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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의 역사(용욱이의 내면세계)/2003

20030627 공기업에 과연 진정한 경영자가 있을까?

by 굼벵이(조용욱) 2022. 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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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6. 27()

오후 2시부터 노사협의회와 단체협약 회의가 있다.

아침부터 처장님과 단협 준비를 위한 의견교환을 했고 10시 반부터는 부사장 방에서 KM처장과 함께 대책회의를 하였다.

그동안 문제가 되어 오던 몇 가지 사항에 대하여 논의하다가 출산휴가 이야기가 나왔다.

출산휴가 90일 중 60일이 유급휴가이고 30일이 무급인데 그 30일을 유급으로 해 달라는 노조의 요청에 대하여 그걸 들어줄 수 있는 방법이 없는가를 KM 노무처장이 내게 물었다.

무급 출산휴가를 유급으로 바꾸게 되면 추후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길 소지가 많으니 근로기준법상의 보호휴가로 하고 급여 보전에 관한 사항은 노사협의회 의결로 처리하면 될 것이라는 안을 제시해 주었다.

노무처장이 OK해 내가 그 건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해주기로 하고 회의를 마무리 지었다.

오후 1시 조금 넘어 보고서를 가지고 우리 처장님에게 가니 빨리 노무처장에게 가서 설명하라고 한다.

노무처장은 P부사장도 새로 선임된 만큼 P부사장이 인심 한번 쓰는 것으로 회의를 진행했으면 좋겠다고 한다.

처장님 방에 다시 돌아와 단협 시나리오를 설명해 주니 웃으면서 더러워서 못 해 먹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회의는 단협 사항부터 먼저 논의하기로 했다.

개회선언이 떨어지자마자 노조 O가 영업처 C부처장을 소환해 줄 것을 요청했다.

어제 그와 있었던 해프닝을 이유로 공식 회의 석상에서 제대로 한번 조지겠다는 심산이 들어있다.

어제의 해프닝이란 대충 이렇다.

노조가 OO분할 저지 투쟁기금을 모으면서 조합원인 직원들에게는 65천을 할당하고 비조합원인 간부에게도 25천 정도를 할당하여 모금에 들어갔었다.

그런데 C부처장이 사업소 총무부장들에게 전화를 걸어 비조합원에 대한 모금활동의 부당성을 이야기했던 듯하다.

그래서 노조 O가 J와 함께 영업처로 한달음에 뛰어 내려가 C부처장 허리춤까지 잡아가며 한바탕 항의소동을 벌였다.

C부처장의 부하직원인 L과장이 그걸 그냥 두고 볼 수 없어 이를 저지하는 과정에서 폭언이 오고 가면서 사건이 대형화되었다.

결국 C부처장은 노조의 부름을 받고 단협 회의장에 끌려 들어와 만신창이가 되도록 두들겨 맞고 그 자리에서 사과를 했다.

그런 개망신에도 불구하고 할 말 하는 소신 있는 간부도 있지만 대부분은 꼬랑지 내리고 노조의 비위를 맞추며 자신의 안위는 물론 거기 빌붙어 승진하려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게 공기업의 현실이다.

노조가 청탁을 의뢰한 간부를 승진시켜주는 승진권자는 또 어떤 사람들인가!

하지만 공기업 노조는 노사가 짝꿍으로 함께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왜냐하면 공기업 사용자는 경영권이 없고 정부가 절대적 경영권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말이 사장이고 이사지 노조만도 못한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을 뿐이다.

사장 마음대로 직원 급여를 10원도 올려줄 수 없다.

엄연한 주식회사임에도 꼴랑 18% 지분 밖에 갖지 않은 정부가 공사법을 개정해 산업은행 지분까지 합쳐 51%를 정부 지분으로 본다는 억지 논리를 주장하며 100%의 지배권을 행사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법을 만든 국회도, 100%의 지배권을 행사하며 회사를 빚더미로 만든 정부도 모두 책임의식이 전무하다.

거기에 새우 등 터지듯 죽어 자빠지는 것은 49%의 지분을 가진 민간 개미 주주들이다.

한때는 시총이 삼성보다 많았었지만 지금은 완전히 쪼그라들어 비교 불가다.

그나마 아직은 나라가 보증을 서기에 근근이 버티어 나가지만 어느 순간 파산지경에 이를지 모른다.

그런 정부가 뿌린 낙하산 사장과 감사에게 올바른 경영을 기대하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대부분의 사장이 공사를 그저 장관 자리나 바라보는 간이역으로 생각할 뿐 참된 경영은 안중에도 없다.

이러다가 대한민국 에너지 산업의 원천이며 경제의 근간인 공기업이 언제 어떻게 될지 알수가 없다.

에너지 산업이 무너지면 경제는 물론 안보마저 무너져 국가가 공멸하는데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심지어는 100% 지배권을 내세워 정부가 한전을 여러개의 발전자회사로 갈갈이 쪼개서 팔아먹으려 까지 했었다.

큰 덩어리로는 못 팔아먹으니 잘게 쪼개서 팔아먹자는 심산이 근저에 깔려있다. 

다행히 하나님이 보우하사 IMF도 터지며 결정적 순간에 위기를 모면했지만 아직도 정부의 발아래 모가지가 깔려 껄떡껄떡 숨만 쉬고 있을 뿐이다.

나도 어떤 프레임에 갖혀 이런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만 경영은 소명의식과 진정한 주인의식을 가지고 처음부터 그 조직안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 해야 할 역할이지 조직 밖의 행정가나 정치가가 잠시 스쳐 가며 이어갈 것이 아니다.

 

어쨌거나 단체협약 회의와 노사협의회는 이후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630분에 마쳤다.

부사장이 주최하는 로터스가든 만찬 시간에 맞추어 회의를 마친 거다.

 

마침 L과장이 사무실에 있다며 전화를 해 OO관리처 L과장, K과장과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

L부장도 나중에 합류했다.

하이트 광장에 가 맥주를 한 잔 더하고 헤어졌다.

L과장은 그동안 정말 힘든 경험을 했다며 마지막까지 버티지 못한 자신의 나약함에 대하여 후회를 하고 있었다.

그는 그동안 경찰에게 배신당하고, 검찰에게 배신당하고, 나중에는 변호사에게 배신당했다고 하면서 그간의 일화들을 이야기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