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에 출근해 있는데 강태서국장에게서 문자가 왔다.
오늘 새벽에 부친이 소천하셨다는 통보다.
먼저 빈소에 세글모 명의의 화환을 보내고 돈을 찾아 부의봉투를 마련했다.
지난주에 송변전교수실 직원 한사람이 결혼을 한다고 찾아왔기에 5만원 짜리 봉투도 하나 마련하여 송변전 교수실 이봉희 팀장에게 가져다주었었다.
내가 발령 받은지 얼마 되지 않아 생면부지인 직원이지만 그런 거라도 잘 해야 내 이미지가 덜 손상될 듯해서다.
청주 상가까지 가려면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아 오후 다섯시 경 조원장 방을 찾았다.
마침 박종칠이 원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던 참이었다.
“친구 부친이 돌아가셔서 조금 일찍 나갔으면 합니다.”
했더니 조원장은
“당신은 무슨 사무(사적인 업무)가 그렇게 많아?”
한다.
나에 대한 그의 마음 속 감정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차장시절 그가 부장 승진에 필요하다며 다른 사람을 통해 자신의 서열을 물어온 적이 있었는데 내가 그걸 알려줄 수가 없었다.
그건 생명과도 같은 인사담당자의 인사보안상 이유 때문이었다.
그 때부터 내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조원장의 얼음같은 그 말을 듣고 나는 벙쪄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가 발령 받은지 얼마 되지도 않아 그동안 한번도 사적인 일로 퇴근시간 전에 조금 일찍 나간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아가 눈곱만큼이라도 연수원에 폐해를 끼친 사실이 없었기 때문이다.
혹 오해를 살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졸업일자보다 일주일 먼저 회사의 발령이 나는 바람에 부임일이 일주일 늦어졌다는 것과 그 일주일 중에도 수업이 없는 날은 출근을 했다는 것 밖에는 없다.
그리고 그 교육은 본사의 교육명령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어서 사적인 일이라 할 수도 없다.
벙 찐 얼굴로 잠시 그를 쳐다보다가
“사실은 제가 외교안보연구원 교육 동기생 총무를 맡고 있는데 문체부 국장이 오늘 상을 당했다고 해서 잠시 다녀오려고 하는 겁니다.”
라고 했더니 그는 그가 한 말이 조금 지나쳤다 싶었는지
“나는 괜찮은데 주변에 다른 직원들이 보고 있기에 고위 간부가 행동을 올바르게 해야 한다는 소리야.”
한다.
어쨌거나 난 그 말의 의미를 좋게 해석했다.
그것이 그의 마음속에 숨겨진 나에 대한 부정적 감정을 나타내든 아니든 일단 해명하려 든 것은 높이 사야 한다.
부지런히 나서서 버스를 타고 전철을 갈아타며 가까스로 윤진훈 국장과 만나기로 약속한 청주행 고속 터미널 앞에 시간에 맞추어 도착할 수 있었다.
윤국장이 6시 반 차표를 미리 끊어놓았었다.
청주까지 가는 데에는 한 시간 20분 밖에 안 걸렸다.
고속버스가 전용노선을 거침없이 달리며 잠깐 사이에 청주에 도착했고 택시를 타고 장례식장에 가서 문상을 하고 저녁을 먹으며 둘이 소주 한 병과 맥주 한 병을 말아 마시고 9시 경에 일어섰다.
집에 도착하니 11시 정도 밖에 안 되었다.
청주가 먼 줄 알았는데 오히려 우리 시골집보다 가깝고 편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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