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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의 역사(용욱이의 내면세계)/2009

20090813 사자보다 무서운 하이에나 떼

by 굼벵이(조용욱) 2024. 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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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13().

허처장님 방엘 갔다.

이번 정부 경영평가 결과 포상금이 나와 작은 선물을 마련했는데 그걸 전달해 주기 위해서다.

지난밤의 과음으로 힘이 드시는지 잠시 쉬고 있는 것을 알면서 그냥 무시하고 들어갔다.

조금 미안했다.

말머리를 단체협약 해지권 관련 해프닝으로 열었다.

허처장님은 이야기를 들으며 설명하는 나 이상으로 흥분하셨다.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들은 잘 모른다.

그들과 부딪쳐 깨져보지 않은 사람은 얼마나 아픈지 그 아픔을 이해하지 못한다.

허처장님은 비록 잠시지만 인사처장을 역임했으므로 내 설명에 대한 이해가 빠르고 공감도 깊었다.

언제 또 한번 강에라도 모시고 나가 견지낚시를 즐기면서 소주나 한 잔 해야겠다.

내가 내민 선물을 극구 사양하다 포상유공자 운운하며 정당한 이유를 달아 완곡하게 표현하니 그제사 받으셨다.

대부분의 사람이 나에 대해서는 아주 맑고 깨끗한 사람이라고 인정한다.

그래서 그런 사람이 주는 작은 선물은 받아도 문제 없다고 생각한다.

이는 사실 심리학의 논리적 오류 중의 하나이다.

누가 주던 그 물건의 실체적 청결성이 중요한 것이지 주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서 영향을 받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먼저 사람을 판단한다.

그래서 우리는 남에게 그런 깨끗한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하여 자신만의 고유하고 깨끗한 행동패턴을 보여야 한다.

인간의 경향성은 대부분 반복행동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반복행동의 경향성으로 보아 다음에도 같은 행동을 할 것이라고 예측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경향성을 만들기 위해  자신이 원하는 모습의 행동을 지속적으로 반복하여야 한다.

 

신운섭을 불렀다.

그와 승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차장에서 부장으로 진급하던 시절 당하던 모습과 비슷한 사태가 요즈음 벌어지고 있다.

정권이 바뀌면 새로운 정권의 지방 주도세력들이 마치 전리품처럼 주요보직을 차지하려 몰려온다.

특히 인사처는 그게 더 심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래야 자기 사람들을 심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무언가 먹거리가 있을 거라고 소문난 곳엔 언제나 사람들이 꼬인다.

일보다는 정치에 더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관직을 사냥하는 거다.

엽관주의가 공기업에 까지 깊숙히 뿌리박혀 있기 때문이다.

마치 사자가 잡아놓은 가젤의 썩은 고기에 달라붙는 하이에나 떼처럼 무섭게 전리품에 달라붙는다.

그런 하이에나 떼가 사실은 사자보다 더 무섭다.

사자를 등에 업고 동네 사람들을 죽창으로 찌르고 몽둥이로 패 죽이기도 했다가 정권이 바뀌어 죽임을 당하는 일들이 반복적으로 있어왔던 우리나라다.

왜 사람들은 그런 성향을 보일까?

일종의 복수심과 보상심리가 교차하기 때문이다.

인간 이외의 다른 동물들도 그럴까?

다른 동물들은 과거를 기억하거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뇌가 발달하지 않아 그런 일이 없다.

동물들은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살을 찌우거나 먹이를 준비하는 것 이외에는 늘 현재의 순간을 살아간다.

복잡한 계산 없이 순간의 먹이를 찾아 오로지 현재에 몰입할 뿐이다.

 

신운섭이 과거의 나처럼 그렇게 당하고 있는 것 같다.

그가 먼저 겁부터 내고 있다.

조직개발팀에 새로 온 99차장과 파견으로 들어온 99차장을 보고 지레 겁먹고 백기를 드는 듯하다.

어차피 두 사람을 뽑는다면 99만 둘 다 승진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외부 사람들을 졸지에 인사처에 불러다 놓고 그들만 모두 승진시키면 누가 봐도 제대로 된 인사라고 보기 어렵다.

상황이 그런만큼 독한 마음먹고 하려면 제대로 하라고 충고했다.

부장이 된 사람들 중 쉽게 된 사람은 하나도 없다.

부장은 자기 업무도 업무지만 그 밖의 다른 기량들을 충분히 닦아야만 주어지는 자격이다.

힘들고 어려운 수모도 겪어야 하고, 불공정, 불합리, 부정, 부패, 온갖 더러운 것들에 대한 내성도 길러야 한다.

신운섭 차장이 내 말을 얼마나 알아들었는지 모르겠다.

남들이 하니 그저 적당히 한번 해 보겠다는 마음 가지고는 절대 그 어느 것도 이룰 수 없다.

죽기 살기로 덤벼야 승산이 있다.

죽느냐 사느냐는 자연법칙이다.

이 모든 것이 어찌 보면 내 자신에게 하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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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현암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녁식사를 같이 하자고 했다.

다원참치집에서 참치를 먹으며 견지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현암에게 김태환이 보내준 법정스님의 글을 하나 드렸다.

참치집 아가씨에게도 주었다.

그들이 그걸 좋아하든 말든.

어쨌거나 우리는 참치와 더불어 입견지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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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사람이 외상값을 몸으로 정산하겠단다.

지난번 휴가 때 예천 지보에 가서 동네 어르신들 막걸리나 드시라고 10만원을 봉투에 넣어드리고 왔는데 현금이 없다며 내게 5만원을 꾸어갔었다.

나는 외상값 5만원은 갚았는데 내가 20만원어치 노력봉사를 해서 오히려 15만원을 더 내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건 다음에 다시 몸으로 때우라고 했다.

인생 뭐 있나?

말도 안되는 일을 말이 되는 것처럼 생각하고 주장하며 그렇게 사는 거지.

그렇게 살려니 머리가 무거워질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