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삶의 지혜를 찾아서/사랑하는 아들아

경신아14

by 굼벵이(조용욱) 2008. 2. 8.
728x90
 

경신아!

구정을 보내고 왔다.

그래도 우린 조상님들을 잘 만나서 서울에서 한 시간 정도 거리인 평택에 고향을 두고 있어 다른 사람들보다는 다녀오기에 불편함이 덜한 것 같구나.

아빠가 너 만 할 때에는 시골집에 내려간다는 것만큼 즐거운 일은 없었던 것 같아.

제사도 제사지만 시골 국민학교 동창 친구들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거든.

이제는 뿔뿔이 흩어져 각자 자신의 삶에 충실하다보니 대부분 만나기가 어렵단다.

지금도 안중에 살고 있는 친구들이 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서로 만나보지 못하다보니 점점 멀어지고 귀찮아지더구나.

암튼 그래서 제사를 지내는 일과 할아버지 산소를 찾아뵙는 일 외에는 그리 할 일이 없어서 주로 책을 보거나 TV를 보다 오는 명절로 바뀌었어.

어제는 제사를 마치고 점심식사를 한 뒤 외가댁을 방문했다.

조금 막히긴 했지만 2시간 정도 걸려서 도착했단다.

외할아버지는 사위랑 술 한 잔 함께 나누는 것이 즐거운 모양이야.

내게 한 잔이라도 더 주려고 이술 저술 내 오시더구나.

제사를 올리고 남은 술을 모두 음복하고도 모자라 두병을 더 가져오셨는데 그것도 다 비우자 더 가지러 가시 길래 그만 하겠다고 했다.

술은 자신의 주량에 부족한 듯 마시는 것이 모두에게 좋다.

술은 절대로 취하도록 마셔서도 안 된다.

너 군에 가기 전에 알려주었지만 술은 마지막 뒷정리까지 깨끗이 할 수 있을 정도까지만 마셔야 한다.

혹시 그게 안 되면 얼른 돌아와 취침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원샷이다.

특히 술이 취한 상태 보다는 처음 술을 시작할 땐 특히 원 샷을 조심해야 한다.

처음 술을 시작할 때 원샷을 서 너 잔 하면 그건 영락없이 사람을 가장 추하게 만든단다.

그리고 반드시 술을 나누어 마시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남들은 말똥말똥 한데 자기만 취해서 해롱거리는 것만큼 추한 모습도 없다.

남자가 술을 마실 수는 있지만 반드시 도를 지킬 줄 알아야 한단다.

취해도 마지막까지 한점 흐트러짐 없이 추한 모습을 드러내지 말아야 하는 것이 주도의 기본이다.

그러려면 자신의 주량과 술의 특성을 잘 알아서 되도록이면 천천히 나누어 마시는 습관을 갖도록 하거라.

술을 잘 먹는 다는 것은 절대 자랑거리가 아니다.

잘 먹는 다는 말의 의미는 많이 먹는다는 의미보다는 술의 특성을 살려 자리를 흥겹게 하는 정도의 술을 마신다는 것을 의미 한다.

무조건 많이 먹고 해롱거리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잘 먹는 것이 아니지.

술에는 절대 장사가 없다.

술만큼 정직한 것도 없다.

그래서 늘 술 앞에서는 조심하고 경계를 늦추어서는 안 된단다.

흔히 술을 우습게 여기고 잘난 척 까불다가 된통 당하는 경우가 많지.

술을 마시며 외할아버지와 할머니 모두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단다.

물론 네 이야기도 많이 했지.

모두들 걱정하지만 난 너를 믿지.

어떤 어려움도 극복해 낼 수 있는 강한 친구가 되어 돌아올 날을 기다린다.

************************

호신이 녀석은 시골에 내려갈 때부터 책과 신문을 가지고 가더라.

공부한다며 신문은 왜 가져 가냐고 했더니 신문을 볼 거래.

논문시험 준비한다고 신문 사설을 보는 줄 알았는데 역시 구정 특집 TV 프로그램 보려고 가져간 거였더라.

널 닮았는지 책은 무겁게 잔뜩 가져가 놓고는 한 줄 도 책을 읽지 않았지.

다녀온 오늘도 사흘 연속 책 한 줄 안 읽고 TV 앞에 있다.

얄미워 죽겠어

이젠 말하고 싶은 생각도 없어졌어.

제 놈은 자꾸만 내 눈치를 살피고 있지만 난 이제 그런 게임을 하고 싶은 생각이 없단다.

어차피 자신이 공부하겠다는 생각이 없으면 그 누구도 억지로 시킬 수는 없는 거고...

나중에 후회하는 것도 자신이고. 내가 그 애 인생을 대신 살아줄 것도 아니고...

***********

떡국은 먹었니?

구정이어서 훈련은 없었지?

집에는 올 수 없지만 그래도 훈련은 받지 않아 기분 좋았지?

다음 주면 자대배치 받겠구나.

배치 받는 대로 연락을 주렴

그리고 위문편지 어디로 해야 하는지도 바로 알려 주거라.

네 엄마가 네게 편지 안할까봐 아까부터 자꾸만 내 자리를 기웃거린다.

주책없이 편지 쓰는 데 와 가지고는 무슨 글을 쓰나 보고 있는 거야.

그리고는 띄어쓰기가 안 맞네, 글이 틀렸네 하면서 훈수도 하지.

아빤 인터넷으로 주로 편지를 할 테니 자대배치 받으면 인터넷 주소를 바로 알려 주거라.


2008.2.8

아빠가. 

'삶의 지혜를 찾아서 > 사랑하는 아들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신아17  (0) 2008.02.12
경신아16  (0) 2008.02.11
경신아13  (0) 2008.02.05
경신아12  (0) 2008.02.04
경신아11  (0) 2008.0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