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517(월)
그동안 통 일기를 쓰질 못했다.
왜 그랬는지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다.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마음이 게을러진 탓일 게다.
거기다가 그동안 각종 저녁약속이 많았다.
거의 매일 저녁 회식을 하다시피 했다.
토요일인 8일에는 처갓집에 가서 장인어르신과 안동소주 한 병을 다 비웠다.
다음날인 일요일에는 이인교 본부장이 인천에서 꽃게(blue crab)랑 홍어(thornback)를 가져와 운동이 끝난 뒤 대현굴국밥집에 가 또 많은 술을 마셨다.
술이 끝나고 나서는 당구까지 쳤다.
월요일인 10일에는 황규현 국장과 국방대학원(national security university) 지식경제부 소속 고위공무원 두 사람 그리고 권춘택 처장이 함께하는 자리를 마련해 호정회관에서 식사를 같이 했다.
백재현 팀장이 다른 긴요한 약속으로 자리를 함께 할 수 없어 송 차장 편에 양주를 한 병 들려 보냈다.
술이 어느 정도 들어가자 본색을 드러내며 추태를 보이는 통에 무척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다음날인 11일 화요일엔 안광석 부장이 휘하의 차장 두 사람과 김헌석 차장까지 불러들여 참배나무골에서 저녁을 같이 했다.
이 날은 술을 그리 많이 마시지는 않았다.
그냥 그 집에서 공짜로 제공하는 술( house wine)을 마시고 끝냈다.
다음날인 12일엔 과천시시설물관리공단에 가서 강의를 했다.
정규직 100명 수준의 작은 회사인데 젊고 발랄한 분위기가 매우 신선했다.
심하게는 반바지를 입고 출근한 젊은 청년이 나를 소개하기까지 했다.
강의를 마치고 돌아와 오후에는 우리 분임 회식이 있었다.
정하황 처장이 조철, 조중연 부장을 대동하고 와 난랑에서 금문고량주를 마셨다.
그는 역시 통이 컸다.
자신이 직접 음식을 고르고 금문고량주를 주문했다.
금문고량주는 그 음식점에서 가장 비싼 술이다.
사실은 그날 황규연 국장이 소속돼 있는 2분임과 함께 참나무 골에서 합동회식을 가질 예정이었다.
그런데 무슨 이유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2분임의 몇몇 사람들이 합동회식에 반대했고 따라서 2분임은 별도로 자신들만의 회식을 갖겠다는 의사를 갑자기 밝혀왔다.
무척 당황스럽고 기분이 나빴지만 나는 괜찮다고 하면서 그들의 뜻을 받아들였다.
그들은 아마도 초대하는 사람의 뜻 보다는 자신들의 생각대로 회식장소를 정하고 싶었고 초대자에게는 그냥 밥값만 지불하도록 하기를 바란 것 같다.
그들의 잘못된 권위의식을 보는 것 같아 기분이 몹시 상했지만 난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
(그 땐 그렇게 생각했는데 내가 잘못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다)
회식이 끝난 후 우리는 스크린 골프를 치러갔고 내가 꼴찌를 했지만 박이석 국장이 비용을 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오세균 차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는데 황규연 국장과 맥주 한잔 더 하고 있다면서 나오란다.
나는 이미 집에 도착했다면서 정중히 거절했다.
다음날인 13일은 신라호텔에서 개최되는 통일 포럼에 다녀온 후 인사제도팀 식구들에게 밥을 사주었다.
돼지토마토에서 소맥을 사람 숫자대로 마셨다.
마침 수안보 식구인 채동림이랑 진주가 와서 자리를 빛내주었다.
주제넘게 최준원차장에게 교훈적인 이야기도 몇 마디 전했다.
금요일인 14일은 수업 후 오후에 경복궁을 다녀왔고 술을 마시지 않았다.
토요일인 15일엔 홍천강에 가서 피라미, 돌돌이와 놀았다.
점심에는 물만두를 쪄서 식사하며 반주를 했다.
피로가 겹쳤는지 졸음이 쏟아져 잠시 졸았다.
원래 야영을 계획하고 갔지만 우리는 돌아와 오승준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
오승준이 최근에 유국열, 이준오, 훈장 등과 심한 갈등상황을 겪은 모양이다.
거기에 나도 거론이 되었던 모양인데 갈등의 주역이 이준오 였고 나는 그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어서 함께 말려들지 않았다.
저녁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오승준은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듯했다.
그는 6합 견지대 4개를 들고 나와 그중 한 개씩 골라 가지라고 했다.
그가 통킹대와 분죽의 하이브리드 견지대를 만들었기에 그걸 골랐다.
일요일엔 테니스를 다녀와 모처럼 영화 두 편을 즐겼다.
영어공부를 하다가 졸려 더 이상 학습이 곤란해 잠을 청했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 절 명상을 하면서 이번 1년간 무엇을 할 것인지를 심각하게 고민해 보았다.
무언가 하나라도 건지자는 생각이 들었다.
영어를 확실하게 마스터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인 것 같다.
그래서 매일 아침에 40분간 일기를 쓰고 20분간 그걸 영어로 녹음하는 연습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아니 그 오랜동안의 기억을 한꺼번에 다 소환해 내다니
그 때 내 머리가 참으로 대단했던 듯하다.
지금은 어제 일을 기억해 내는 데에도 많은 어려움이 있다.
일기를 쓰는 데 보통 한 시간 이상 걸린다.)
'사생활의 역사(용욱이의 내면세계) > 2010'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00525 호신이 면회를 위한 양구 여행 (3) | 2024.10.31 |
---|---|
20100518 그 때 삼성이 내 말을 들었어야 했다 (0) | 2024.10.31 |
20100511 황당한 술 주정 (1) | 2024.10.30 |
20100504 호신이에게-김춘수의 꽃과 '관계'/성격은 스스로 만드는 것 (4) | 2024.10.30 |
20100503 호신이에게-꿈을 가진 사람이 가장 아름다운 거야 (2) | 2024.10.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