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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의 역사(용욱이의 내면세계)/2002

20020618 이제부터 나는 새로운 나만의 인생을 시작하고자 한다

by 굼벵이(조용욱) 2021.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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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6.18 이제부터 나는 새로운 나만의 인생을 시작하고자 한다

 

두어 달 전부터 시작된 나의 지적 욕구에 대한 충동은 결국 오늘부터 일기라도 꼭 써야겠다는 발상으로 전환되었다.

두어 달 전 회사에서 독서경영을 시작하였고 나는 여러 분야 중 자기계발 분야의 독서를 선택했다.

처음에 내가 시작한 책은 내 안의 천재성을 일깨워라였다.

이어서 스피드 공부법을 읽었다.

이 두 권을 읽으며 나는 그동안 무의미하게 방치했던 나의 지적욕망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그 후 나는 앞으로 1년에 적어도 100권 정도의 독서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게 발단이 되어 엊그제는 구본형씨의 '익숙한 것과의 이별'을 읽었다.

그분은 내게 참으로 중요한 것들을 일깨워 주었다.

그 중 내 인생에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가져오게 한 두 가지 제언이 있었다.

하나는 자기 안의 욕망을 흐르게 하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적어도 하루에 두 시간은 자기를 위하여 쓰라는 것이었다.

이 두가지가 결국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나는 체면 따위에 얽매여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얼마나 많이 억제해 왔는지 모른다.

내겐 남들이 모르는 콤플렉스까지 있다.

사실 난 백화점이나 마켓에서 물건을 구매하는 즐거움을 느끼지 못한다.

즐거움을 느끼지 못한다기보다는 구매행위 자체를 죄악시 여긴다.

내가 유년기를 보낸 시기는 배고팠던 60년대였다.

따라서 절약이 미덕이고 소비는 악덕이었다.

또한 군사부일체의 유교사상도 지금보다 강해 선생님의 가르침은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절체절명의 도덕률이었다.

더군다나 내게는 초등학교 2학년 때 부터 줄곧 반장이라는 임무가 주어졌다.

내가 다닌 학교는 평택의 작은 시골마을 안중초등학교였는데 한 반에 대략 70명 정도가 득시글거리고 한 학년이 5개 반으로 구성되어 있는 제법 큰 학교다.

그 때부터 남녀공학의 효과성 검증을 위한 시범교육이 시작되었는데 내가 그 첫 번째 시범반인 2학년 5반에 편성되었고 따라서 나는 6학년때까지 붙박이로 남녀 혼성반에서 공부해야 했다.

부끄럼도 많이 타고 순해 빠진 품성을 타고난 데에다 여자애들 앞에서 모범을 보여야 했으니 반장으로서 생각과 행동이 얼마나 부담스러웠겠는가!

 

장담컨대 나는 안중초등학교 시절 내가 직접 십리사탕을 사 본 적이 없다.

우리집이 안중초등학교에서 딱 십리 떨어져 있다.

학교 앞에서 십리사탕 한 알 물고 터벅터벅 걸어서 집 근처까지 오면 사탕이 다 녹아 한가운데 아주 작은 점만 남는다.

한껏 단맛을 누리며 집까지 가려면 절대로 사탕을 깨물면 안 된다.

너무 사탕을 빨거나 입안에서 자주 돌려도 안 된다.

그런 십리사탕이 그 어린 나이에 얼마나 먹고 싶었겠는가!

그래도 나는 그걸 직접 사 먹지 못했다.

그 때는 사 먹는다고 하지 않고 까 먹는다는 표현을 썼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구매행위를 비하하기 위해 그런 표현을 쓴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럼 내가 어떻게 십리사탕을 까 먹었을까?

가게에서 10여미터 떨어진 곳에서 친구에게 돈을 주고 사탕 구매를 대행시켰다.

그 때는 그러면 죄가 없거나 가벼워지는 줄 알았으니까.

형법상 공동정범이고 교사범에 해당하지만 그 때는 그렇게 알았다.

그러면서도 나는 반장이기에 다른 아이들이 가게에서 까먹는 현장을 보면 기억했다가 칠판 귀퉁이에 오늘 까먹은 아이이름을 적어야 했다.

그러면 까먹은 애는 선생님한테 꾸지람을 들었다.

거기서 오는 심리적 갈등이 얼마나 컸겠는가!

결국 그건 일종의 트라우마가 되어 평생 나를 괴롭혔다.

나의 시간과 노동을 팔아 고귀하게 벌어들인 돈으로 정당한 구매행위를 하는데 지금도 죄책감을 느낀다니 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일이란 말인가!

'익숙한 것과의 이별'을 읽은 이후 나는 이와 유사한 것 들로부터 탈출해야 한다는 강한 의지가 생겼고 하나하나 내 생각과 행동을 교정해 가기로 했다.

아울러 적어도 하루에 한 시간 만이라도 나를 위하여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다짐하고 오늘 아침부터 한 시간씩 일기를 쓰기로 한 것이다.

 

내 나이 마흔 다섯!

인생의 최고 정점에 있다.

이제부터 나는 나만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