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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의 역사(용욱이의 내면세계)/2009

20090526 화를 내는 사람에게 화 되돌려 주기

by 굼벵이(조용욱) 2024. 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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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26().

지난주에 이어 어제는 조금 바빴다.

지난 금요일 아침 상황은 정년연장 문제를 놓고 사장님께 보고하는 일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박완웅 처장님이 새로 부임하셔서 업무 내용을 잘 모르니 전무님께서 나보고 함께 사장실에 들어가라고 하신다.

최외근 노무처장과 함께 사장실에 들어가려고 대기실에서 대기하던 중 갑자기 노조가 소동을 벌였다.

월요일에 결론을 지으려던 임금협상 안을 누군가가 외부에 사전에 발설하여 문제가 터졌다는 것이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구조조정처에서 문제를 일으켰단다.

발전회사 임금교섭과 관련하여 한전은 임금타결을 하는데 너희는 왜 안하느냐고 지적하면서 발전노조에 이 내용이 알려졌고 이에 발전노조가 한전 노조에 이의제기 하면서 문제가 야기되었다는 것이다.

오후 두시부터는 춘천에서 강연을 해야 하는데 이 문제 상황이 언제 끝날지 몰라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노무처장에게 가서 내 대신 사장에게 보고해 달라는 부탁을 하고 열시 반에 곧바로 춘천으로 출발해 버렸다.

그 와중에 갑자기 권태호가 내 앞에 나타났다.

정년연장을 하게 되면 정년퇴직예정자의 보직변경방안에 대해서도 검토해야 하는데 그건 왜 안하냐며 따져 물었다.

관련업무 담당인 최준원 차장을 데려다가 한참을 혼낸 것도 모자라서 이젠 내 자리에 와서 항의를 하며 큰소리를 내기에 나는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라고 조용히 했다.

어떤 상황에서든 가급적 참고 자제하는 것이 상대방을 이기는 방법이다.

그리고 정년퇴직자의 보직변경에 관한 정책은 제도팀에서 하는 것이 아니고 관리팀에서 하는 것이 원칙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다.

그래서 나는 어디까지나 사견임을 전제로 하면서 그에게 이렇게 더해 말했다

만일 나보고 검토하라고 하면 현행의 보직변경시기를 그대로 가져갈 순 없기에 적어도 58세 까지는 보직을 주어야 할 것

이라고 했다.

정년을 연장시켜 놓고 보직을 주지 않으면 그것도 많은 문제를 야기할 수밖에 없다.

임금 피크제와 병행해서 정년을 연장시켜 놓고 일자리를 주지 않은 채 임금만 지급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정부의 기본방침이기도 하다.

국가가 정한 기본적인 룰은 지켜져야 하므로 아무리 양보한다 해도 58세 까지는 보직을 주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자 권태호는 젊은 사람 생각은 안한다며 내게 큰소리로 화를 내었다.

순간 제도팀 식구들과 총무팀 식구들이 모두 쥐죽은 듯 조용하게 화를 내고 돌아가는 그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가 내게 화를 내기에 그 화를 다시 그에게 돌려주었을 뿐이다.

마침 물건을 실어 나르는 구루마에 그 친구 발이 걸리면서 큰소리가 나는 바람에 더욱 긴장감이 조성되었다.

그걸 보면 하느님이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그는 제자리로 돌아가면서 내게

에이 씨, 궂은일은 안하고 좋은 일만 하려고 해!”

라고 소리쳤다.

순간 내게도 분노가 치밀었지만 꾹 참았다.

나는 지금껏 궂은 일만 도맡아 해왔다.

생색내는 일은 오히려 인사관리팀에서만 골라서 해 왔다고 생각하는데 나보고 좋은 일만 골라 한다고?

오히려 그 친구가 생색내는 일만 주로 해 왔고 난 궂은 일만 해왔다.

업무분장이 어떻게 되어있는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그는 자신이 할 일을 내게 떠넘기려 하면서 궂은일은 안한다고 불평하는 것이다.

답답한 후배다.

만일 내가 생각하는 대로 검토해서 결론을 내면 그 결론에 대해서 엄청 불만을 토로할 친구다.

그렇게 안하는 나를 고마워해야 한다.

제도와 운영의 경계선을 가르기가 애매모호하다.

태호랑 한바탕 하고 곧바로 춘천으로 달렸다.

이제 연초록에서 진초록으로 바뀌어가는 강원도의 산은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룬다.

엊그제 내린 비로 강은 제법 차올랐다.

그래도 장마 같은 비가 아니어서 물색이 그리 나쁘지는 않다.

가는 길에 성북낚시에 들러 덕이와 묵이를 샀다.

내가 혼자 가니 날 못알아보고 예전에 현암선배와 함께 왔을 때보다는 덕이와 묵이를 조금 덜 주는 것 같다.

그래서 단골이, 아는 사람이 필요하다.

관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춘천에서의 강연은 열심히 하려고 마음먹었지만 생각만큼 매끄럽지 못했다.

조금 버벅 거린 것 같았다.

요즘은 적당한 단어가 예전만큼 제때에 제대로 튀어나오지 않는 것 같다.

강연을 마치고 저녁식사로 무얼 먹을지를 묻는 행정지원팀장에게 닭갈비를 주문했다.

