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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의 역사(용욱이의 내면세계)/2009

20090831 PK의 세치 혀가 남긴 상처

by 굼벵이(조용욱) 2024. 8.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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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31().

지난 금요일에 PK를 만났다.

나보고 술 한 잔 사란다.

이른바 승진 턱을 내라는 것이다.

권춘택과 이정복도 함께 불렀다.

이부장은 중앙교육원에서 오는 길에 김성건 부장과 함께 왔다.

언제나 그렇듯이 PK와 함께하는 술자리는 그냥 PK의 독무대일 뿐이다.

PK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그냥 앉아서 그의 독설을 듣는 무대라는 뜻이다

그것도 오늘은 내가 승진 턱을 내는 자린데 나를 짓뭉개는 독무대였다.

그날 그가 내게 기분 나빴던 이유는 나의 잘못된 인성이나 행동 때문이 아니고 내 일 즉, 초간고시 제도개선에 대한 불만이었다.

지난번에 초간제도 개선 시 노조위원장은 심사승격 비율을 50%나 요구해 와 간신히 32.5%로 낮추었는데 PK는 거꾸로 공개고시를 32.5%로 하고 심사를 67.5%로 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자신이 그 제도에 편승하려 했다면 아전인수다.

그의 주변엔 늙다리 직원들만 있고 그들 대부분이 자신들은 일이나 인간관계는 남들보다 뛰어난데 공부를 못해서 승진을 못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쉽게 말해 그는 시험에 의한 공개고시를 없애고 모두 심사 승격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승격 심사한다고 전국 사업장에서 벌어지는 각종 로비로 인한 비리현상은 어떻게 감당하고 회사를 이끌고 나갈 엘리트 간부는 어떻게 확보할 것이며 인사의 공정성은 대체 어떻게 확보하란 말인가.

이미 부장 이상은 심사선발하고 있어 그나마 초급간부 단계에서 만이라도 시험을 통해 역량 있는 엘리트를 선발하려는 것인데 이를 전면 부정하고 나선 것이다.

그 사람의 독선과 아집은 한전에선 직원이고 간부고 모든 영역을 망라해 혀를 내두르는 정도다.

그는 내가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된 데에는 너무 오랫동안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이니 빨리 나가란다.

그 자리에 무슨 꿀을 발랐느냐 왜 안 나가고 거기서 뭉그적거리고 있냐고 한다.

(나야 나가면 영전이고 땡큐지.

내 상전들이 나 없으면 안된다고 극구 말려 그게 내맘대로 안되니 문제지.)

그의 말에는 늘 그렇게 가시가 들어있다.

그 가시엔 상대방을 지나치리만큼 비참해지게 만드는 독이 들어있다.

그는 내가 마치 전문원 신분으로서의 나 자신을 즐기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번에 사장에게 10가지 제안을 할 것인데 그중 하나는 나와 관련된 것이라고 했다.

부아가 치밀어 올라 견딜 수가 없어 그에게 처음으로 화를 내었다.

웬만하면 조용히 참아냈겠지만 지나치리만큼 내 자존심을 짓밟았다.

모든 행복에는 반드시 이에 상응하는 아픔이 따르나 보다.

내가 이러고 싶어서 이러고 앉았는 것도 아닌데 해도해도 너무한다며 강하게 어필했더니 그는 이내 수그러들면서 아부가 이어지는 야비한 모습으로 변해갔다.

내가 널 얼마나 좋아하느니 어쩌니 하면서 어르고 뺨친다.

그의 세치 혀가 사람을 죽였다 살렸다 하면서 농락하고 있는 거다.

갑자기 그러고 앉아있는 나 자신이 창피스럽고 초라해 보였다.

PK란 인간이 도대체 뭐란 말인가!

나는 사실 그를 만날 의미도 필요도 없다.

신입사원 시절부터 만나왔고 일년에 한 두 번씩 그가 만나자면 나가 술자리를 같이 하면서 관계를 유지해 왔을 뿐이다.

관계를 유지했다고 하기 보다는 주로 그의 말을 들어주고 분노를 받아주는 멍청이 역할을 해 왔었다.

일면 독으로 가득한 그의 혀가 무서워서 그의 주위를 맴돌지 않았나 싶다.

인간적인 정으로 그를 만나지만 늘 그는 누군가를 혓바닥 위에 올려놓고 독설로 찌른다.

그걸 보고 들으며 언젠간 나도 그 혀에 찔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지레 겁먹고 그의 혀 주위를 맴도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는 내가 아니라도 만나서 그의 세치 혀를 즐길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더 이상 그의 혀 주변에서 얼쩡거릴 필요가 없다.

PK를 포함해 모두에게 잊혀질 수 있도록 조용히 내 자신 안으로만 침잠할 수 있는 직위에 보직되었으면 좋겠다.

어디든 그 누구도 나를 혀끝에 오르내리지 않는 조용한 자리로 찾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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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여기 저기 천지삐까리로 사람들 혀 놀리는 소리가 무성하다.

토요일에 남규를 데리고 홍천강을 가려던 중에 자동차가 펑크가 나서 시간이 지체되는 바람에 그냥 조터골로 향했다.

먼저 비내여울에 들어서니 거긴 한여울 식구들이 진을 치고 있어 들어설 수가 없었다.

회장과 장금이에게 인사를 하고 조터골로 자리를 옮겼다.

조터골에도 타프를 치고 많은 사람들이 앉아서 술잔을 나누고 있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제드를 포함해서 여울과 견지 식구들이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앉아서 같이 소주 잔을 나누었다.

