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216(월)
지난 금요일은 노조에서 희망퇴직 안을 받아들여 희망퇴직 시행을 위한 상임인사위원회 결의서에 결재를 받기 위해 이방 저방 전무들 방을 돌아다니며 오후 늦게까지 분주하게 보낸 하루였다.
매일 노조를 찾아가 졸라댄 덕분에 노조 동의를 얻었다.
노조 신기수 국장이 큰 일 끝냈으니 이를 기념하기 위해 술 한 잔 하잔다.
처장님께 보고 드렸더니 양주를 한 병 주시겠다기에 괜찮다고 했다.
신기수 국장은 충청도 촌사람이라 그런지 개고기를 좋아한다.
심성도 곱다.
우리 팀 식구들을 몽땅 데리고 가서 개고기 파티를 했다.
최준원 차장은 개고기를 안 먹기에 닭도리탕을 시켜주었다.
차장들 술 마시는 품새가 영 시원치 않다.
내가 소주를 세병 더 주문해 억지로 신국장을 먹였다.
대접하는 자리에는 상대방이 도가 넘게 취하게 하는 게 접대 기본 룰이다.
술이 취했지만 한 잔 더 하고 싶은 생각이 있는 것 같아 그를 몬타나로 데려가서 생맥주 500CC 짜리 두개를 더 하고 나는 먼저 택시를 타고 들어왔다.
신국장은 내게 자신의 진실을 털어놓았다.
박흥근 처장은 자신에게 늘 회사사람을 멀리하라고 하고 있지만 자기는 그건 잘못된 생각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런 저런 주문을 하지만 자신이 경험한 바에 의하면 박처장의 생각이 잘못된 것 같다고 했다.
정책국장을 역임했던 배중길 국장의 이야기를 듣더라도 회사 정책부서하고는 가깝게 지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당연히 맞는 말이기에 맞장구를 쳐 주었다.
그건 P처장의 편집적 시야에서 바라본 그릇된 생각일 뿐이라는 걸 깨달은 듯하다.
*******************
토요일 아침에는 회사 케미칼 코트에서 테니스를 했다.
엊저녁에 내린 비로 잠실 운동장은 사용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소수 정예멤버만 초청한다며 조원석 부장과 권춘택 부장, 은상표 부장만 불렀는데 윤창희 부장을 비롯해 몇몇이 더 나와 함께 운동을 즐기고 이남장에 가서 식사를 하고 사무실로 들어왔다.
오늘 있을 전무님과의 워크샵을 위해 모두들 출근해 있었다.
처장님이 점심식사를 가시면서 날 찾았지만 난 이미 식사를 마친 상태여서 그동안 잠시 눈을 붙였다.
잠을 자든 안자든 그렇게 눈을 붙이고 호흡에 집중하다보면 마음이 편안하고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을 받는다.
휴식이 필요할 땐 언제나 이런 방법을 써야겠다.
워크샵은 일정보다 조금 늦어졌는데 여러 가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도식 전무님은 생각이 참 건전한 것 같다.
어떤 형태로든 아랫사람의 공은 절대 가로채지 않겠다는 생각이 강하다.
오히려 아랫사람의 적극적인 홍보대사로 나서 그 공을 높이 선전하겠다고 하신다.
전무님께 크고 작은 일에 수시로 찾아가 이야기를 나눌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전무님을 모시고 천미향에서 함께 저녁을 먹었다.
전무님이 짬뽕을 시키자 모든 사람이 다 짬뽕을 시켰다.
나야 짬뽕을 원래부터 좋아했지만 모든 사람이 나와 같을 수는 없을텐데 한목소리를 냈다.
먹는 것까지 함께 하려는 것도 일종의 조직문화다.
********************
다음날은 테니스를 희망하는 친구들이 없어 집에서 책을 읽고 영화를 보는데 조철 부장이 전화를 했다.
잠실 변전소 테니스장으로 나오란다.
박종확 전무님과 정하황처장이 한 조 나와 조철 부장이 한 조가 되어 운동을 했다.
