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목)
TPS라는 이름의 연수 프로그램으로 일본 나고야를 다녀왔다.
TPS는 도요다 자동차의 자회사격인 기후차체공업에서 만든 작은 컨설팅 회사이다.
그들은 돈이 되면 연수 프로그램까지도 진행한다.
전면에 도요다를 내세우지만 실은 도요다가 아닌 도요다의 자회사 기후차체공업의 공장을 견학한다.
자동차 제조공장에서 차를 만드는데 어떻게 아껴 쓰고 개선해 나갔는지를 직접 눈으로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이와 같은 연수 프로그램으로 컨설팅회사를 만든 이유는 도요다에게 두가지 이점이 있기 때문인 듯하다.
가장 큰 이점은 무엇보다도 이 프로그램을 통해 엄청난 수익을 창출한다는 것이다.
연수비로 1인당 200만원씩 챙긴다는데 연수 인원이 지금 현재 3만 명 수준을 넘었다.
벌 것 아닌 걸로 600억원의 수익을 창출한 것이다.
돈 벌기 참 쉽다.
두 번째는 이 과정을 통해 도요다 자동차를 선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연수과정을 통해 도요다를 선전할 수 있고 그 효과가 매출증대로 이어질 수 있다.
일단 다녀온 사람들은 도요다를 신뢰하게 되고 그 신뢰 기반하에 다른 사람들에 대한 홍보도 확산되어 매출이 증가되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는 TPS 과정 자체도 그들이 늘 상시적으로 추구하는 카이젠(개선)의 한 아이디어에서 창출된 것이 아닌가 싶다.
덕분에 김인곤 처장과 구본우 처장을 좀 더 가까이에서 알게 되었고 다른 많은 사람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었다.
요즘 나의 언어장애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지네가 자신의 다리가 나가는 순서를 생각하다가 다리가 꼬이는 현상과 비슷한 장애다.
이야기 도중 나의 입모양을 생각할 필요가 없는데 긴장하면 말하는 도중에 자꾸만 입모양을 의식함에 따라 입술 모양이 말과 다르게 이상한 형태로 변형되는 게 아닌가 싶다.
이러한 현상은 긴장하다보면 더욱 심해지는 데 충분히 바로잡을 수 있을 것 같다.
좀 더 자신감을 가지고 입술을 생각하지 않고 오직 말하기에만 신경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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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고야는 230만의 인구가 살아가는 적당한 규모의 도시다.
일본 혼슈지방을 셋으로 나누면 관동, 관서, 중부로 나눌 수 있다.
관동은 동경을 중심으로 주로 금융업이 발달되어있다.
관서는 오사카를 중심으로 주로 물류업이 발달되어있어 상술에 능하다.
중부지방은 나고야를 중심으로 제조업이 발달되어있다.
따라서 나고야는 일본 무역흑자의 약 70%정도를 차지하며 그 중심에 toyota가 있다고 한다.
동경 사람들은 주로 메밀국수로 만든 소바를 먹으며,
오사카 사람들은 주로 우동을 먹지만,
나고야 사람들은 주로 칼국수의 일종인 기시멘을 먹는다고 한다.
나고야는 일본의 3대 무사가 활보하던 지역이란다.
3대 무사란 오다 노부나가, 도요도미 히데요시, 그리도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이르는 말이다.
나고야 성은 도쿠가와 시절에 건립된 성인데 2차 대전 당시 폭격으로 상당부분 훼손되어 아직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 복원공사가 계속 진행 중이다.
나고야 성 축조당시 자신들의 권위를 인정받기 위해 각 지방으로부터 기초석을 상납 받았다고 한다.
따라서 어떤 기초석은 가로 길이가 15미터나 되는 것도 있다고 한다.
오다, 도요, 도쿠의 성격을 설명하는데 울지 않는 두견새를 대하는 태도에 비추어 설명 하는 이야기가 유명하다.
새가 울지 않으면 오다는 새를 죽여 버리고
도요는 울도록 만들며
도쿠는 울 때까지 기다린다고 한다.
도요토미는 농촌의 극빈농 출신으로 오다의 왼팔이었다고 한다.
그가 오다의 대를 이었던 것은 머리가 비상한데에다 충성심이 누구보다도 뛰어난 사람이어서 오다의 신발을 가슴에 품고 다닐 정도였기 때문이란다.
오다는 누구보다도 정보를 중시했으므로 그의 오른 팔로 떠돌이 무사 출신의 아케치 미스히데를 기용하고 있었다.
오다는 급진적이고 과격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던 반면 아케치는 온건파였다.
따라서 아케치는 오다와 성격차이가 있어 그에게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오다는 아케치의 반란으로 궁지에 몰렸고 결국 혼노지에 불을 지르고 불길 속으로 뛰어들어가 자결했다고 한다.
아케치의 배반은 오다의 모욕에서 왔다는 설과 자신의 영지 침공에 한을 품었다는 설이 있다.
이에 도요토미는 아케치를 처단한 후 땅을 나누고 녹동을 착취하며 조선 침공을 도모했으나 실패했다.
결국 그는 그의 아들을 도쿠가와에게 부탁하고 죽었다.
도요토미의 아들에게 오사카의 본능사를 짓게 하지만 범종에 새긴 글자의 해석을 핑계삼아 모반으로 몰아 그를 처단했다.
이후 350여년 간 24대까지 평화로운 에도시대를 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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