람들은 항상 자신이 살고 있는 정부를 무엇인가 다른 형태로 바꾸고 싶다고 바라게 되기 때문이다.
욕망과 이성만으로 이루어져 있는 최후의 인간의 사회는 이윽고 인정만을 추구하는 짐승과 같은 최초의 인간의 사회에 길을 양보하고 마침내 그 역현상이 반복되고 그리고 이 역사의 동요가 끝없이 반복되어간다고.
패기는 이성에 의해 지배되어야 하고 욕망의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
최선의 정치체제를 실현하는 것은 지극히 어렵다. 왜냐하면 그와 같은 정치체제는 인간의 전체, 요컨대 이성, 욕망 그리고 패기를 동시에 만족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대등 욕망’만을. 자유주의 사회는 설령 모두가 공공연하게 믿고 있는 원리와는 상반되는 것이라도 안전하고 길들여진 ‘우월욕망’을 어느 정도까지는 용인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헤겔도 마르크스도 인간사회의 진화는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욕구를 채우는 사회형태가 출현했을 때 종말을 고할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 관념론에서는 인간다움에 대하여 이성과 욕망만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이라는 것을 포함하여 생각했던 것이다.
역사의 출발점에서 순전히 인지를 위한 투쟁이 주군과 노예의 관계를 낳고 이 주종관계는 다종 다양한 형태의 불평등한 귀족제 사회를 낳았으며 그것이 인류사 태반을 특징짓게 되었지만 결국 그것으로는 주군과 노예 어느 쪽의 인지에의 욕망을 채울 수 없었다. 노예는 물론 어떤 점에서도 인간으로서 인정받지 못했다. 그러나 주군도 자기가 인정받았다고 만족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다른 주군으로부터 인정을 받은 것이 아니고 자기를 인정해 주는 노예들은 불완전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귀족사회에서는 결함투성이의 인정 밖에 받을 수 없다는 사실에의 불만이 하나의 모순을 만들었고 그것이 역사의 다음 발전단계를 낳게 된 것이다. 주종관계에 원래 갖춰져 있던 내부 모순이 프랑스혁명에 의해 그리고 미국 독립혁명에 의해 마침내 극복되었다고 헤겔은 생각했다.
인간의 ‘패기’에는 두 종류가 있다고 저자는 생각하고 있다. 하나는 타인보다 우월함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목숨도 아끼지 않겠다는 의미의 패기(우월 욕망)와(우월욕망)와 또 하나는 타인과 동등하게 인정받고 싶다는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을 이루는 패기(대등 욕망)이다.(대등욕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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