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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의 역사(용욱이의 내면세계)/2009

20090520 나이스보이 증후군/까라면 까

by 굼벵이(조용욱) 2024. 7.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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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20()

채용관련 TDR 보고를 마쳤다.

보고 과정에서 늘 느끼는 점이지만 보고에 대한 준비는 철저히 하면 할수록 좋다.

아무리 준비해도 늘 끝나고 나면 부족함을 느낀다.

사장은 늘 중간에 보고자인 내 말을 꺾고 들어와 자신의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는다.

그러면서 자신의 생각에 몰입하느라 상대방으로부터 보고 받는 내용을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

다시 말해 제 생각하느라 남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 않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늘 마지막을 어떻게 정리해야할지 몰라 어렵다.

TDR 보고가 이번이 네 번째다.

이렇게 여러 번 사장을 불러 보고하는 TDR도 없을 것이다.

어쩌다 한번 정도 하는 수준이지 한 TDR에서 네 번이나 주제를 바꾸어가며 진행하는 TDR은 지금껏 없었다.

주변에서 때로는 부러움 반, 질투 반으로 바라보는 것 같다.

그러거나 말거나 난 그냥 있는 대로 살기로 했다.

더 이상 Nice Boy 증후군에 시달릴 필요는 없다.

Nice Boy 증후군은 태어나 부모나 주변 환경으로부터 학습 받은 페르조나에서 기인한다.

사실 부모도 달성 할 수 없는 일을 아이에게 주문하는 경우가 많다.

그건 그냥 부모 자신의 이상향일 뿐이다. 

그러면서 부모는 늘 자신들의 아이가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 총명하며 성실하고 모든 면에서 최고라고 생각하고 기대한다. 그런 생각과 기대가 아이에게 그대로 각인되어 그것을 향한 경향성이 인지도식으로 만들어진다.

그러면서 자신이 세상과 주변이 바라는 이상향이 되지 못했을 땐 심한 불안감과 불쾌감을 느끼게 된다.

그런 나이스보이 증후군은 부모와 주변으로부터 학습된 하나의 경향성일 뿐이다.

그러므로 이로 인하여 불안이나 불쾌감을 느끼기 보다는 다른 인지도식으로 바꾸어가면서 스스로를 해방하는 것이 좋다. 인생은 남을 위한 삶이 아니고 자신을 위한 삶이기 때문이다.

 

사장은 여러 가지 주문을 했다.

그 속에 연구원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있다.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루머가 있다.

선임연구원 중 한 사람이 감사와 친분관계가 깊다고 한다.

그 친구가 선임급 13년 차인데 책임급 승진에 계속 누락되었다고 한다.

그 주된 이유가 다면평가 결과가 안 좋아 탈락되었다는 것이다.

일반직은 다면평가 결과 하위 50%가 탈락되는 반면 연구원은 그 특수성을 인정해서 하위 30%만 탈락시키는데에도 불구하고 그친구는 매년 하위 30%에 들어 승진을 못했던 것이다.

그친구가 자신의 실력이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제도에 문제가 있어 승진을 못하는 것처럼 감사에게 이야기했다는 설이 있다.

감사는 이런 왜곡된 정보를 사장에게 전달했을 것이다.

사장은 내게

"연구원은 마치 바둑을 두는 사람과 같다"

고 했다.

오로지 바둑알만 처다 볼 뿐 주변을 살피지 않기 때문에 다면평가 점수는 낮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연구원은 연구 성과만 좋으면 되는 것이지 인간관계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전기공학만 하면 되지 정치공학을 할 필요가 없다'는 유머도 섞었다.

일면 맞는 이야기다.

그래서 하위 50% 대신 하위 30%로 한 것이다.

특정인을 승진시킬 목적으로 제도개선을 우회적으로 지시하면서 정치공학이 아니라 전기공학인으로 살아가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건 연구직은 상위직 승진이 불필요하다는 말로 이해될 수도 있다.

상위직은 하위직을 관리해야 해서 그 관리 능력을 주변의 사람들이 평가해 주고 그 결과를 반영하는 것인데 사장은 그걸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곧바로 사무실로 올라와 조홍제 차장에게 연구원은 다면평가 결과를 반영하지 않는 것으로 바꾸라고 지시했다.

서글픈 이야기지만 조직인은 위에서 까라면 까야한다.

보고를 드리는 자리에서 연구원은 일반직과 달리 하위 30%만 승진제한 된다는 이야기를 했음에도 내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는 사장의 완고한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따라서 지시대로 이행하지 않는다면 나는 어려움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신임 박완웅 처장과 TDR 팀원들이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

박처장님은 TDR 팀원을 이해하려고 꽤나 애를 쓰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무래도 윗사람들은 서로 다른 성격의 모임이나 자리에 나가야 할 일들이 많고 따라서 각 자리마다 자기에게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여야 하므로 그런 행동들이 몸에 배었을 것이다.

나도 곧 그렇게 되겠지.

처장님을 모시고 강남 터미널에 가서 부산행 우등 고속버스 표를 끊어드리고 기다리는 동안 함께 커피를 마셨다.

그동안 많은 아픔을 겪은 분이시기에 일반고속버스를 타려고 하셨다.

하지만 부산까지 너무 먼 거리를 쪼그리고 가시게 할 수는 없어 30분 뒤에 출발하는 9030분 발 우등고속을 태워드렸다.

술자리에서 처장님은 자신이 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세 사람으로부터 엄청난 재산상의 손실을 보았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사람들이 그 착한 사람을 빚에 쪼달리는 무일푼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자신 같은 사람들 때문에 요즘은 보증제도가 1000만원을 초과하지 못하도록 되어있다는 말씀도 곁들인다.

그런 아픔이 그를 겸손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