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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의 역사(용욱이의 내면세계)/2009

20090901 70세를 내 생의 마지막으로 정했었다.

by 굼벵이(조용욱) 2024. 8.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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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01()

자동차 타이어를 바꾸었다.

타이어는 4만키로 정도 달리면 교체하는 게 좋다는 설도 있고 기간이 너무 오래 지나면 고무가 낡아서 사고 위험이 있다는 설도 있고 해서 어차피 중간에 새 차로 교체할 양이면 미리 교체해 일정기간 안전하게 타다가 차를 바꾸는 것이 좋다는 조택동 부장의 조언을 들은 것이다.

타이어가 다 닳을 때까지 타다가 새 것으로 교체하고 얼마 안 있어 새 차로 바꾼다면 타이어를 새로 바꾼 것에 대한 가치가 감소하기 때문이다.

알뜰하게 사는 것도 좋지만 무조건 아낀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때에 따라서는 타이어처럼 장기적으로 미래이익을 따져보고 미리 바꾸는 것이 도움이 될 때가 있다.

사업을 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지금의 사업이 아직 바닥이 아니라고 해서 느긋하게 즐길 것이 아니라 미래이익과 비교해 언제 갈아타는 것이 미래에 보다 유익한지를 따져보고 어차피 갈아탈 생각이라면 바로 지금 갈아타라는 것이다.

개인의 변화도 마찬가지다.

장기적으로 대차대조표를 그려보고 지금 변하는 것이 유익하다고 판단되면 미련 없이 스스로를 변화시켜야 한다.

내일부터 담배를 끊어야지, 술을 끊어야지, 책을 읽어야지, 영어공부를 해야지,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지 하고 게으름을 피워봐야 미래에 엄청난 적자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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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어 가느라고 돈은 좀 들어갔다.

그런데 조택동 부장 이야기에 의하면 타이어 하나에 13만원은 한다고 했는데 김동엽씨가 직접 타이어를 교체하고 내게 내민 청구서는하나에 8만원이다.

그러니 조택동부장이 제시한 금액 대비 바퀴 넷에 20만원을 세이브한 꼴이 된다.

엔진오일을 교체하고 다른 이것저것 손을 보고도 40만원 밖에 안 들어 오히려 12만원이나 절약했다.

김동엽씨는 합해서 38만 몇 천원이 소요되었다고 말했지만 나머진 팁이라며 그냥 40만원을 주었다.

김동엽씨도 기분 좋고 나도 기분 좋다.

사람의 마음이 그렇게 간사하다.

만일 내가 조택동으로부터 타이어 가격이 5만원 정도 할 것이라고 들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40만원을 주면서도 왠지 바가지 쓴 듯한 기분이어서 기분 나빠 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면 전심전력으로 나를 위해 헌신해준 김동엽씨에게도 퉁명스럽게 대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는 일부러 날 위해 세차까지 해주는 배려를 아끼지 않았는 데에도 말이다.

인생은 그렇게 나비의 날갯짓처럼 교묘하게 연결되어 확대재생산 되는 것이다.

그래서 늘 좋은 생각과 좋은 행동을 이어가는 삶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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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원 차장이 질병휴가원에 첨부된 진단서의 내용에 치료기간이 예정되어 있지 않은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묻는 전남본부 질의에 대한 회시를 검토해 왔다.

내가 지시한 여러 가지 것들을 감안하여 잘 정리를 했지만 결론만 내는 것 보다는 이와 유사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다른 사업장에서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 수 있도록 처리기준을 명시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사업소장은 당연히 그 사실여부나 처리기간 여부를 해당병원에 조회하여 확인하거나 진단서를 재발급 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표현을 사용하도록 했다.

그러느라고 2번이나 그의 검토문서를 되돌렸다.

혹시 기분 나빠 할 것 같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두 번이나 빠꾸 시켜 미안하다고 했다.

아니라고는 하지만 기분 나쁜 것은 사실일 것이다.

그렇게 하면서 조금씩 성장하는 것이다.

사람은 홀로 크는 게 아니고 이렇게 작은 것들이 쌓이면서 성장하는 것이다.

몇 년 만 더 가르치면 아주 큰 역할을 해 낼 수 있을 것 같은데 내가 떠난 자리에 그가 어떤 경로를 따라 어떻게 성장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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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회의에서 실수를 했다.

정직은 임금을 전혀 지급하지 않는데 나는 잠깐 감봉과 착각을 해 노동법에 정한 최소한의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었다.

현상권 팀장이 임금을 안준다고 주장했는데 내가 그의 주장을 뒤엎고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했었던 것이다.

사무실로 돌아와 사실을 확인하고 얼른 그에게 전화를 걸어 나의 잘못을 사과했다.

아무리 작은 것이지만 그렇게 인지 즉시 바로잡아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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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저녁은 대체로 도로가 온통 불야성을 이룰 만큼 차가 많았는데 어제 저녁은 그래도 사정이 좋았던 것 같다.

720분에 출발해서 8시 경에는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7키로 밖에 안되는 거리를 40분에 걸쳐 왔으면서 좋아하는 것도 상황을 모르는 이에겐 이해가 안될 것이다.

덕분에 집사람이 해 준 저녁식사를 겸하여 복분자 주 반주를 네 잔이나 마셨다.

집사람도 두 잔이나 함께 마셔준다.

마셔주는 것이 아니고 이제는 즐기는 것 같다.

그렇게 사는 게 행복이다.

인터넷 영화를 봤다.

집사람이 곁에 와 함께 봤다.

암으로 죽어가는 동안 망나니 아들과 집을 함께 지으면서 아들의 인생에 변화를 주고 주변 동네사람들 인생에 변화를 주는 'Life as a house' 인가(아니면 'House as a life')를 보았다.

늘 사람들은 죽음 앞에 의미 있는 삶을 찾는다.

어쨌든 인생은 유한하기 때문에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형선고를 받기 전에는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영생할 것처럼 무의미한 이기적 삶을 추구한다.

나는 죽음에 대하여 어떤 정의를 내릴까?

나는 70살을 마지막으로 삼겠다.

그리고 거기에 맞추어 모든 삶을 정리해 나가겠다.

그것보다 더 산다면 그것은 덤인 삶이지만 오히려 부담스런 삶일 수도 있다.

그 때까지 앞으로 남은 20년 동안 나는 어떤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갈까?

그동안 해야 할 내 인생의 의미를 정리해 보아야겠다.

 

(큰일 났다.

난 지금 67세니 만으로 해도 4년 밖에 남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이루어 놓은 게 없다.

해결해야 할 일 투성이다.

어떡하지?

더 오래 살던가 더 빠른 속도로 정리하던가 해야 한다.

어쨌든 더이상 무언가를 만들진 말고 70세 까지는 지금의 문제들을 종결하도록 해야한다.

그나저나 형이 벌인 일들에 대한 뒤치다꺼리 때문에 문제다.

그 때가 되면 형이 벌여놓은 일에 대한 문제도 모두 해결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