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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의 역사(용욱이의 내면세계)/2004

20041105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 때때로 내려 쉬어가라

by 굼벵이(조용욱) 2022. 1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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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5(금)

어제의 과음으로 오전 내내 뱃속이 거북하고 머리가 돌지 않아 일을 할 수가 없었다.

내 일이란 게 깨끗한 머리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 제안하는 일이어서 머리가 불편하면 일이 어려워진다.

오전엔 좀 쉬었다가 점심에 해장하고 오후에 소송 관련 서류를 읽고 준비서면을 작성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오후에 한참 준비서면을 작성하고 있던 중에 K부장이 나타나 처장이 park2에서 모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일주일 내내 그렇게 마셔댔는데 오늘도 예외 없이 또 소집을 한 것이다.

우리도 우리지만 처장은 그동안 밥도 제대로 챙겨 먹지 않으며 술을 마셔댔다.

잠깐 K부장과 걱정어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일반적으로 알콜 중독자들이 식사는 안하고 술만 마신다는데 그는 알콜중독자와 거의 비슷한 행태를 보인다.

처장은 KJ부처장과 HS부장 그리고 KYW과장을 불러놓았다.

나랑 LJ과장 KC부장이 합석해 일곱이 자리를 함께했다.

KY과장이 프랑스를 다녀오면서 사왔는지 선물을 받았는지 모르겠으나 꼬냑을 한 병 가져왔다.

대부분 어제의 과음으로 마지못해 술을 마시는 표정이었다.

KY이만 취해서는 혼자 해롱거렸다.

예외 없이 P사장이 나타나 원가만 14만원 한다는 돈페리옹인지 뭔지 하는 샴페인을 터뜨리며 분위기를 엎시키려 했지만 모두들 몸을 사렸다.

처장이 P사장이 동석한 차를 타고 들어가자마자 우리는 각자 헤어졌고 나는 K부장과 함께 택시를 타고 오다 집 앞에서 내렸다.

 

(돌이켜보건대 그는 당시에 알콜중독이었음이 확실하다.

아침에 꼬장을 부리는 행태도 실은 전날 마신 술이 만들어 낸 주정이 아니었나 싶다.

그도 욕망의 화신이었다.

자그마한 키에 제주의 내세울 것 없는 집안에서 태어나 세상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보겠다는 욕망 때문에 죽음을 불사하고 일과 대인관계를 이어갔다.

덕분에 초고속 승진을 이어갔지만 자신의 몸은 초고속으로 망가져야 했다.

정말 하찮은 것에 목숨을 건거다.

결과적으로 보면 그가 자신의 몸을 망쳐가며 만든 관계망 속의 사람들은 대부분 그를 배신했고 그의 사후엔 그가 만일 살아있다면 더더욱 화나게 할 행동들을 서슴지 않고 해댔다.

그가 가진 욕망을 나도 가졌고 내 후배도 가지고 있다.

아직도 내 후배들은 죽는줄 모르고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 몸을 맡기고 있다.

인간에게 주어진 정말 무서운 DNA다.

삶의 순간순간에 깨달아 때때로 정차하고 하차하는 방법 외에는 묘약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