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선배님께
(정치인이 상투적으로 하는 ‘존경’이 아니고 그동안 함께 해 온 삶 속에서 선배님이 보여주셨던 아름다운 모습들에 대한 진심어린 존경입니다. ㅎㅎㅎ)
선배님으로부터 눈물이 날만큼 매서운 회초리를 맞았습니다.
선배님 말씀이 사실이라면 전 그런 안내메일을 보내지 말았어야 합니다.
어쩌면 제가 이 자리에 오지도 말았어야 합니다.
제 운명은 왜 이렇게 기구한지 모르겠습니다.
남들은 쉽게 잘들 살아가는 것 같은데 전 왜 이렇게 어렵게 살아가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지난번 전력산업 구조조정에 따른 발전회사 분할 때에도 안 떨어지려고 애쓰는 우리의 식구들을 버려야 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분들 중 한사람은 제게 ‘오적’이라는 더러운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나는 그렇지 않다며 그와 싸우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나라와 회사에 충성을 바쳤을지는 모르지만 그분들 입장에서 보면 오적 노릇을 한 것이 사실인지도 모릅니다.
인간은 누구나 현상학적 관점에서 보기 때문이지요.
왜 이렇게 엉키고 꼬인 고약한 일만 제게 주어지는지 하느님이 원망스럽기까지 합니다.
지금도 저는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의 심연을(abyss) 헤매고 있습니다.
저도 남에게 베풀며 좋은 소리 듣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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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님은 인생의 가장 중요한 30여년을 회사와 함께 했습니다.
그런 회사로부터 이제 유종의 미를 거두려 하는 마지막 순간에 버림받은 느낌을 받았을 때의 허망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을 거란 생각을 가슴깊이 공감합니다.
선배님 말씀 맞다나 그게 제 미래의 모습이기도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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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제가 이 자리에 와서 보니 회사는 회사대로 선배님들은 선배님들대로 서로에게 서운한 감정을 가지고 있더군요.
제가 외교안보연구원에 나가있던 1년 동안 정년연장과 관련된 일들이 아마도 매우 복잡하게 꼬여있었던 것 같습니다.
선배님이 지적하신 것들에 관한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 그동안 진행되었던 서류들을 검토하고 담당 부장과 담당 차장의 의견을 종합적으로 청취하였습니다.
이 문제가 올바르게 정립되지 않는 한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서로에게 상처의 골만 깊어질 뿐이라는 생각이 들어 선배님께 진실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제가 알아낸 사실들을 선배님 질문 순서에 따라서 설명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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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회사가 정년연장의 의사가 없었으나 정년예정자 중 일부가 힘을 모아 사법당국에 판결을 구해 바로잡으려는 움직임이 본격화 되자 위기감을 느껴 어쩔 수 없이 정년연장 한 게 아닌가? 하는 질문에 대한 진실입니다.
정년연장은 이미 사용자 측 대표와 조합측 대표가 2009.12.30일에 합의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정부와 이사회의 반대였습니다.
사실 과거 87년도에 정년을 연장할 때에는 정부 기획예산처에서 정년연장에 관한 지침이 하달되었고 이에 따라 정년이 연장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부의 사전 동의나 양해 없이 노사 간 합의를 먼저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을 알게 된 정부 주관부서는(청년실업 해소가 국정 최고 현안으로 생각하고 있음) 노발대발했고 엄청나게 강한 반대의사를 표명했습니다.
그 강함의 정도는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이에 회사는 노조에 노사합의 사항에 대한 변경을 요청하게 됩니다.
그러나 노조가 이를 받아들일 리가 없지요.
