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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의 역사(용욱이의 내면세계)/2009

20090814 내 마음도 내 구두처럼 아무나 가져갔으면

by 굼벵이(조용욱) 2024. 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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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14()

구두가 바뀌었다.

장충 왕족발 집에서 소주를 한 잔 하고 나왔는데 어느 놈이 내 구두를 신고 가버렸다.

그가 내 구두 대신 남겨놓은 구두는 상표나 스타일이 내 것과 똑 같은데 사이즈가 내 것보다 5미리 정도 크고 닦지 않아 지저분했다.

신운섭 차장이 주인에게 구두가 바뀐 사실을 알리고 신고 간 사람이 찾아오면 연락을 달라고 했다.

내 구두는 신데렐라의 유리구두다. 

이놈 저놈 잘도 아무나 신고 간다.

지금까지 대여섯 번은 구두가 없어진 것 같다.

지난번 광주에 출장 갔을 때 점심을 먹으러 복 집에 갔는데 어느 놈이 내 구두를 신고 가버린 일도 있었다.

결국 총무과장이 근처 백화점에서 구두 한 켤레를 사다주어 그걸 신고 와야 했다.

삼성동 현대백화점에서 산 구두와 광주의 백화점에서 산 구두는 질이 다른지 그 구두는 얼마 안가서 금세 망가져 버렸다.

현대백화점에서 거금 16만원을 주고 산 고급 구두를 어느 놈이 바꾸어 신고 간 것이다.

키가 작아 내 구두는 키 높이 구두이고 고가품이어서 유사한 형태의 구두가 별로 없는데 족발집에서 내것과 같은 형태의 구두를 신은 놈이 나타난 것이다.

우리 회사에 천여 명이 넘는 사람이 근무하고 그 사람들을 위해 구두를 닦아주는 아저씨가 있어 그 아저씨에게 그게 내 구두인지 아닌지를 물었다.

아저씨는 단번에 아니라고 했다.

그럼 우리 회사에 내 구두와 같은 종류의 구두를 신는 사람이 있는지를 물었다.

그는 없다고 했다.

우리 회사 천여 명 가운데 오로지 하나 뿐인 내 구두를 어느 놈이 자기 구두인 줄 알고 신고 간 것이다.

전에는 설렁탕집에서 술 한 잔 하고 나와 보니 구두가 없어져 음식점 슬러퍼를 신고 전철을 타고 집에 온 적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웃었을지도 모른다.

멀쩡한 사람이 술이 취해서는 양복에 슬리퍼를 신고 전철을 탔으니 말이다.

다행히 그 때는 회사에 아는 사람이 신고 가 이틀 만에 쉽게 돌려받을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내 발은 많은 사람과 닮은 보편적인 발인 모양이다.

딴에는 제 신발인 줄 알 정도로 편했으니 신고 가버린 것 아니겠는가.

아마도 이번 녀석은 평생 제 신발이 바뀐 줄도 모르고 살 수도 있다.

내 마음도 내 구두 같았으면 좋겠다.

그랬더라면 아마도 박흥근 사건과 같은 유형의 불편한 오해는 별로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누구나 내 마음을 그렇게 편하게 가져가 주었으면....

 

저녁 퇴근시간에 최준원 차장에게 맥주라도 한 잔 사주고 싶었다.

그동안 단체협약 해지권과 관련해서 마음고생도 많았고 오늘 그가 보고한 연차휴가 사용 촉진권에 대한 사항도 매우 고무적이어서 격려해 주고 싶었다.

그는 마침 고등학교 동창들과 약속이 있다고 해 생각을 접었다.

그는 문제를 도피하거나 덮으려 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

그 부분에 있어서는 내 성격과 유사한 점이 많아 그를 높이 산다.

맥주 한 잔 마시다가 김응태는 야영이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기에 현암에게 전화를 걸었다.

현암은 막내 처제 때문에 집사람이 병원에 갔고 집사람이 오면 한번 물어보겠다고 했다.

아마도 처제의 아픔 때문에 힘들어하는 집사람의 승낙을 받기란 쉽지가 않을 것이다.

그의 처는 그걸 묻는 그에게 철없는 현암이라고 할 가능성이 많다.

모두 각자 자기 안에서 살아가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