그렇게 4게임을 하고 점심식사를 함께 한 후 집으로 들어왔다.
내가 다시 집에 들어서니 호신이가 나가려고 욕실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녀석은 나랑 함께 있는 시간을 무척 불편해 한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누군가는 녀석의 행동습관을 교정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제 어미가 그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으니 나만 악역을 맡을 수밖에 없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가 다 그렇다.
녀석이 목욕탕에 들어간다는 이야기는 곧 밖으로 나갈 것이라는 것을 예고하는 것이다.
매일 같은 일이 반복되어 왔으니까.
아침 내내 처 자다가 오후 서 너 시가 되면 이렇게 어슬렁어슬렁 일어나 새벽 두 세 시까지 밖으로 싸돌아다니는 행태가 너무 한심스럽고 화가 치밀어 올라 침대에 누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있는 집사람에게 녀석에 대한 불만을 내뱉었다.
“뭐 저런 새끼가 다 있어!
나 같으면 미안해서라도 그런 짓을 못하겠네.
허구한날 오전 내내 자빠져 자다가 오후 서너시에나 일어나 밤늦도록 쏘다니는 걸 보면 울화통이 터진다.
OO대학 간 것이 무슨 벼슬 한 것도 아니고 하는 짓거리가 한심해 죽겠네”
이 말을 들은 집사람은 나의 독설에 화가 잔뜩 나서 나의 역린을 건드리고 말았다.
“그러는 당신은 OO대학 가가지고 무얼 어떻게 했는데?”
“응?
대답해 봐요!”
“OO대학교 가서 무얼 어떻게 했는데요?”
나는 자존심에 심한 상처를 받고 계속 침묵으로 일관했다.
집사람이 한 번 더 물었다.
그리고 또 한번 같은 질문을 했다.
세번이나 그짓을 하고 있다.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귀싸대기라도 날리고 싶지만 꾹꾹 참아냈다.
극한의 화를 폭발시키면 또 다른 대형 비극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나는 아무소리 하지 않고 조용히 밖으로 나가 컴퓨터 앞에 앉았다.
컴을 켜 오전에 보다 만 영화 'away from her' 를 보았다.
치매에 걸린 아내를 돌보는 은퇴 노인의 사랑을 그린 영화다.
잔잔한 아픔이 밀려온다.
내가 나이 들어 그런 생활을 할 때 나는 어떤 모습으로 있을까 하고 생각하니 두려움도 생긴다.
졸음이 밀려와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누웠다.
내 기분을 눈치 챈 집사람이 와서는 옆에 누워 아양을 떨지만 내겐 너무 큰 자존심 상실이어서 쉽게 마음이 풀리지 않는다.
분노의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 잠이 안 온다.
아무리 자려고 해도 자꾸만 화가 끓어올라 잠을 이룰 수가 없다.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생각의 방향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지만 쉽지가 않다.
사람은 그런 모양이다.
말이나 생각으로는 논리를 따지지만 실제로 자신의 감정과 맞닥뜨리면 논리가 사라져 생각의 방향을 바꾸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 듯하다.
*****************
정미경이 내게 이야기한 생각의 사치가 바로 이런 것인 모양이다.
‘네가 OOO선생님한테 안 당해봐서 그러지 만일 당해 봤다면 절대로 그런 말 할 수 없다’는 독설을 한 미경이의 말이 이해가 간다.
분노의 감정 때문에 잠드는데 애로가 많았던 하루다.
(집사람 편에서 내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는 사람에게 이런 질문을 꼭 해보고 싶다.
"집사람이 착하고 천사같다고?"
"네가 같이 살아봤어?")
'사생활의 역사(용욱이의 내면세계) > 2009'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090218 술한잔 하며 매듭을 풀다 (0) | 2024.06.14 |
---|---|
20090217 집이 지옥같다 (0) | 2024.06.14 |
20090213 이도식 전무님 취임 (0) | 2024.06.12 |
20090212 TDR 팀원들 소고 (0) | 2024.06.12 |
20090211 자꾸만 생각나는 도로시 (0) | 2024.06.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