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1. 21 ~ 25
(21)
5일간의 길고 긴 구정휴가가 시작되었다.
21일 아침에 회사에 가 어제 준비해 놓은 선물들을 들고 나왔다.
자동차가 10부제에 걸리는 날이어서 차를 가지고 출근 할 수가 없었으므로 시골에 가져갈 선물들을 회사에 두고 왔었다.
날이 엄청 춥다.
최근 들어 이정도로 추운 날도 별로 없었다.
이것저것 명절선물 준비하느라고 출발시간이 조금 지연되어 10시 40분쯤에 평택으로 출발 수 있었다.
예술의 전당 밑으로 우면산을 통과하는 터널이 새로 생겨 그 길로 가기로 하였다.
통행료 2000원을 내야 하지만 과천 의왕간 고속도로에 곧바로 진입할 수 있어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고속도로에 진입하니 교통혼잡이 말이 아니다.
결국 6시가 되어서야 안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와이프는 준비성이 철저해 어느새 이를 대비해 집에서 김치랑 밥까지 싸가지고 왔다.
그녀가 김치와 깻잎에 싸주는 밥을 받아먹으며 운전을 하였다.
길이 너무 막혔으므로 차가 10키로를 넘지 못하고 서행하는 바람에 지나가는 차들이 낼름 낼름 밥을 받아먹으며 운전하는 나를 무척 부러워하는 듯하다.
집에 들어가기 전에 내 첫사랑 OO네 집부터 들르기로 하였다.
OO 오빠 내외가 우리를 반겨주었는데 그는 내게 얼굴 표정까지 일그러뜨리며 미안하다는 말부터 시작했다.
내가 다녀가지 못했던 최근 2년간 상사와 혼사가 겹쳤었는데 미처 연락을 못해 미안하다는 거다.
그동안 OO 어머님이 돌아가셨고 자신의 아들 수일이 장가도 보냈다고 한다.
수십 년간 병치레를 하시던 어머님이 결국 돌아가셨는데 연락처를 몰라 기별을 못했다면서 그동안의 경위를 낱낱이 설명해 주었다.
OO오빠는 그동안 푼푼이 모아놓은 돈 1700만원을 어머님께 드렸는데 어머님은 그것으로 땅을 샀고 그것이 값이 올라 큰 돈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땅을 OO가 홀랑 팔아먹어버렸고 그로인해 결국 OO어머님은 화병이 도져 돌아가셨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알아 누운 어머님 생전에 목욕 한번 시켜드리지 않았고 돌아가신 다음에야 달랑 나타나 상을 치르자마자 도망가듯 올라가버린 그녀가 정말이지 너무 얄밉다고 형수가 한마디 덧붙였다.
OO 엄마는 죽으면 새가 되어 훨훨 날아 가고 싶은 곳은 어디든 가보고 싶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녀를 묘지에 묻던 날 별안간 전에 없이 기러기 떼가 날아와 묘소 주위를 한참 동안 맴돌며 머물다가 갔다고 한다.
그것을 보고 장지에 참석했던 사람들이 아마도 그녀가 평소 생각했던 대로 새가 된 모양이라고 한마디씩 했다는 것이다.
안중은 정말 상전벽해 이상으로 무지막지하게 변하고 있다.
송담마을은 완전히 사라지고 거기에 고층 아파트 촌이 형성되어 있었다.
삼정리로 가는 길을 몰라 골목골목을 돌다가 한참 헤맨 후에야 길을 찾을 수 있었다.
정원이와 순식이가 저녁에 들러 술 한 잔 한다더니 이내 연락이 없다.
정원이에게 연락을 했더니 순식이에게서 연락이 없다며 순식이가 오면 함께 가겠다고 하더니 결국 나타나지 않았다.
모두들 바쁜 사람들이니 탓할 일도 아니어서 마침 어머님이 만두를 빚어달라기에 내가 혼자 앉아 모두 만들어 드렸다.
예전보다 능숙한 솜씨로 금방 만두를 만들 수 있었는데 언젠가 TV에서 만두 만드는 전문가가 만두를 빚는 모습을 한번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12시가 넘어 TV를 보다 바로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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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경신이가 가져간 해리포터를 보았다.
어머니가 큰 목소리로 이리저리 참견하는 소리가 어찌나 시끄러운지 도무지 책을 읽을 수가 없었다.