노조는 강하게 반대했고 회사는 어쩔 수 없이 이사회를 열어 간부만 유보한 채 조합원에 대한 정년연장을 시행하게 된 것입니다.(2010.6.30)
이 과정에서 이사회는
① 임금피크제는 총인건비 범위 내에서 추진되어야 하며
② 현행 임금피크제의 감소율을 상향조정하고
③ 3직급 이상 간부직원에 대한 시행을 당분간 유보한다는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이와 관련하여 간부직원들의 불만이 표출되면서 법으로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저는 사실 이 부분은 잘 모릅니다)
그런데 실무자인 입장에서 보면 정부나 이사회가 반대한다면 차라리 소송 결과를 기다렸다가 시행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고 정부를 이해시키기 위한 노력에 총력을 기울였다고 합니다.(소송으로 인해 사회문제로 비화되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는 것을 피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정년연장자들로 하여금 구체적인 성과를 창출할 수 있도록 직무를 부여하여 성과를 관리하고 임금 감소율도 상향조정하겠다고 하면서 정부를 이해시키기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했는데 정부는 아직도 명시적으로 동의를 하지 않은 상태라고 합니다.
(정부는 지난번에 말씀 드렸듯이 생산성 및 기술력 및 노하우를 활용할 수 있도록 근무평정이나 성과평가 결과를 활용하는 선별적 정년연장 원칙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2010.10.14 이사회에서 유보되었던 간부직원의 정년연장 시행을 결정하면서 간부에 대한 임금피크제 감액율을 상향조정하게 된 것이랍니다.
따라서 선배님의 주장이 맞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회사가 정년연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나름대로 노력한 부분은 어느 정도 인정하셔도 좋을 듯싶습니다.
둘째, 왜 간부가 직원보다 적은 임금을 받아야 하는지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노동조합이 없어서인가요 아니면 동일노동 동일임금 범주에 안 들어가는지요? 하는 질문에 대한 진실입니다.
지금까지 정년연장 과정에 대한 설명을 이해하셨다면 이에 대한 별다른 설명이 필요 없을 듯싶습니다.
결코 간부에게 일부러 불이익을 주기 위해서 그런 것도 아니고 노동조합이 없어서 그런 것도 아니며, 동일임금 동일노동 범주에 안 들어가서 그렇게 결정된 것도 아닙니다.
이와 관련해서 노무처장님이 하신 말씀이 사실인 듯싶습니다.
간부직원의 정년연장을 시행하기 위해서는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달리 대안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확인한 바로는 노무처에서는 지난번 이사회에서도 그렇게 보고를 했더군요.
참고로 임금피크제를 시행하고 있는 다른 회사들의 지급률을 검토해 보니 우리보다 높은 회사는 거의 없었습니다.
간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구요.
셋째, 교육문제입니다.
제가 잘못 알고 있는지 모르지만 정당한 교육명령을 받지 못하고 아카데미 측 전화와 메일에 의하여 교육을 받았고 아무에게도 설명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 그리고 가나안 농군학교에 보내 마치 죄인취급을 했다는 부분에 대한 설명입니다.
요즘은 교육발령을 따로 내지 않는답니다.
그냥 교육시행 알림 공문을 내려 보내면 해당사업소와 아카데미에서 연락하여 교육사실을 알린답니다.
교육시행 알림 문서는 12월 8일자로 되어있는 것으로 보아 교육 시행 5일 전에 인사처에서 지시공문으로 내려 보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당초 약속한 월요일에 설명을 못 드리고 나흘이 지난 목요일에야 인사처에서 설명을 드리게 된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안중은 부장으로부터 직접 들으셨을 거라 생각이 됩니다)
원래 ‘정년퇴직 예정 보직변경자 운영방안’에 관한 TDR 최종 보고가 직전 주 금요일에 끝나야 하는데 계획된 날에 끝내지 못했답니다.
그렇게 된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인사처 생각으로는 선배님들을 좀 더 배려하여 최대한 연고지에 배치하고 싶은 것과 직무내용에 대한 이견이 있어 이를 조정하고 사장님을 이해시키느라 시간이 걸렸다는 것입니다.
인사처 담당자들 주장은 선배님들을 위해 최대한 노력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이라는 주장인데 이 부분도 어떻게 해석하실지 모르겠습니다.(믿어주세요)
가나안 농군학교와 관련된 것은 전적으로 커리큐럼을 아카데미에서 짜는 바람에 인사처는 정확히 그 이유를 모르겠다고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별도의 지침을 하달한 사실도 없답니다.