유명해서라기보다는 그게 그 사람들에게 금전적 부담을 덜 주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대접하는 입장에서 값싼 음식을 제안하기는 부담스럽다.

가급적이면 대접을 받는 입장에서 대접하는 상대방을 고려해 제안하는 것이 예의다.

닭갈비 안주로 어찌나 술을 많이 먹었던지 안주가 익기도 전에 각1병은 족히 돌아가고 안주를 먹으면서도 여러병을 무너뜨린 것 같다.

2, 삼차, 포장마차까지 갔고 그것도 모자라 호텔 내 방까지 술을 싸들고 들어와 마셨다.

박용주가 마지막까지 진드기처럼 달라붙어 함께했다.

박용주가 들고온 맥주를 두 병인가 마시다가 잠이 들었던 기억만 있다.

새벽에 일어나니 전날의 상황을 기억하기가 쉽지 않다.

샤워를 하고 아침 식사를 위해 해장국집을 찾았지만 춘천시내에 해장국 집이 안 보인다.

결국 슈퍼에서 바나나 우유 하나만 사서 마시고는 홍천강으로 달렸다.

그냥 강에 가서 라면으로 아침을 먹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먼저 반곡 밤벌 오토캠핑장 여울로 갔다.

물이 많이 불어있다.

벌써 두사람이 여울에 들어서 있다.

물살로 보아서는 함께 서기에 부담이 있어보인다.

차라리 개야리가 더 나을 것 같다는 판단을 했다.

개야리에도 이미 누군가가 들어서 있다.

거기로 마음을 정하고 부지런히 라면을 끓여 아침식사를 한 후 여울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넣자마자 입질이 쏟아지는데 낚시 바늘이 엉키면서 오히려 시간을 지연시킨다.

마음이 급하다는 증거다.

급할수록 천천히 침착해야 한다.

낚시인이 겪는 가장 흔한 실수중 하나가 바로 스스로 줄을 엉키게 하는 일이다.

낚시를 차분히 천천히 하면 절대 그런 일이 없다.

집어된 고기가 도망가기 전에 빨리 잡으려고 급하게 줄을 내리면서 줄이 엉키고 엉킨 줄을 풀어낸다고 오히려 더 오랜 시간을 허비하다가 모아놓은 고기를 다 놓치는 꼴을 당하고 만다.

피라미와 모래무지, 마자가 계속이어지고 돌돌이와 누치도 가끔씩 물어준다.

 

그렇게 잡은 피라미를 다음날 식당에 가져가 테니스가 끝난 후 물고기 조림으로 내 놓으니 모두들 너무 좋아한다.

어디서 그런 싱싱한 물고기 맛을 보겠는가!

나보고 또 잡아오라고 성화다.

아예 테니스장에 안 나타나도 좋으니 강에 가서 물고기만 잡아오란다.

 

잠시후 현암이 도착했다.

현암은 마음이 급했는지 자갈밭을 신나게 달리듯 걸어왔다.

내게 자신이 만든 낚시대를 준다.

지난번에 내가 명품은 명인이 만들어야 하다며 주었던 애자대 네 대를 명품으로 만들어 고스란히 반납한 것이다.

애자대 네 대와 시누대 세대 그리고 남들이 모두 부러워한다는 붕어살 애자대 한 대까지 도합 여덟 대를 만들어 준 것이다.

 

아마도 나 때문에 어르신들끼리 경쟁이 붙었던 건 아닌지 모르겠다.

운경선배가 현암으로부터 완전히 마음이 돌아서 있어 두 사람 사이를 좁히기가 어렵다.

현암선배 생각대로 일면 현암으로부터 더이상 배울 게 없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이른바 현암의 효용가치가 떨어진 것이다.

나도 언젠가는 그런 처지에 놓이게 될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추하게 늙어 가는가 보다.

더 이상 추하게 늙지 말고 착한 마음으로 예쁘게 사는 연습을 해야겠다.

 

오늘 아침에 출근하면서 본 어느 키 작은 할아버지가 생각난다.

작은 키에 허름한 잠바를 입고 등은 꾸부정한 채 한 손엔 비닐 봉다리를 들고 한쪽 발을 절룩거리며 걸어가고 있는 그의 얼굴에는 검버섯이 달마시안 개처럼 피어있었다.

쪼글쪼글 주름살이 가득한 얼굴로 표정 없이 걸어가는 그의 모습에서 허무가 줄줄 흐러 내렸다.

나는 이렇게 살지 말아야 할 텐데....’

하면서 전철역에 들어섰었다.

 

어제의 강의는 나쁘지 않았던 듯하다.

오전 강의는 준비가 조금 소홀해서 부족함이 있었지만 오후에는 이를 조금 보강했고 오전보다는 오후에 모인 사람들이 더많았다.

 

박완웅 신임 인사처장 환영식을 했다.

천미향에서 간단한 요리를 곁들여 행사를 마쳤는데 총무팀장이 열과 성을 다하지 않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런 작은 행사라 하더라도 실무자는 각별히 신경을 써서 해야 한다.

술 좋아하는 처장에게 술판 환영식을 벌여놓고 자신은 술을 안 마시겠다고 선언하는 것도 그리 좋아보이지 않았다.

내가 돌린 잔을 씹은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거기다가 환영식에 노조위원장인 김남수를 초대하지 않은 것은 치명적인 실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