밥상은 차려 놓았는데 형님이고 아이들이고 잠자리에 그대로 있어 세배 준비가 되어있지 않아 아침세배가 늦어졌다.
아이들에게는 설날 아침에 먹는 떡국이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것인데 그냥 흰 쌀밥이 밥상에 올라 있다.
그 자리에서는 아무 말 안했지만 나중에라도 나는 그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까지 매년 그런 식으로 아이들을 핑계 삼아 적당히 때워왔던 명절에 대하여 지적해 준 것이다.
이번 명절에 모인 집안사람들 면면을 보니 여기서도 벌써 내가 상당히 높은 서열에 올라 있다.
나도 이제 나이가 들긴 든 모양이다.
떡국 한 그릇과 정종 한잔을 마신 후 사당을 내려와 작은 집에서 커피 한잔을 마셨다.
모두 납골묘를 다녀오자는 제안에 내 차를 끌고 가기로 했다.
시동을 걸고 예열을 안 한 상태에서 곧바로 출발하니 집 앞 언덕에서 시동이 꺼져 버렸다.
다시 시동을 걸어 예열을 시키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예열 없이 출발하다가 시동이 꺼진 경우가 이번이 두 번째다.
납골묘를 들러 작은 할아버지 묘소에 까지 인사하면서 앞뫼깟 아버지와 조부모 증조부모 묘소를 들르지 못했다.
날도 춥고 눈이 많이 쌓인 것 같아 아침에 다녀오지 않은 것이 후회가 되었다.
납골묘를 돌아오는 길에라도 들렀어야 하는데 깜박 잊어버렸다.
일기를 쓰는 지금 가슴이 뜨끔하며 후회가 된다.
빠른 시일 내에 다시 찾아뵙고 인사를 드려야 할 것 같다.
올해도 내가 억지로 독촉해서 출발시간을 앞당겼다.
길이 막히므로 빨리 출발해야 어렵지 않게 처가에 도착할 수 있는데 아내는 늘 꼼지락거리며 출발을 지연시킨다.
출발하면서 아내 편에 어머니께 OO만원을 드렸다.
좀 적은 감은 있지만 매월 이체해 드리는 OO만원과 가끔 다녀갈 때마다 OO만원씩 드리는 용돈을 합산하면 1년에 적어도 OOO만원이 넘는다.
나보다 돈 잘 버는 누님들이나 형님이 건네주는 용돈과 내 농지를 포함해 농지 도조 수익까지 합하면 년간 OOOO만원은 훨씬 넘을 게다.
그 정도면 노인 어른 혼자 생활하시기에 그리 어려움이 없을 것 같다.
처가에 도착하자마자 장인어른은 법주 한 병을 들고 오셨고 그걸 눈 깜작할 사이에 비웠다.
장인어르신은 늘 내게 술을 주고 싶어 하셨으므로 장인어른이 따라주는 술을 넙죽 넙죽 받아먹다 보면 어느새 술 한 병이 바닥난다.
TV를 보다가 잘 시간이 되자 장인은 맥주 두병과 소주 그리고 안주거리 삼아 햄을 한 캔 들고 오셨다.
결국 소주로 폭탄주를 만들어 둘이 4잔씩 마시고는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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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다음날 아침에는 처가에서 아침 식사만 하고 바로 집으로 출발하였다.
점심까지 늙으신 엄마에게 폐를 끼치기가 좀 심하다 싶은지 집사람도 이번엔 아침만 먹고 바로 집으로 가자고 한다.
그동안 늘 내가 바라던 바였지만 그녀 때문에 실행에 옮기기 어려웠었다.
집사람 생각을 파악하자마자 곧바로 집으로 돌아갈 차비를 하였다.
장인 장모님이 섭섭해 하는 눈빛으로 그러는 우릴 바라보고 계셨지만 그냥 곧바로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종일 책 한 자 안 읽고 컴퓨터에서 영화만 다운받아 감상했다.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이라는 영화와 “정사”라는 영화가 심하게 나를 자극하였으므로 나도 맛있는 섹스가 하고 싶어졌다.
마침 아이들이 놀러 나갔으므로 집사람 곁으로 가 맛있는 섹스를 따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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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다음날 아침 밥상은 내가 차렸다.
아내가 깊은 잠을 자고 있었으므로 어제 먹던 김치찌개에 당면과 떡 쪽을 넣어 만든 퓨전 요리를 아이들이 맛있다며 잘 먹었다.