거기서도 사람이야기가 뒷담화로 오간다.

유국열 선배와 현암 선배의 우정이 깨진 이야기, 그리고 애자대에 관한 여러 가지 비화, 유국열 선배가 15만원 20만원 씩에 판매하고 있다는 애자대의 진실을 알고 싶어 했다.

내게 직접적으로 말은 안해도 나 없는 곳에서 아마도 내가 거기 깊숙이 개입했을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으로 온갖 이야기가 오고갔을 것이다.

나는 내 애자대를 보여주면서 실체적 진실을 이야기 해 주었다.

처음 50개를 가져다가 현암 선배에게 주었고 현암 선배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분배를 했는데 유국열 선배가 더 많이 가지고 싶어 해 결국 둘이 쪼개졌고 나는 그 두 분을 화해시켜드리려고 다시 10개를 구해 두개는 사이버준에게 주고 여덟 개를 현암선배에게 양해를 구하고 유국열 선배에게 주었는데 결국 두 분은 가까워지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낚시점에서 판다는 물건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지만 그건 모두 가짜 애자대일 확률이 높다고 했다.

내가 그에게 준 것은 여덟 개 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방장에게 주문하기를 앞으로 조행기에 무슨 애자대니 탱크대니 하는 말을 쓰지 않도록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낚싯대는 자신에게 잘 맞는 게 최고의 낚싯대이지 애자대나 탱크대가 중요한 게 아니다.

FRP소재의 견지대는 유리섬유에 적당량의 접착제가 골고루 섞여 가벼우면서도 탄력성이 높아 자신에게 맞는 대가 최고일 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고추지지대를 무시하는데 오히려 고춧대 중 좋은 것은 애자대보다도 훨씬 뛰어난 것이 많다고 했다.

얼마나 공감을 하는지 모르지만 내 나름대로의 생각을 힘주어 피력했다.

그런 생각만이 낚싯대를 중심으로 한 불필요한 루머와 논쟁을 종식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폭탄주 몇 잔을 마신 후 물에 들어가 남규에게 견지 강습을 했다.

남규는 자꾸만 자신이 스스로 낚시에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자신의 큰형님이 낚시를 원하셔서 어쩔 수 없이 할 뿐이지 본인이 적극적으로 하고 싶은 생각은 아닌 것 같다.

오늘은 누치가 별로 달려들지 않았다.

피라미라도 물어주었으면 좋으련만 내게는 계속 파라미가 달라붙지만 남규에게는 피라미조차 별로 물어주지 않았다.

내가 잡아서 낚시대를 건네주며 피라미 손맛이라도 보게 해 주었다.

남규는 견지낚시에 걸려나오는 피라미가 제법 큰 것에 많이 놀라는 눈치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복탄 여울에 들어가 줄을 흘려보았다.

거기도 계속 피라미만 무성할 뿐 대물의 움직임이 없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토요일엔 전국적으로 누치의 움직임이 적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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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견 식구들과 인사를 나누고 용인 남규네로 향했다.

집 근처 이영희 동태찜 집에서 소주를 나누었다.

그와 술을 마시면서 나누는 대화에 집 이야기가 나왔고 그는 집터를 사 놓았는데 그게 뒤에 산이 있고 어쩌고 하면서 괜찮은 자리에 위치해 있다고 했다.

나는 그러지 말고 그건 그냥 팔아서 다른 곳에 쓰고 내 땅에다가 같이 아담하게 짓고 살자고 했다.

너무 크게 지으면 불편하니 한 20년 살다가 갈 생각하고 간단하게 한 5000만 원짜리 20~30평 정도로 두 채 지어서 두 부부가 살다 가면 될 것 같다고 했다.

남규는 나랑 생각이 조금 달랐다.

아주 튼튼한 저택을 짓고 후손 대대로 살기를 원하는 것 같다.

둘이서 세병을 마시고 대리를 불러 서울로 오니 12시가 넘었다.

남규가 대리기사를 불러 대리 운전비까지 미리 지불해 버렸다.

은경씨는 우리에게 팥빙수를 말아주더니 애 엄마 먹으라고 생크림 케익까지 넣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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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은 아침에 일어나니 무척 피곤했다.

그래서 그냥 다시 잠을 청했다.

다시 눈을 뜨니 아홉시가 다 되었다.

라면에 만두를 넣어 잡탕 김치 라면만두를 만들어 내가 아침식탁을 차렸다.

어쨌거나 영양을 생각해서 계란도 한 알씩 넣어주었다.

집사람이든 호신이든 남기지 않고 잘 먹어준다.

다행이다.

영화 보면서 졸다가 깨다가를 반복하다 점심때를 맞았다.

집사람이 스파게티를 먹는 게 소원이라고 해 피자헛 2층에 위치한 스파게티 전문점에 갔다.

평상시엔 자리가 없을 정도로 많지만 일요일 오후 세시가 다 된 시간이라 한산했다.

호신이도 집사람도 즐겁게 잘 먹는다.

나는 무슨 음식이든 다 잘 먹고 특별한 맛을 찾는 미식가도 아니어서 그냥 그렇게 스파게티를 점심으로 먹었다.

먹고 싶은 음식을 먹은 집사람이 좋아하는 것 같다.

집사람이 좋아하는 것 만으로 나는 행복하다.

토요일의 여독이 덜 풀렸는지 몸이 많이 피곤했으므로 일찍 잠자리에 들어 오랜만에 매우 긴 시간을 잠에 취했다.

밤 열시가 넘은 시간에 잠이 깨어서는 저녁식사로 녹두죽과 깨죽을 먹고 다시 곧바로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