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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지혜를 찾아서/인문학 산책

저만치 혼자서 단편집(김훈)

by 굼벵이(조용욱) 2023. 4.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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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편의 주옥같은 단편들이 수록된 단편집이다.
그의 글은 함부로 주마간산식 독서가 불가능하다.
어떤 사람들은 글을 글로 읽지 않고 이미지로 읽는다고 한다.
뭉터기로 스윽 지나가며 쉽게 쉽게 속독으로 읽는다는 거다.
나는 그런 읽기를 거부한다.
단어 하나 문장 하나 문맥 하나를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글을 써본 사람은 글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안다.
함부로 만든 글도 있지만 이 분의 글은 수필이든 소설이든 장고의 시간과 노력이 글 안에서 보인다.
글을 읽는 맛이 박하사탕처럼 깨끗하고 명징하다.
1. 명태와 고래
2. 손
3. 저녁내기 장기
4. 대장내시경 검사
5. 영자
6. 48GOP
7. 저만치 혼자서
 
이 일곱편의 소설은 내 주변이야기고 내 이야기다.
나의 삶이고 그의 고뇌다.
나는 '용욱이의 내면세계'라는 글을 통해 일기체 소설을 쓰고 있다.
실은 소설이 아니고 자서전이다.
이 자서전은 죽을 때 끝이 난다.
아니 죽어도 끝이나지 않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20년간의 일기를 바탕으로 삶을 정의한 것이어서 기껏해야 일년에 두해분 분량을 가다듬을 뿐이어서 그걸 모두 정리하려면 꼬박 10년은 걸린다.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10년 동안의 일기가 또 축적되어 정리에 5년이 걸리고 5년이 축적되어 2.5년, 다시 1.25년, 다시 6개월...을 계산해도 얼핏 20년이 지나야 끝에서 미트될 수 있다. 
그러면 내 나이가 86세가 된다.
지금처럼 치열하게 매 2년치를 정리해도 그정도인데 나이가 들면 들수록 기력이 쇄진해질 테고 그러다보면 속도가 완행으로 빠뀔 가능성이 크다.
그렇더라도 나는 세상 사람 장삼이사가 살아가는 모습을 김훈처럼 내 창을 통해 내놓을 것이다.
내면은 감추어져 있어 드러나지 않는다.
그걸 끄집어 내어 다른 사람들이 내삶에 비추어 그들의 삶을 정의하는데 작은 도움을 줄 뿐더러 내 생의 존재이유를 밝힐 것이다.
치열하게 글쓰며 살아갈테니 86세 까지만 살아주었으면 좋겠다.
 
김훈의 일곱개의 단편소설은 내 이야기와 진배없다.
내가 살아온 많은 삶들이 오버랩된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바닷물에 배가 쓸려가듯 살았는데 그게 내 삶과 죽음의 원인이 되어버린 명태와 고래이야기.
명태도 명태를 쫓는 고래도 그냥 한류와 난류가 흘러가는 방향대로 떠밀려왔을 뿐이다.
이 단편글들을 읽다보면 자신의 일기장을 다시 읽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그들의 삶이 내 삶의 한 편린이기 때문이다.
내 '사생활의 역사'가 완성되는 시점에서 보면 매일 매일이 서로 연결되거나 연결되지 않은 단편소설들로 구성되어 있을 것이다.
소설이라기 보다는 실화 다큐가 될 것이다.
나는 내 내면 속에 들어있던 모든 감정의 치부들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려 노력 중이다.
김훈은 진실의 삶을 소설로 조탁해서 객관화하려 했지만 나는 진실을 있는 그대로 원석인 채 내놓으려 노력 중이다.
이 블로그 한 편에 있으니 언제든 필요한 날의 내 내면세계도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