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7. 4 : 지치지 않는 열정, 부패 불합리와의 본 게임
어제 결국 강남지방노동사무소엘 갔다.
칼을 쥔 자 앞에서는 무릎을 꿇어야 산다.
권한 있는 공무원의 적법한 소환인데 불응하면 해를 초래한다.
노동사무소로 출발하기 전 또 감사실의 소환을 받았었다.
감사실 AJH랑 아웃플레이스먼트 서비스 제도 도입과 관련해서 짜증날 만큼 계속 논쟁이 오고 갔었다.
가끔 엎친 데 덮친 격, 설상가상이 이어지는 날이 있는데 어제가 딱 그날이다.
회사에서 10시쯤에 출발했는데 도착하니 10시 30분 쯤 되었다.
약속시간이 11시인데 바로 들어가기 무엇해서 시간 맞춰서 들어가기로 했다.
일단 민원실로 들어가 앉아서 “권력을 경영하는 48법칙” 책을 읽었다.
정확히 10시 55분에 일어서 6층 감독과에 들어섰다.
자리에 앉아 감독관 LJK와 잠시동안 눈으로 기싸움을 했다.
아무리 감정을 통제하려 해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눈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내가 전날 통화한 회사 측 당사자임을 밝혔는데 갑자기 진정인인 PJH는 왜 안 왔냐고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되물었다.
진정인에게 연락을 안 했냐고 묻기에 언제 내게 연락하라고 했느냐고 되물었더니 어이없어 하는 표정이었다.
소환의 주체는 자기고 나는 피진정인인데 내가 왜 나를 진정한 진정인에게 연락을 해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데 그게 당연한 양 나의 행태에 자기가 어이없어 하는 모습을 보니 내가 더 어이가 없었다.
차라리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그는 내게 진정인의 연락처를 묻기에 진정서에 나와 있는 것 아니냐고 되물으려다가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연락처를 알아내 알려주었다.
그리고 난 후 그 녀석은 무얼 찾는 척하며 슬그머니 내 앞을 떠나 다른 컴퓨터로 가 앉더니 30분이 넘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그게 나를 엿 먹일 생각으로 벌이는 행각이라는 걸 잘 안다.
그렇다고 내가 그런 놈의 심리전에 말려들 사람도 아니다.
오히려 되받아치기로 했다.
나는 곧바로 가방에서 신문을 꺼내 들고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어 가장 거만한 자세로 차근차근 신문기사를 훑어나가기 시작했다.
그 신문에서 6촌 동생 YI가 이번 월드컵에서 삼성 연수원 지원팀장으로서 폴투갈 선수단에게 적극 지원하며 많은 활약을 한 것이 소개된 것을 보았다.
동생이 참 자랑스러웠다.
그때 지난번 서울 지방노동위원회 사건 당시 본 사건을 다루었고 내게 많은 도움을 주었으며 재무처 LKH을 앞세워 내가 근사하게 밥도 샀던 LJA 감독관이 나를 불렀다.
LKH와 LJA는 전북의 작은 시골마을 친구 사이여서 그를 로비스트로 활용해 밥을 샀던 거다.
우리는 어떤 어려움이 닥치면 전국에 산재한 인맥을 두루 활용해 막힌 언로의 물고를 튼다.
그건 양의 동서를 막론하고 통용되는 네트워킹의 기본이다.
그녀는 지방노동위원회에서 같은 사건이 종결되기 직전에 강남지방노동사무소로 전근해 왔었다.
그녀가 미에로파이버 한 병을 주기에 극구 사양했더니 화를 내기까지 하였다.
둘이 마주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LJA도 내가 왜 여기 소환돼 와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의아해했다.
제자리를 떠난 지 정확히 30분이 지난 11시 28분에 LJK가 다시 나타났다.
나는 그에게 어슬렁어슬렁 다가앉았다.
그가 컴퓨터 자판을 독수리 타법으로 두드리며 몇 가지 질문을 했다.
내가 보기엔 사건을 종결처리 하는데 별 도움이 안 되는, 다시 말해 있으나 마나 한 진술을 받아내더니 내게 읽고 도장 찍으라며 건네주자마자 ‘배고파 죽겠네’, ‘빨리 밥 먹으러 가야 하네’ 하면서 혼자 지랄 염병을 떨었다.
내가 누군가?
그런다고 말려들 사람도 아니고 오히려 더욱 그를 화나게 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나는 여유 있게 한 자 한 자 천천히 읽은 뒤 그가 잘못 타이핑 하거나 잘못 복사한 부분을 지적하여 다시 수정하게 한 후 지장을 찍고 그 자리를 나왔다.
아마 그놈도 그러는 내가 미워서 내가 그동안 이를 간 것보다 더 심하게 갈았을 것이다.
이토록 인생은 언제나 행 불행, 고통과 즐거움이 동일한 파고로 파장을 이루며 계속 이어지는 파동이다.
그래서 남의 눈에 눈물나게 하면 제 눈에 피눈물 나게 된다는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LJB가 LCH와 점심 약속이 있다고 해 뛰다시피 전철역으로 가 약속장소에 겨우 합류할 수 있었다.
점심 먹는 자리에서 그동안 가슴에 쌓인 이야기를 그들에게 토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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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는 감사실 AJH가 또 와보라고 했다.
첫 번째 지적은 입찰 제한 조건이 과도하게 책정된 것 같다는 지적이었다.
이에 나는 우리회사를 진정으로 위하는 감사실이라면 오히려 감사실에서 입찰 제한조건을 더 강화하라고 해야 할 것이라고 말해줬다.
법에서 정한 최대한의 절반 밖에 안 되는 수준의 제한조건을 과다하다고 주장하는 것도 정말 우스운 일이다.
그것도 감사실에서.
다음은 그가 성과 측정결과에 따라 용역비를 지급할 것을 주장하였다.
일테면 창업률이나 취업률 따위를 적용해 성과를 높이자는 주장이다.
나는 이 서비스는 심리적인 가치판단이 따르는 문제로 창업률이나 취업률을 억지로 설정할 경우 그 목표 달성을 위하여 서비스의 본질을 흩트리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그걸 설정할 수는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안으로 수혜대상자에게 회사가 만족도 조사를 해서 일정비율 이상 나오지 않을 경우 제한할 수 있는 방안은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 마디 더 붙였다.
OOO의 KSJ 사장이 OO사 서비스를 포기한 이유가 OO사 감사실과 감사원의 지나친 자료요구로 본업 수행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했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말해줬다.
전부가 이런 식이니 회사가 제대로 될 리 만무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그저 하루 이틀 서류를 쳐다보며 수 개월여에 걸쳐 전문적으로 검토해 만든 보고서에 책임지지도 못할 자기 의견을 달겠다고 나서니 회사가 제대로 되겠는가 말이다.
참으로 한심한 Process다.
구석구석 이런 것들로 회사가 멍들게 되는 것이다.
거기다가 그는 내게 구체적인 계획을 더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그게 일상감사에서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인지 나는 잘 모르지만 그러면 난 포기하고 더이상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했다.
인내심의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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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엔 연구원의 모 부처장과 안동갈비에서 식사를 했다.
사업소에서는 내게 많은 욕을 하겠지만 전체를 바라보는 본사의 어려움이 얼마나 큰지에 대해 그에게 설명했다.
법령의 테두리를 지키면서 경영정책을 만들어 모든 사업소를 통제하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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