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7. 30(화) : 여름휴가
7. 26일부터 시작한 휴가가 어제로 끝났다.
사실 30일까지 휴가를 냈었지만 임시국회가 열리는 날이고 H처장님 휴가도 마침 어제부터 시작되어 걱정하시기에 내가 30일에 출근하겠다고 미리 말씀을 드렸었다.
그런데도 Y팀장은 임시국회 자료준비에 대한 불안 때문에 엊그제 S과장을 시켜 내게 일찍 돌아오라는 전화를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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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26일 10시에 속초로 출발하였다.
특별한 여행계획 없이 시도한 휴가였다.
조금 불안하기도 했지만 어차피 휴가는 사서 하는 고생이라고 생각하니 차라리 마음이 편해졌다.
집사람은 계획 없이 그러는 날 영 못 마땅해 했다.
속초는 미시령을 넘지 않고 일부러 한계령을 넘기로 했다.
잘 뚫린 길보다 꼬불꼬불한 옛길이 더 운치 있고 여유로워 즐거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산 중턱에 이르니 거기까지 내려온 비구름이 시야를 가려 3미터 앞도 볼 수 없었고 덕분에 길을 잘못 들어 산속을 헤매며 산길을 다시 한 바퀴 도는 결과를 초래했다.
양양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오후 4시 경에 연수원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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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T과장과 JIK원장이 우리를 99횟집으로 안내했다.
얼마나 푸짐하게 잘 차렸는지 기가 질려 회 몇 점만 집어 들었다.
연수원으로 돌아와 인근 맥주집 “터”에서 맥주 한잔 더했다.
다음날 아침 속초를 출발하여 남으로 남으로 향했다.
내려가는 도중 KET가 계속 전화를 했다.
자기도 울산을 향해 출발할 것이니 울산에서 조인하자고 했다.
아무런 구속 없이 그저 발길 닫는 곳에서 야영하며 휴가를 보내려고 했던 내 생각이 친구의 강권에 무너져 내렸다.
속초에서 울산까지는 시간이 꽤 걸렸다.
아침 10시쯤 출발했는데 저녁 8시가 넘어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ET네 가족이 먼저 와 설치한 텐트 옆자리에 우리 텐트를 친 후 저녁식사를 하러 횟집으로 갔다.
KET는 그런 놀이 준비에 참으로 주도면밀 하다.
덕분에 늦은 밤 바닷가에서 부서지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맥주도 마실 수 있었다.
장거리 운전에 몸이 많이 피곤한 상태였으므로 텐트로 돌아와 몸을 눕히자마자 깊은 잠에 빠졌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니 안경이 사라졌다.
분명 머리맡에 놓고 잠을 청한 기억이 있는데 밤사이 뒤척임에 흘러내려 내가 온몸으로 안경을 짓이기는 바람에 안경다리가 휘고 한쪽 알은 깨져 있었다.
할 수 없이 선글래스를 꺼내어 끼고 아침식사(라면)를 준비했다.
라면 물은 속초에서 내려오면서 떠온 약수로 했다.
KET는 울산의 골목길조차 훤히 알고 있었다.
덕분에 가장 빠른 길을 이용해 부산 그의 사택까지 쉽게 갈 수 있었다.
가는 길에 황령산 봉수대에 들렀다.
산 꼭대기에 자리한 봉수대에 오르느라 내 차가 많이 힘들어했다.
너무 가파른 데에다 파워엔진 조차 가끔씩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겨우겨우 산을 올랐다.
황령산은 부산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올 만큼 우뚝 서 있다.
서울로 치면 부산의 남산인 셈이다.
내려와 짐을 푼 후 광안리 해수욕장으로 나갔다.
아이들이 해수욕을 즐기는 동안 집사람 그리고 ET 처와 함께 안경 수리에 나섰다.
안경점 세 군데를 들러보았지만 제대로 된 수리를 받을 수 없어 응급조치로 싸구려 안경알로 우선 갈아 끼웠다.
림스치킨 한 조각을 먹은 뒤 ET네 집으로 돌아와 ET와 수산시장엘 갔다.
음식점으로 가는 것 보다는 시장에서 직접 물고기를 사다 먹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고 위생적이었기 때문이다.
도다리 1킬로를 세꼬시로 만들었고 도미 한 마리를 추가로 회쳤다.
물고기를 잡아 회를 뜨는 시장 아줌마는 하루종일 입을 가만히 두지 않았다.
ET는 그런 아줌마를 좋아하는 눈치다.
쉴 새 없이 손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그녀의 모습이 좋아보이는 모양이다.
얼마 전 읽었던 ‘펄떡이는 물고기처럼’에 나오는 주인공 생각이 났다.
그녀도 그 책의 주인공처럼 수산시장에서 열정적으로 자신의 일에 몰입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집들은 주로 호객행위에만 열중하는 듯했다.
이 집은 버글거리는 손님과 주인아줌마가 끊임없이 수다를 떨고 있었다.
수다를 떠는 중에도 회 뜨는 그녀의 손놀림은 완벽한 神技를 보여 주고 있었다.
삶은 그런 거다.
그렇게 열정을 가지고 자신의 일에 몰입하면서 현재를 사는 것이 행복이다.
싱싱한 회와 소주로 저녁식사를 마친 뒤 해수욕장 앞 야외카페로 나갔다.
지난번 부산에 왔을 때도 그는 나를 그리로 인도했었다.
이번에도 그는 집사람을 위해 그 자리로 안내했다.
피자 한 조각을 시켜 안주로 삼으며 맥주를 마셨다.
돌아와 잠을 청하니 눕자마자 골아떨어졌다.
아침에 ET가 출근하는 모습을 보았지만 일부러 모른 체 했다.
그가 나간 후 기상하여 그의 처가 준비한 아침을 먹었다.
칼치 구이를 준비했는데 입 안에서 살살 녹았다.
아침 식사를 마친 후 우리 가족은 경주로 향했다.
ET가 일부러 전화해 가는 길을 정확히 안내해 주었고 덕분에 어려움 없이 부산을 빠져나와 서울로 향하는 고속도로에 진입할 수 있었다.
신라 천년의 고도 경주에 들러 여기저기 사진을 찍었다.
아이들 교육 목적도 있어서 포석정에서부터 불국사까지 두루 들렀다.
박물관은 마침 휴관이었기에 멀리서 에밀레종만 바라보는 것으로 대신했다.
불국사에 들어서자마자 웬 아저씨가 우리 가족 사진을 찍어주겠다며 다가와 내 카메라를 낚아채서는 이리저리 사진을 찍어댔다.
그러고는 자기의 대형 카메라로 사진을 찍은 뒤 12만원짜리부터 2만원짜리까지 다양한 샘풀을 보여주며 선택을 강요했다.
우리는 제일 싼 2만원 짜리라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고도식당에서 먹은 쌈밥은 기대만큼 맛이 없었지만 교육 목적상 아이들 앞에서 맛있게 먹는 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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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줄곧 서울로 달렸다.
졸음이 쏟아져서 아내와 잠시 교대했다.
서울에 도착하니 저녁 7시가 좀 지났다.
새로 밥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저녁식사로 볼테기찜을 먹으러 갔다.
소주 한 병 곁들여 식사까지 마치니 배가 알 실은 복어 같다.
이것으로 3박 4일간의 여름휴가를 끝냈다.
집사람은 썩 만족한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리 나쁘게 생각하지도 않는 눈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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