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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의 역사(용욱이의 내면세계)/2004

20040402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by 굼벵이(조용욱) 2022. 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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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4. 2(금)

노조가 실무협의회에서 더 이상 협상의 여지가 없다며 결렬을 선언하였으므로 실무협의회는 빠지고 본부노조가 이를 이어받았다.

본부노조에선 우선 파견자들을 인사처 복도까지 우루루 몰고 와서는 항의 시위를 벌였다.

그들이 내게 몰려와 P처럼 내자리를 때려부술까봐 나는 많이 긴장하였다.

그들이 두드리면 두드리는 대로 맞아주자고 다짐하고 회의용 탁자에 바르게 앉아 그들을 기다렸다.

그러나 그들은 나에게 오지 않고 곧바로 처장실로 들이닥치더니 처장님과 실랑이를 벌였다.

본부노조는 적어도 인사처장을 곧바로 상대하겠다는 심산이다.

내게 한마디 상의도 없이 P국장과 처장이 밀담을 나눈 듯하다. 

한바탕 욕설을 퍼붓고 난리굿을 펴더니 다시 모두들 제자리로 돌아가기 시작하였다.

결국 실무협의회 급을 올려 노조는 수석부회장과 P국장이 회사 측은 관리본부장과 인사처장이 맡고 내가 서기로 참석하기로 하였다.

그들이 요구한 대로 한수원을 포함한 교차전적을 허용하면서 정리해고 절차를 거쳐 강제전적하고 법원의 판결에 따라 복귀여부를 결정한다는 데 합의하고 이를 표결에 붙이기로 한 것이다.

결국 내가 생각하고 주문한대로 결론을 내린거다.

P국장이 내가 던진 미끼를 그대로 삼켜버린 거다.

결국 데모하느라 연 이틀 굶어 지친 파견자들은 찬성 26, 반대 8표로 농성을 풀고 9명이 한수원으로 전적동의하면서 막을 내렸다.

P국장이 엄청난 난제를 해결하고 나름대로 기분이 좋았던지 내게 술을 한잔 사겠단다.

처장과 KS과장까지 불렀는데 처장은 K부장도 불러들였다.

처장이 일찌감치 혀가 꼬부라져 더 이상 술자리가 어려워지자 녹경 여사장이 그를 차에 태워 데려다 주는 바람에 일찍 자리를 파할 수 있었다.

데모대와 협상하며 몸고생 마음고생이 심했으므로 한 잔 더해야 한다는 생각에 KS과장, K부장과 함께 여기 저기 술집을 전전하며 새벽 4시까지 술을 마시다가 들어와 잠시 눈을 붙인 후 다음날 새벽 6시에 일어나 출근하였다.

 

(철인이 아니고는 이렇게 할 수 없다.

그시절 난 내가 생각해도 존경스러울만큼 잠도 안자고 일하며 마시기를 반복한 듯하다.

그래도 지금껏 살아있다는 건 부모님 유전자가 잘 버티게 해 준 덕이 아닐까?

그렇게 일하고도 처장 승진시엔 그런 것들이 오히려 마이너스로 작용해 내 발목을 잡은 아이러니를 어떻게 설명할까.

세상은 대나무처럼 살아선 안된다는 거다.

그저 물처럼 이리 돌고 저리돌며 휘돌아 세월아 네월아 흐르고 흘러가야 한다는 거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떻하리 하면서 살라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