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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의 역사(용욱이의 내면세계)/2003

20030702 부장수업

by 굼벵이(조용욱) 2022. 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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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7. 2()

아침 일찍(7:40) 보고서를 들고 처장님 방에 들어갔다.

그의 기분이 그리 저기압인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나를 위해 차까지 주문해 놓고 내가 가져온 서류를 이리저리 훑어보다가 이것저것 지시하고는 부사장 방에 다녀올 테니 거기 그냥 앉아있으라고 했다.

그는 정말이지 사장이 감탄할 만큼 멋진 보고서를 만들고 싶어 하는 듯하다.

그런 이유로 앞으로 만들 보고서에 대해 나랑 더 상의하고 싶어 자신이 다녀올 때까지 앉아있으라고 한 거다.

 

오늘 있었던 확대간부회의에서 그는 사장으로부터 그리 큰 지적을 받지는 않았던 것 같다.

정말 다행이다.

사장은 보고서가 좀 늦다는 이야기와 함께 땜질식 보고서보다는 종합적인 개선책이 바람직하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공감이 간다.

이제는 사장이 무얼 바라는지 감이 잡히는 것 같다.

새로운 형식의 보고서를 만들기 위하여 LJ과장과 KY과장 그리고 KM과장을 불러 업무지시를 했다.

L과장에게는 간부 승격제도를, KM과장에게는 초간고시 제도를, 그리고 KY과장에게는 이동 및 기타제도를 맡기면서 오늘 오후 3시 이전까지 보고서를 만들어 달라고 주문하였다.

그들은 모두 시간 내에 보고서 작성을 마치고 내게 제출해 주었지만 영 내가 요구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내가 그렇게 느끼는 정도인데 처장은 오죽하겠는가!

KM과장은 이번에도 영 어색한 언어들로 자기가 전부 새롭게 고쳐 재구성해 놓았는데 차라리 기존에 있는 내용을 그대로 두는 게 더 나을 뻔했다.

짜증이 심하게 밀려왔다.

예전에 KDY처장이 직원들에게 하던 말이 생각난다.

그는 보고서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핏대를 올려 온갖 동물소리를 내며 '좀 고칠 수 있게 작성해오라'고 주문을 했었다.

우리는 그런 그를 잘난척하며 까탈스럽기 이를 데 없는 사람이라고 미워했었다.

내가 당해보니 꼭 그렇다.

나를 까다롭다고 욕할지 모르나 나도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로부터 엄청난 도움을 받은 게 사실이다.

내가 보지 못하고 생각지 못했던 새로운 방식의 글쓰기와 보고서 작성 방법에 눈을 뜨게 되었던 것이다. 

점심을 먹으며 처장님을 팔아서 KM과장에게 바른말을 했다.

우선 승진하고 싶으면 내일부터 8시 이전에 출근하라고 했다.

그 이후 그는 입을 닫고 말이 없다.

빗대어 이것저것 간접적으로 그의 잘못된 점을 지적했다.

나를 바이패스하여 처장에게 직접 보고하지 말라는 이야기도 강하게 하였다.

물론 처장을 팔며 간접적으로 말했다.

하지만 거기에 내 뜻이 있음을 그는 알 것이다.

오늘도 KM과장을 밤 10:10까지 붙잡아 놓았다.

매사 제 역할을 못 하니 답답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