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 4.15(화)
오늘까지 교차전적 발령을 내야 했으므로 무척 바빴다.
마침 OO OO승격제를 인트라넷에 공시한 상태였으므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곳저곳에서 이에 관한 문의전화가 쇄도하는 바람에 도저히 차분히 앉아 일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거기다가 처장님이 갑자기 부패방지 리본 패용과 관련해서 장단점을 분석하되 단점을 최대한 부각시켜 10분 내에 검토서를 달라는 주문을 했다.
울리는 전화벨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전화선을 뽑아버렸다.
그랬더니 얼마 후 성질 급한 처장님이 씩씩거리며 내 자리까지 뛰어와서는 대뜸 ‘요즘 구두값이 얼마냐’며 구두값을 내놓으라고 한다.
전화를 안 받아 내 자리까지 걸어오는 동안 구두가 달았다는 것이다.
급히 검토서를 뽑아 가져가니 그래도 화가 누그러진 모양이다.
김처장님 특유의 신경질적 교정작업을 거쳐 보완해 검토서를 만들어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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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차전적은 9명만 받아들여졌고 2명이 자기 소속 전적을 신청해와 모두 발령을 내었다.
전무님에게도 이 사실을 보고하여 일단 교차 전적 건을 마무리 지었다.
앞으로 남은 며칠 동안 지속적으로 자기 소속 전적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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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동호회 ‘1960 파라다이스’ 서울 동쪽 사람들 모임이 있는 날이다.
잠실 전철역 5번 출구에 있는 올림픽 레스토랑에서 모임을 갖기로 되어있어 생전 처음 온라인 친구들을 오프라인에서 만났다.
생각보다 많은 친구들이 모였다.
나를 포함해서 12명(남자 8명, 여자 4명)이 모였다.
처음 레스토랑에 들어섰을 때 회원들이 웅기중기 앉아있는 모습이 무척 생뚱맞게 보였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라 잔뜩 경계심을 가지고 그들을 바라보아서 그런지 남자들은 생김새도 우락부락 한 것이 무슨 깡패집단 같아 보이고 여자들도 하나같이 못생겨 보였다.
마스터인 ‘부천아찌’는 완전 비계덩어리였다.
외국 사람 중에도 그 정도까지 살찐 사람은 별로 많지 않을 것 같다.
허리부위가 가슴의 두 배는 되어 보였다.
‘아니’라는 친구는 마치 얍삽한 사기꾼처럼 생겼다.
‘내일’이라는 친구는 완전 조폭 스타일이다.
‘성이’는 조금 덜떨어져 보였다.
‘겨울이’는 인텔리한 모습이다.
닉네임을 기억하지 못하는 한 친구는 순박해 보였다.
저녁은 레스토랑의 정식을 주문했는데 정말 맛이 없었다.
구운 감자는 다 식어있었고 고기도 질긴 데에다 제대로 굽지도 않은 것 같았다.
회원들이 모두 모이자 우리는 송파구청 뒤 노래방에 가서 한 시간 반 동안 노래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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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해도 거기 참석한 내가 정말 우스웠다.
내가 어떻게 온라인에서 만난 사람들과 오프라인에서 어울려 그런 시간들을 가질 수 있는지 나 자신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렇지만 우리 같은 공조직에 근무하는 사람들 중 나 같은 행동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래도 난 용기 있게 울타리 밖 사람들과 교감하고 싶었던 거다.
단순한 공조직의 틀에 박힌 삶을 벗어나 바깥세상의 여러 가지 다른 삶을 간접적으로라도 경험하며 이해하고 싶었던 거다.
(20년전의 내가 그런 용기있는 행동을 했다는 것에 찬사를 보낸다.
그런 걸 보면 내 안에는 참으로 호기심에 가득찬 아이가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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