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6.29(화)
회사 생활 20년에 처음으로 사장님과 술을 나누었다.
임,단협이 잘 마무리되었다고 임단협에 참석했던 회사측 위원들과 실무자에게 술을 한잔 내시겠다고 하셨던 모양이다.
마침 나는 노조 P국장의 요청에 따라 노조 회의실에서 단협 갱신안을 다듬고 있었는데 J팀장에게서 전화가 계속 왔었다.
수행비서인 KY과장에게서도 빨리 오라는 독촉전화가 왔다.
무슨 영문인지는 몰라도 노조와 하던 일이 있었기에 그걸 마치기 전에는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계속 일을 했었던 거다.
마침 LY과장이 내용도 모르면서 보건휴가와 관련하여 헛소리를 하는 바람에 더욱 늦어졌다.
L과장에게 심한 질타의 말을 남기고 부지런히 약속장소에 가니 사장님 얼굴이 보였다.
사장님을 모시고 단협 회사측 위원들 모두 자리에 함께 하고 있었다.
맨 마지막 말석에 앉아 사장이 따라주는 술을 받아 마셨다.
Y처장은 사장 오른 쪽에 바짝 붙어 앉아 끊임없이 혼자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었다.
K처장 입장에서는 그러는 그가 무척이나 얄밉고 속이 아팠을 것이다.
순배가 돌고 마지막 무렵에 달하자 HJH사장은 마지막 on the rocks 잔에 남아있는 모든 술을 마시게 했다.
그건 참으로 잘한 일이다.
사장님의 특징이 있다면 그는 절대로 잔에 술이 남긴 채로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어서 그는 소주와 맥주로 폭탄주를 만들어 돌리기 시작하였다.
내 차례가 되자 그는 내게 직군교류에 대하여 물으면서 잔을 건네었다.
나는 그가 내게도 그런 질문을 할 것이라는 것을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나는 “직군교류는 가능합니다만 승진권한을 위양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합니다.”하고 단정적으로 말씀을 드렸다.
Y처장이 나를 꾹 찔렀다.
모두들 움찔하면서 잠시 심각한 정적이 흘렀다.
말단 부장이 새로 부임한 사장 앞에 고개를 바짝 처들고 또박또박 자신의 소신을 이어가자 어안이 벙벙했던 거다.
내 생각과 반대의견을 가진 사람들은 더더욱 내가 얄미웠을 거다.
순배가 돌아가고 사장은 다시 제일 어린 사람이 누구냐며 내게 술을 돌리게 하였다.
나는 폭탄주 술잔을 만들어 한 잔 한 잔 날랐다.
사장은 또 한번 돌렸다.
모두들 거나하게 취했을 것이다.
자리가 파하고 사장을 배웅하러 가는 자리에 집 주인이 나를 잡으면서 술값 계산이 안됐다고 해서 내가 급하게 이를 계산하였다.
701,000원이다.
이어서 노래방에 갔는데 K처장이 KY과장에게 전화를 하고 싶어 해 내가 전화를 돌리자 내 전화기를 들고 가시더니 영 들어오시지를 않았다.
불안하여 전화를 해 보았더니 집에 들어가 계시다고 해 처장님 옷을 들고 나와 옷을 회사 경비실에 맡긴 후 전철을 타고 집으로 들어왔다.
(그날 이후 한준호 사장님은 나의 왕팬이 되셨고 나를 아주 특별한 놈으로 기억해 주셨다.
오가다 만나도 나를 기억해 반갑게 말을 건네며 인사해 주시고 내가 광양지사장 시절에는 퇴임하신지 10년 가까이 지났음에도 광양제철에 이사장 자격으로 내려오셨다가 나를 특별초대해 만찬자리에 동석하게 해 주셨다.
사장님 퇴직 후 집 앞 '삼풍 치킨집'에서 다른 분들과 계시다가 내가 다른 친구들과 맥주를 마시고 있자 반갑게 인사하며 우리가 먹은 술값도 계산해 주셨다.
안산지사장 시절에도 만나뵈었는데 나를 아주 똑똑하고 바른 직원으로 특별하게 기억해주셨다.
살다보면 우연한 기회에 다양한 각인효과가 생긴다.
그런 기회를 좋은 각인으로 잘 활용하는 사람은 성공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많다.
우리가 세상을 웃으면서 배려하고 즐겁게 살아가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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