제가 아카데미에 있을 때 들은 바로는 고위 공무원이나 대기업 임원들도 가끔 가는 교육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교육기획팀 서동호처장)
교육원에서만 3주 내내 앉아서 교육을 받는 것 보다는 바깥 교육도 한번 받아보시는 게 어떨까 싶어서 그랬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선배님들이 잘못을 저질러서 이를 벌하기 위해 시행된 교육은 결코 아닙니다.
넷째 왜 보직을 일찍 떼었나요?에 대한 설명입니다.
정년을 연장했다면 당연히 보직기간도 연장하는 게 맞겠지요.
그런데 그냥 현행 기준대로 보직을 떼었더군요.
제가 예전에 정년연장을 검토할 때에는 당연히 보직기간도 늘리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보고를 드렸었습니다.
저도 정확히 왜 그런 결정이 이루어졌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마도 임금 감축 요구와 관련이 있는 듯싶습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연장 신청하는 것을 피하려는 생각 때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선배님 생각대로 언젠가는 바꾸어나가야 할 부분인 것 같습니다.
다섯째, 너희가 잘해야 후배가 산다? 그러면 후배는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해 줄 건가요? 라는 질문에 대한 진실입니다.
이것은 제가 직접 쓴 글이기에 그 의미를 명확히 설명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드린 글은
‘힘들고 어려우시겠지만 30여년 몸담아 오신 회사와 후배 직원들을 위해 마지막까지 잘 마무리 해 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라고 썼는데 그게 ‘너희가 잘해야 후배가 산다?’로 바뀌어 버렸네요.
선배님이 화가 많이 나셨다는 걸 글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ㅎㅎㅎ
제가 그런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정부입니다.
정부는 아직도 정년연장을 반대하고 있고(우리를 따라 하려던 발전회사는 일체 연장을 불허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언제든 문제의 조짐이 보이면 곧바로 정년연장 철회를 요구할 것이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이사회입니다.
지난번 이사회 시 사외이사님들의 심한 질타를 받았지만 회사는 분명히 성과를 창출하여 회사에 기여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는 사회적 시각입니다.
우리가 당초에 약속한 것들을 지키지 못하고 불협화음이 외부에 표출되는 경우 심각한 문제에 봉착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구체적으로 말씀드리지 않아도 충분히 그 어려움을 상상하실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이 경우 회사나 후배에게는 엄청난 damage가 될 것이므로 이게 염려되어 그런 이야기를 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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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알아서 기지 말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 대목이 제가 가장 가슴 아파 하는 부분입니다.
모든 직장인이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이기도 하고요.
어느 직장인이든 사용자가 아닌 담에야 이 주문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아마 없을 겁니다.
하지만 선배님의 따끔한 충고 마음에 깊이 새기고 올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마지막 멘트가 제일 맘에 듭니다.
‘막걸리나 한 주발 합시다.’
만일 이 말이 없었다면 저 울 뻔했습니다.
선배만한 후배가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내리 사랑이라고 선배야 오로지 베풀고 주는 것 밖에 더합니까?
대를 거듭하며 살아가는 우리네 인생이 원래 그런 것 같기도 하구요.
선배님들이 주신 사랑 냉큼 냉큼 받아먹을 줄만 알았지 은혜에 대한 보답은 정말 어려운 게 후배들의 짧은 생각인 것 같습니다.
그 대신 선배 된 위치에 서면 후배에게 선배님들로부터 받은 사랑을 전달하겠지요.
후배들이 선배님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존경이나 그리움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냥 멋진 선배로 존경하며 기억할 따름이지요.
우리 아버지가 제게 바랐듯이 말입니다.
날이 좀 괜찮아지면 선배님 곁으로 달려가겠습니다.
막걸리나 한 잔 하시면서 이 못난 후배를 꾸짖어주시지 않으시렵니까?
P/S 선배님과 비슷한 생각으로 저를 미워하거나 회사를 원망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이 글이 저나 회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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