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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의 역사(용욱이의 내면세계)/2002

20020703 부패 불합리와의 전쟁

by 굼벵이(조용욱) 2021. 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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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7. 3 : 부패 불합리와의 전쟁

 

회사 생활은 늘 전쟁 같다.

회사 직원들이 퇴직 후에도 심리적 동요 없이 소프트 랜딩 할 수 있도록 안정적인 퇴직관리를 위한 아웃플레이스먼트 서비스 제도 도입을 입안했다.

하지만 새로운 제도를 도입할 때는 반드시 사전에 일상감사를 받아야 한다.

말이 일상감사지 일상 간섭이고 사전통제다.

CEO에게 함부로 정책제안을 못하게 통제하는 데 그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정책 입안서류를 사장 보고 직전에 감사실 일상감사부서에 감사 의뢰했더니 담당자가 나를 소환했다.

그는 내 입안서를 보고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원자력 전문가가 첨단 인사노무분야 정책 입안서를 쉽게 이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내게 감사를 한답시고 감사실 AJH가 질문을 퍼붓는데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엉뚱한 질문들만 이어졌다.

입안서의 본질도 이해하지 못하고 지엽적이며 본안과 상관없는 질문부터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 되묻는 것까지 되지도 않는 질문으로 진을 뺐다.

정책 입안에 까지 일상감사라는 불필요한 절차를 억지로 거치게 한 것은 견제와 균형을 이루겠다고 하는 감사의 지나친 욕심 때문에 생겼다.

감사의 의지라기 보다는 감사실 종사자들이 자신들의 위상을 높이려는 욕심에서 생긴 것이라는 표현이 더욱 적합하다.

조직이 생기면 언제나 일을 만들어 조직을 불린다는 파킨슨의 법칙은 어디에나 존재하니까.

사장에 대한 감사의 통제가 아니라 감사의 사장에 대한 월권이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엄청난 시간과 돈 그리고 인력낭비가 생긴다.

그러니 구석구석 이와 유사한 공기업의 비효율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본업은 뒷전에 두고 허구한 날 감사다 뭐다 해서 도둑 잡기 놀이만 해대니 순경 무서워 회사가 정상적으로 돌아갈 리가 만무하다.

그러니 모두 책임지기 싫어서 직무권한 상 자기가 결정할 수 있는 일도 최대한 윗사람에게 결정을 넘긴다.

더욱 가관인 것은 입안내용의 본질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감사권을 주어 감사를 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감사를 기안자에게 배워가면서 한다.

더욱 가관인 것은 감사인이 그 배운 지식으로 판단하여 자기 생각과 다르면 이를 잘못되었다고 지적한다.

이 얼마나 한심한 노릇인가!

어제는 오후 한 시부터 무려 2시간 동안 질리도록 감사를 받았다.

감사를 받았다기 보다는 감사인을 가르쳤다는 표현이 더욱 적합하다.

나와 감사면담이 끝난 뒤 그는 다시 자재관리처 LJH를 불러다가 또 그렇게 나와 똑같은 방식으로 허송세월했다.

LJH 역시 정책입안 과정에서 내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하여 가르쳐 놓은 사람인가!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겼을 때 발안자의 생각이 입안되어 확정되려면 먼저 자기 상사가 그 뜻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설득해야 한다.

그 과정도 진을 빼는데 여기저기 관련 부서까지 돌면서 온갖 사람들을 설득해야 하고 사장보고 직전엔 감사까지 이렇게 골탕을 먹인다.

공기업 방만경영 이야기의 근원이 바로 이런 불합리한 구조에서 나온다.

일상감사도 직접 감사를 담당하는 실무자부터 마지막 감사까지 층층시하 차례차례 윗사람들을 설득하여야 하는데 그 과정 또한 이루 말할 수 없이 짜증나고 고통스럽다.

감사 라인 층층에 입안자가 직접 가서 설명, 설득, 교육까지 시키는 과정은 웬만한 인내심으로 견뎌내기 힘들다.

그래서 아무리 좋은 생각도 아예 시도하지 않는 편이 훨씬 더 낫다.

힘들여서 어렵게 일해 봐야 칭찬이나 혜택이 돌아오기는커녕 감사에 정신적 스트레스만 돌아올 뿐이다.

KT에서 아웃플레이스먼트 업무를 용역수행 하다가 학을 떼고 물러났다는 모 사장의 말이 실감났다.

사 창립 기념행사에 참석했다가 8시 넘어 돌아오니 책상에 AJH로부터 전화를 부탁한다는 메모가 놓여있었다.

그때부터 또 똑같은 이야기를 30분이 넘도록 그 앞에서 지껄였다.

내가 설명을 못하는 것인지 그가 돌대가린지 구분이 가지 않자 짜증이 목울대까지 올라왔다.

차라리 다 때려치우고 그만두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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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상가상이란 말이 있다.

재수 옴붙은 날이란 말도 있다.

한번 나쁜 일이 터지만 온 종일 나쁜 일이 이어서 터진다.

강남지방 노동사무소에서 전화가 왔다.

곧 터질 풍선처럼 거만이 부풀어 오른 모 주사가 동물농장의 돼지 나폴레옹보다 더한 거드름을 피우면서 내게 내일 아침 11시 까지 출두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회사 분할시 모회사인 우리회사로 복귀하지 못하고 자기 소속 자회사로 강제파견된 직원들이 노동위원회와 노동사무소에 각각 진정을 제기한 사건 때문이다.

그런데 동일 건이어서 쌍방당사자가 합의하여 서울 지방노동위원회의 결정을 따르기로 도장까지 찍었고 서울 지방노동위원회에서는 쌍방 당사자가 화의하여 이미 종결 처리한 사항을 다시 조사하겠다고 나를 소환하는 것이다.

하도 어이가 없고 기가 막혀 사실관계를 상세히 설명했는데도 무조건 내일 11시까지 출석하라며 으름장을 놓았다.

이런 경우 올바른 공무원은 합의제 상위 기관에서 내린 결정을 존중하여 자신에게 주어진 사건도 그 결정 취지에 따라 종결처리한다.

하지만 이 친구는 노동위원회와 노동사무소는 별개이고 자신은 당해사건과 우리회사에 대한 노동사무소 근로감독관이니 내 권리를 행사하겠다며 거드름을 피우는 것이다.

진정인이 진정을 취하한다는데 진정인도 아니고 회사 측 당사자인 내가 왜 가야 하는가 하고 물었더니 무조건 나오라는 명령이다.

법리상은 그의 생각이 맞을 수 있다.

근로감독관은 진정 여부와 상관없이 불법행위를 감시감독 해야 하니까.

하지만 나라가 시켜 억지로 행한 회사분할이고 진정 철회를 상호 합의한 데에다 상급기관인 노동위원회에서 이미 결정한 사안이라면 이런 사안을 제 잣대로 다시 조사하겠다고 나대는 것은 특별한 문제가 있어서라기보다는 젯밥 때문이란 생각을 버릴 수가 없었다.

모두가 썩었다.

아주 철저하게 부패 되어 있다.

그러고도 나라가 발전하고 회사가 망하지 않는 것은 그동안 무지무지하게 운이 좋았다는 말 밖에 달리 표현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