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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지혜를 찾아서/자기계발 산책(2011이전)

뇌 생각의 출현(박문호 지음)

by 굼벵이(조용욱) 2020. 1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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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은 하나의 주제에 대한 다양한 변주곡일 뿐입니다.

 

상식과는 달리 성질이 급하거나 화를 잘 내는 것이 판단력에 도움이 됩니다.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한 사람들은 그래서 심리적으로 약간 조증이라는 기사도 있습니다.

 

이 책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이 충분한 학습량이 있어야 번뜩임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창의성 역시 머리가 좋은 사람이 아무런 정보도 없이 갑자기 뚝딱하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고 창의성도 정보의 양이 먼저 충분해야 합니다.

그래서 어느 분야든 창의적인 결과를 내려면 10년 이상 학습에 몰입하여 집대성해야 합니다.

이 점을 간과해선 안 됩니다.

 

창의성의 전제조건은 공부의 양입니다.

일단 정보량이 임계치를 넘어서야 합니다.

임계치를 넘은 정보는 질로 바뀝니다.

 

그리고 이 번뜩임은 강렬한 감정과 연결됩니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 창의적인 사람은 감정이 풍부해야 합니다.

그래서 자녀를 공부 잘하게 하고 싶으면 어릴 때부터 감정이 풍부하게 하는 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감정과 기억은 거의 비슷한 뇌 영역에서 생성됩니다.

즉 감정이 풍부하면 기억력이 좋죠.

 

창의성이 뛰어난 사람이 되려면 임계치에 해당하는 10년 이상의 정보를 모으고 모은 정보를 편집해야 한다는 것이죠.

정보와 정보를 변형시키고 새로운 정보와 정보를 연결시키는 정보의 편집이 바로 창의성을 키우는 과정이라는 겁니다.

 

우라늄을 농축해서 임계질량을 넘어서야 핵분열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인간지능도 똑같아요.

양이 임계치를 넘는 순간 질로 바뀌는 거죠.

그 전까지는 어떻게 해도 질로 바뀌기가 어렵습니다.

 

정약용은 강진에 유배 가서 다산초당에 있었던 11년 동안 엄청난 양의 데이터베이스에 접속하고 있었어요.

그 데이터베이스가 바로 해남 윤씨들이 축적한 천여 권 이상이 되는 장서죠.

중국을 왕래하면서 모은 그 당시의 서양과학책들도 있었습니다.

정약용의 외가 쪽으로 쭉 올라가면 고산 윤선도가 있는데 정약용의 외가가 바로 해남 윤씨 종가입니다.

 

지금까지 3차원 공간의 어떤 위치를 점하는 물체의 집합을 세계라고 생각해 왔는데 사실 우리가 물체로 인식하는 것은 특정한 사건의 연속이라는 것입니다.

우주에 존재하는 것은 시간 밖에 없다고 보면 됩니다.

 

죽음은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다.

현재, 과거, 미래라는 구분은 인간의 고집스런 관념에서 생긴 것이다.

 

모든 사건은 과거에 일어났고 현재에 일어나고 있고 미래에 일어날 예정이 아니라 하나의 시공간 안에서 한꺼번에 존재한다.

이들은 시공간의 한 점을 점유한 채 영원히 그곳에 있을 것이다.

 

시간의 속성을 살펴보자면, 끊임없이 흐르는 강물이라기보다는 모든 순간이 한꺼번에 얼어붙은 거대한 얼음 덩어리에 가깝다는 것이죠.

우리는 시간이 흘러간다고 생각합니다.

공간은 고정되어 있습니다.

공간상에서는 모든 것이 명확하죠.

그냥 보입니다.

여기서 저기로 이동할 수 있죠.

이것이 공간의 속성입니다.

그런데 시간상에서의 미래는 볼 수 없지 않습니까?

다만 시간이 흘러가면 미래와 만난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런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죠.

시간도 공간처럼 꽁꽁 얼어붙어있다는 것이죠.

흐르는 강이 아니라 한꺼번에 모든 순간이 얼어붙어있는 강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생각이라는 것도 대칭과 비대칭의 붕괴를 끊임없이 일으키며 계속 움직여 갑니다.

생각의 대칭과 대칭 붕괴를 일으키는 가장 큰 원동력은 바로 학습입니다.

 

학습기억의 특징은 끊임없이 에러를 수정하는 것입니다.

한번 배우면 평생 잊지 않는 생존을 위한 절차 기억과

한번 형성되면 결코 바꾸지 않는 신념기억과는 대조적이죠.

