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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의 역사(용욱이의 내면세계)/2008

20080820 노사협상의 진수, 상대방 감정까지 헤아릴줄 알아야

by 굼벵이(조용욱) 2024. 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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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8.20

오늘은 아침 출근부터 긴장이 고조되더니 마지막까지 엔테베 특공작전 식의 숨가쁜 상황이 이어졌다.

노조 P처장이 내게 전화를 해서는 인사처장 방에서 만나잔다.

어제 이야기한대로 P는 의견서를 만들어왔고 의견서의 내용은 어제 밤 술집에서 말한 내용이 그대로다.

나는 이 상황을 인사처장에게 미리 보고했지만 처장에게 보고한 사실을 모른 척 하라고 이야기해  놓았었다.

P와 나만의 비밀담화였기 때문에 인사처장이 알고있다는 사실을 알면 나에 대한 신뢰가 깨져 P가 뒤집어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인사처장도 연기를 잘 해 주었고 그 연기가 조금 도를 지나쳐 P의 부아를 돋구어 그는 자신이 가져온 의견서를 도로 가져가 찢어버리려 했다.

나는 얼른 그 서류를 빼앗아 우선 내부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말하면서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그가 올라간 후 처장을 설득시키면서 내가 검토의견서를 써가지고 오면 그 때 가서 다시 판단하라고 하고는 검토서를 썼다.

검토서를 보고하며 처장을 설득시키고 전무 방에 가서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P가 만일 이 의견을 위원장이 받아들여주지 않으면 자신이 스스로 노조를 떠날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다는 보고도 드렸다. 그 정도로 P가 비장한 각오를 하고 있다고 했더니 전무는 역시 생각이 달랐다.

그런 일들로 해서 노조 내에 분열이 일어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자신이 직접 노조위원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겠단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전무가 위원장을 만나면 제2의 문제를 불러올 가능성이 많다는 판단을 했다.

얼른 그렇다면 먼저 P처장을 만나보시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다.

전무가 P에게 전화를 했고 P가 전무실에 내려가는 사이 나는 얼른 빠져나와 전무에게 전화를 걸어서는 그 서류를 P에게 보여줘도 괜찮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전무는 이야기를 마치고 P처장과 함께 문구 조정까지 마쳐 놓았고 P는 노조 위원장과 만나 자신의 약속을 이행했다.

이 과정에서 나는 정말로 위태한 상황 두 가지를 슬기로운 아이디어와 행동으로 극복해 내었다.

만일 P가 처장의 미온적 태도에 흥분해서 날뛰었다면 이 결과는 얻을 수 없었다.

만일 전무가 위원장을 만나 엉뚱한 이야기를 나누었다면 위원장과 P의 관계가 악화되거나 노사관계가 다시 악화되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

나아가 이 건도 이상한 방향으로 튀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협상이나 중재는 해당 사안을 잘 아는 사람이 상대방의 감정까지 철저히 이해하고 해야 한다.

만일 전날에 내가 P에게 저녁식사나 같이 하자고 하지 않았다면 나는 P의 현재 상황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동안 노조는 나에 대하여 계속 색안경을 끼고 보아왔었는데 이번 계기를 통해 P는 나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면서 신뢰를 다졌을 것이다.

특히 김병옥 과장을 아무리 설득해도 안 되었던 계열전환자에 대한 불합리를 내가 개입하면서 오히려 그가 주장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결과로 연결시켰기 때문에 그는 아마도 나를 더욱 신뢰하게 될 것이다.

 

아픔 뒤의 성과는 그것만이 아니다.

내가 처장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과 처장의 노조에 대한 관점을 바꾸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동안 인사처가 노조에게 퍼주기식 협상이나 엉터리 같은 합의를 도출해 왔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마도 그는 차후 이러한 협상결과가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떻게 나타났는지를 이해하고 그동안 가져왔던 우리에 대한 관념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