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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의 역사(용욱이의 내면세계)/2004

20040724 우울의 늪

by 굼벵이(조용욱) 2022. 1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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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7.24(토)

집에서 하루 온종일 컴퓨터와 씨름을 했다.

소설 풍수도 읽었다.

영화 '화씨 911' '상'편을 보았다.

'하'편은 암호가 걸려 있는지 화면이 열리지 않아 볼 수가 없었다.

어렵게 다운받은 것이어서 이리저리 보려는 노력을 거듭했지만 실패했다.

 

아이들을 볼 때마다 신경이 곤두선다.

도무지 계획성이 없고 스스로 학습할 줄을 모른다.

스스로 찾아서 하는 공부는 1도 못한다.

호신이 성적표를 보는 순간 눈이 뒤집혔지만 참았다.

기말고사도 중간고사에 이어 엉터리다.

전교에서 절반 안에도 못 드는 형편없는 성적이다.

끼고 가르쳐서 될 일이 아니다.

품안에 끼고 소리 꽥꽥 질러가며 억지로 가르치는 집사람의 교육방식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 여실히 증명해 주는 것이어서 더욱 씁쓸하다.

지난번에 그렇게 혼이 나고도 작은 놈 책상위엔 여전히 두꺼운 라그나로크 게임 책이 놓여져 있다.

피가 거꾸로 솟는 듯한 느낌이다.

집사람은 아침을 마치고 나갔다 온다며 저녁 8시가 되어 들어와서는 왜 저녁을 여태까지 먹지 않았냐고 퉁퉁거린다.

찬밥에 오이 썰어 고추장에 무친 반찬을 억지로 들이밀며 저녁상을 차렸다.

그나마 어제 먹다 남은 닭도리탕이 조금 남아있어 아이들이 그걸 후벼 파고 있다.

경신이는 영어 단어 3개 챕터 90개를 외운다고 학원 갔다 와서부터 지금까지 무려 대여섯 시간은 책을 붙잡고 씨름 중이다.

도무지 진도가 나가지 않는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녀석까지 울화통을 건드린다.

경신이에게 심한 독설을 늘어놓았다.

정말 짜증이 나서 못견디겠다.

 

작은 누나가 전화를 했다.

엄마한테 다녀오는 길이란다.

자식새끼들이라고 통 전화도 없다며 불평을 하신 모양이다.

서울 의원에서 지어주는 신경안정제 때문에 엄마가 자꾸만 꾸벅꾸벅 졸고 있자 작은 누나가 엄마를 모시고 병원엘 다녀오면서 내게 푸념 반 전화를 한거다.

병원 의사는 협십증이 의심된다고 했단다.

서울 종합병원에서 진단하는 게 좋겠다는 의사 소견서도 떼어온 모양이다.

엄마는 또 4남매가 모두 매달 OO만원씩 용돈을 부쳐주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신 모양이다.

작은 누나의 요청에 그러마고 했다.

작은 누나는 내게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했다.

형이 이빨을 한다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많은 모양이다.

모두가 다 어렵다.

그중에 내가 제일 나아보이니 나라도 엄마한테 자주 전화를 하란다.

하지만 실없이 전화 하는 것을 꺼리는 나다.

그러마고 했다.

작은 누나는 내게 몇 살이냐고 물었다.

퉁명스럽게 나도 죽을 날 얼마 안 남았다고 했다.

회사는 회사대로 어려워 죽겠는데 집구석은 집구석대로 엉망이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엉망으로 자라고 마누라까지 퉁퉁 부어서는 매일 밤 술을 마시고 울어댄다.

아이들 학원을 보내지 말자고 했다.

어차피 공부하기는 애저녁에 글러버린 아이들이니 굳이 애써 보낼 필요가 없다고 했다.

학원도 공부하러 가는게 아니고 오히려 엄마 아빠를 피하고 공부를 피하러 다니고 있다.

돈까지 버려가며 학원을 보낸들 오히려 역효과만 나니 학원에 보내지 말자고 정색을 하고 아내에게 이야기한 거다.

아내는 아무런 대꾸가 없다.

아마도 속으로 울면서 내게 욕을 하고 있을 것이다.

“내게 불만이 있는가?”고 물었다.

아무런 대꾸가 없다.

오기가 끓어올랐다.

더 이상 말을 나눌 필요조차 없다 싶어 등을 돌리고 돌아누워 잠을 청했다.

자꾸만 부아가 치밀어 제대로 잠을 이룰 수 없다.

어찌 어찌 잘 해결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은 온데간데 없고 사뭇 부정적인 생각으로 치닫는다.

내일은 가족회의를 해 보아야 할 것 같다.

온 가족이 모여 어떻게 살아야할지를 좀더 진지하게 토론해 봐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