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의 형식을 빌었지만 대통령을 시해한 김재규의 삶을 그린 실화에 가깝다.
긴박했던 시대상황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지금은 묻혀있지만 김재규가 박정희 대통령 머리에 확인사살까지 할 때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사위지기자사 여위열기자용(士爲知己者死 女爲悅己者容)라는 말이 있다.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고 여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화장을 한다는 말이다.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지만 충성이 배신으로 돌아올 땐 오히려 총을 든다.
세상의 모든 폭로사건들은 대부분 이 논리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법이 훌륭한 병법이지만 당사자인 오랑캐 입장에서는 가장 기분 나쁜 병법이다.
나이가 한참 어린 경호실장 차지철과 충성경쟁을 시켜놓았는데 대통령 코밑에서 사사건건 음해하고 이간질하는 차지철의 행태를 불같은 성격의 김재규가 견뎌낼 수 없어서 만들어진 참화다.
자기를 배신하고 차지철에게 손을 들어준 박정희도 그에 버금가게 미웠을 것이다.
나도 그런 저런 경우를 당해봐서 그런 아픔을 잘 안다.
하지만 난 그놈들보다 더 모질게 치욕의 세월을 견뎌냈고 그 결과가 내 꿈을 이루게 해주었다.
꿈은 이루었으나 치욕의 세월을 보낸 비겁한 내 행동에 자괴감이 많이 든다.
그러면서 지금도 그들을 내려놓지 못하고 악몽으로 품은채 살고있다.
오히려 그 때 당했던 치욕을 후회하며 김재규처럼 행동으로 내 생각을 옮기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나야 승진을 못한 것에 불과하겠지만 김재규는 목숨을 걸었다.
주군을 위해 목숨을 내놓은 박승주대령은 참으로 위대하다.
최고의 엘리트로 육사를 나와 초고속 승진이 이어졌던 인물인데 자기를 알아준 김재규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놓은 위인이다.
그럴수 있었기에 그는 초고속 승진이 이루어졌을 거다.
제대로 된 주군을 만났다면, 아니 혁명에 성공했다면 박승주는 우리나라의 가장 값진 보배가 되었을 것이다.
영웅이 되려면 시대도 잘 만나야 하고 주군도 잘 만나야 한다.
삼선개헌, 유정회, 유신헌법 등으로 영구집권을 꿈꾸며 각종 위협과 공작으로 김영삼 야당 당수를 제명하면서까지 제왕적 행태를 보인 욕망이 극에 달했고 그러기 위해 그가 행한 그릇됨 또한 꼭지점에 이르러 더이상 묵과할 수 없는 국내외적 상황과 국민적 요구로 시해를 정당화하기도 한다.
부마사태, 탄광노조사태, YH노조사태, 전태일 분신 등 언제 타오를지 모르는 혁명의 불길이 너무 거세고 걷잡을 수 없을 뿐더러 북한의 도발까지 겹친다면 이 나라와 국민은 도탄에 빠질 것이 분명하기에 그랬다는 거다.
같은 군부세력이었던 전두환이 이 사건을 수습하고 정권을 이어가지 않고 새로운 민주정부가 탄생했더라면 아마도 그는 역사에 그렇게 기록되어 영웅으로 남았을 것이다.
똑똑하고 충성스럽기까지 한 박승주도 죽지 않았을 것이고 육참총장을 거쳐 더 큰 거목으로 우리나라의 기둥이 되었을 것이다.
(내가 지향하는 인생관이다)
그시절에 대학생활을 했고 데모대에 참가했었던 내 입장에서 읽으면 그시절의 역사를 김재규의 입장에서 잘 정리해 놓은 소설이다.
우리시대를 같이 겪었던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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