아내도 자다 일어나 잘 먹어 주었다.
아이들과 “last samurai” 영화를 보고 있는데 KCT로부터 전화가 왔다.
오후 2시에 잠실운동장에서 테니스를 하자는 것이다.
CC부장과 HBS, KDS 부장과 함께 만나 다섯 게임을 하고 생맥주 500CC 두 잔씩을 마시고 돌아왔다.
나와 KCT가 한 조가 되었는데 우리조가 5게임 모두를 이겼다.
아내가 저녁반찬으로 삼겹살을 구웠다.
아이들이 서로 많이 먹으려고 아귀다툼이다.
비만엔 반드시 이유가 있다.
아내가 맥주를 먹고 싶다며 냉장고에서 맥주 한 병 꺼내 들고 왔다.
나도 같이 한잔 하면서 입이 터져라 상추에 삼겹살과 밥 그리고 김치를 넣고 돌돌 말아 한 움큼 입안에 구겨넣고 뽀각 뽀각 씹어 삼키며 밥 한 그릇을 비웠다.
식후엔 다시 영화보기를 계속했다.
영화를 좋아하는 내게 파일구리는 참으로 안성맞춤이다.
공부를 안 하고 영화만 보려니 어째 마음이 불안하다.
무언가 계속 찜찜한 느낌이 든다.
그러면서도 컴퓨터 앞에 앉아 계속 영화를 본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영화를 통해 영어회화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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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오늘 아침 9시에 P처장과 테니스를 하기로 약속했으므로 나갔더니 P처장과 N과장이 벌써 나와 있었다.
한사람이 부족했는데 마침 감사원 HSJ국장이 나와 한 팀이 되어 게임을 하였다.
H국장은 나와 대학원 동기다.
P처장 N과장 조와 두 판을 해서 모두 이겼다.
이어서 나와 HSH회장이 한조를 이루고 H국장과 KKR사무관이 한조를 이루어 한판 승부가 벌어졌는데 우리가 6:4로 이겼다.
도합 3게임을 하였지만 게임이 박빙이어서 운동량이 적지 않다.
점심때가 되었으므로 P처장과 같이 점심식사를 했다.
이번에는 N과장이 점심 값을 내었다.
점심을 먹고 차를 가지러 걸어오는 동안 여기 저기 주변에 들어선 교회 건물들을 보면서 P처장과 종교에 관하여 이야기 하였다.
나는 그에게 우리는 모두 결국에는 종교에 귀의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내 의견을 강하게 부정했다.
그러나 정년 후 외로운 삶이 다가오면 우리는 어떠한 형태로든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장을 찾을 것이고 대부분의 경우 종교에서 그 해답을 찾게 될 것이라고 했다.
아마 나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많다.
물론 컴퓨터를 통한 컴뮤니티 활동도 많이 하게 될 것 같은 생각도 든다.
(지금 은퇴한지 3년이 지난 시점에서 나는 종교에 귀의하는 대신 과거 일기를 정리하고 있는 중이다.
물론 지금도 그날그날의 일기는 계속 써나가고 있다.
일기를 쓰고 과거일기를 정리하는 데에도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한다.
일기정리 작업은 아마도 죽을 때까지 끝내지 못할 것 같다.
P처장에게 한 나의 예언이 아직은 적중하지 않았지만 생로병사 중 병사의 시기가 도래하여 내 생각대로의 삶이 힘들어지면 질수록 자신의 생각을 포기하고 자연스레 신을 찾아 무릎을 꿇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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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았다.
'아메리칸 파이3'를 보면서 미국문화의 난잡성을 엿볼 수 있었다.
코미디 멜로물인데 웃으며 보기에는 괜찮은 영화이다.
'헤드 오버 힐즈'도 같은 부류의 영화이다.
모두 발음이 깨끗하여 영어공부를 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경신이와 호신이에게 “죽은 시인의 사회”를 보여주었다.
호신이는 영화 내용에 액션이 없어 질리는 모양이다.
경신이는 소설을 먼저 읽어서 그런지 끝까지 남아서 영화를 감상하였다.
경신이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이 꽤 많은 데 이 녀석이 제대로 이해를 했는지 알 수 없다.
'사생활의 역사(용욱이의 내면세계) > 2004'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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