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 7. 3(목)
처장님 출근을 내 차로 모시러 아침 일찍 둔촌아파트로 갔다.
우물쭈물하다 출발이 조금 늦어졌다.
급하게 밥을 먹고 7시 정각쯤에 출발했는데 설상가상으로 계속 신호등마다 적신호에 걸려 7시 14분에 처장님 댁 앞에 도착하였다.
신호등마다 어쩌면 그리도 계속 걸리는지.
아파트 입구에서는 학원 차가 내 차 앞에서 느림보 행진을 이어가는 바람에 더욱 늦어져 짜증이 밀려왔다.
하지만 처장님은 7시 20분이 되어도 나타나지 않았다.
전화를 걸었다.
처장님이 전화를 받아 금방 내려오겠다고 한다.
처장님을 태우고 꼬부랑 골목길로 돌아가니 맘에 들어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꼬부랑길은 가장 짧은 코스인 데에다 다른 곳이 아무리 막혀도 traffic jam의 영향을 덜 받는 곳이다.
출근 후 처장님 방에 둘이 앉아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에 대한 신뢰가 대단해 보였다.
무엇이 나를 그토록 신뢰하게 했는지 잘 모르겠다.
내가 오늘 아침에 그를 모시고 출근하면서 한 이야기라고는 승진제도에 관한 의견 밖에 없다.
나는 그에게
“오늘 아침에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 사업소 추천심사위원회 제도를 두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 위원회는 따로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다면평가 시에 모든 직원들이 추천순서를 매기는 방식으로 자기 소속 사업소 직원에 대한 승격추천을 하게 하는 겁니다.
이와 별개로 심사위원을 따로 구성하기도 하는데 전산에서 무작위로 위원을 선발하여 그들이 평가한 내역을 합산하여 그 결과를 반영하는 형태가 가장 좋을 듯싶습니다.”
라고 말한 것밖에 없다.
처장님은 ‘직원들을 간부 승진에 참여하게 하는 것은 노조의 개입으로 문제가 된다’는 말씀을 하셨다.
나는 위원회 구성 시에 그냥 맛보기로 한 두 명 정도 넣으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내 차가 편했던지 어느새 뒤에서 코를 골며 쌔근쌔근 잠을 자고 있었다.
찻길이 울퉁불퉁한 코스였으므로 그가 금방 잠에서 깨었다.
조금 미안했다.
그게 출근 전 발생한 사실의 전부인데 암튼 내게 엄청난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나에게 남재준 육군참모총장의 반면교사, 읍참마속 이야기, 이건희 회장의 경영론 등을 이야기하던 중에
‘어제가 오늘이고 오늘이 오늘이고 내일이 오늘이다’라는 말의 의미를 물어왔다.
나는 곧바로 “현재를 살라는 이야기 아닙니까?" 했다.
”네가 그걸 어찌 알기에 즉석에서 정답을 이야기할 수 있냐?“
하면서 신기한 듯 나를 바라보았다.
감사실에 가서 그 말의 뜻을 물었더니 알아듣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서 자신이 직접 설명해 주고 왔다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당시 틱낫한 스님이 현재적 관점의 삶을 특히 강조하셨는데 아마도 그걸 처장님이 자기 언어로 바꾸어 만든 말이란걸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틱낫한 스님이 강조한 삶의 지혜를 알고 있다면 누구나 쉽게 그 글의 진의를 유추해낼 수 있다.
처장님은 이렇게 남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추상적인 언어로 화두를 던지며 업무지시를 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그걸 메타포 리더십이라고 한다.
부하직원이 다양한 방식으로 의미를 해석하며 기발한 아이디어를 창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모호한 업무지시로 우왕좌왕하며 길을 벗어나는 경우가 많다는 단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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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튼 그는 그 후 L부장을 혼낸 이야기며 과장들 인사고과를 어떻게 주는 것이 좋은지 까지 내게 자문을 구했다.
그것은 친근감의 극치를 말해준다.
주무과장이나 주무부처장의 의견 대신 내 의견을 듣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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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를 계속 만들어 내느라 어려움이 이어진다.
저녁 8시 30분 즈음에 어느 정도 개략적인 초안이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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