학습기억은 10세 전후에 급격히 증가합니다.

25세쯤 되면 절정에 이르고 35세쯤 되면 안정적이다가 60세 이후에는 급격히 줄어듭니다.

 

학습을 하면 기억 시스템이 바뀝니다.

그리고 학습 행태를 중심으로 학습 부재형, 학습 최소형, 학습 주도형으로 학습의 관점에서 사람들을 살펴볼 수 있죠.

 

오픈 시스템 즉 유연한 사고를 가진 사람들의 기억을 보면 학습 기억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예를 들면 대학생은 절차기억이 10%, 신념기억이 20%, 학습기억이 70% 정도라면 대학시절 이후에는 학습기억이 30%로 줄어들면서 신념기억이 60%정도 올라갑니다.

즉 나이가 들어가면서 학습부재형의 완고한 인간이 되는 거죠.

자기가 알고 있는 몇 가지 고정된 신념체계가 생각의 유연성을 가로막는 거죠.

종교나 정치적 도그마에 빠진 사람들이 그렇죠,

 

신념기억은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는데 강력한 추진력을 주지만 방향을 잘못 설정하면 다른 사람들과 충돌을 일으킵니다.

 

학습 최소형은 생계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학습만 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많죠.

책을 읽어도 현실적인 책만 읽습니다.

그런데 그 현실적인 독서는 현실적으로도 성공하지 못합니다.

10년 전과 지금은 변화 속도가 너무 빠릅니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빠릅니다.

그래서 현실적인 학습만 할 경우 현실을 따라가지 못합니다.

현실변화의 방향은 현 상황을 구성하는 요인에서 생성된 것이고 그런 현실 구성요소들의 대부분은 외부에서 생성된 것입니다.

 

100명에 한두 명 있을까 말까 한 특이한 형태가 학습주도형입니다.

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적극적으로 학습하는 사람들입니다.

대부분 독서를 통해 배우죠.

오픈시스템을 향해 살고 있는 이 사람들의 학습기억은 가파르게 올라갑니다.

융통성과 판단력, 비전이 탁월해지죠.

학습주도형의 사람에서는 신념기억이 균형 잡힌 지식의 힘으로 제어되어 맹목성이 올바른 방향의 추진력이 되는 순기능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융통성, 판단력, 비전이 탁월한 학습주도형 인간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첫째, 지식의 수준을 높여야 합니다.

시간과 에너지를 자연과학의 고급 지식을 쌓는데 투자해야 합니다.

둘째, 질문을 품어서 성장시켜야 합니다.

도를 깨치기 위해서는 의심 덩어리가 커야 하고 강렬한 내적 에너지가 있어야 한다.

질문의 힘으로 대상을 보기 시작하면 결국 그 질문이 스스로 답을 찾죠.

셋째, 학문에 미쳐야 합니다.

어느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는 미친 듯이 몰아붙여야 합니다.

보통은 5, 좀 어려운 분야는 10년 단위로 계획하여 스스로 각 분야를 조망할 만큼 학습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술이든, 철학이든, 자연과학이든 그 어떤 분야가 되었든 5, 10년씩 완결하여 50년 공부할 것 같으면 적어도 다섯 가지 이상의 다른 분야를 섭렵할 수 있습니다.

네 번째, 중요합니다. 학습의 균형을 잡아야 합니다.

자연과학 대 인문과학의 비율을 7:3정도로 만들어야 합니다.

자연과학은 수학을 바탕으로 하는 학문입니다.

자연과학은 나이 40이 넘어서는 힘듦

 

다섯 번째, 목표량이 중요합니다.

임계치를 넘어서는 양은 질로 바뀝니다.

그 임계치를 책으로 치면 3천권 정도 될 것입니다.

자연과학 대 인문과학 7:3으로 해서요.

이를 집요하게 읽다보면 정보가 서로 링크되면서 정보들 사이에서 변화가 일어납니다.

양이 질로 바뀌는 거죠.

이에 덧붙여서 양질의 정보, 양질의 책을 선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두 번 읽을 가치가 없는 책은 한번 읽을 가치도 없다고 합니다.

하버드 대학 교육의 최종 목표는 좋은 책인지 그저 그런 책인지를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결국 생각의 출현으로 가는 길에는 융통성과 판단력, 비전이 탁월한 학습주도형 인간이 서 있습니다.

스스로 대칭을 깨뜨리고 다시 대칭으로 향하는 것이죠.

우주 초기의 대칭이 깨어져 나타난 것이 뇌, 의식의 출현 아니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