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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지혜를 찾아서/인문학 산책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에 대한 나의 이해

by 굼벵이(조용욱) 2012. 1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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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는 담론이 아니라 삶 자체가 철학적이어야 한다.

소크라테스는 철학에 관한 저술 따위는 없지만 철학적인 삶을 살았기에 철학자로 불린다.

철학은 마음을 치료하는 도구이다.

의사가 수술도구를 이용하여 사람의 육체를 치료하듯 철학자는 철학을 통하여 자신의 마음을 치료한다.

그 치료의 핵심은 자연을 따르게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자연이 원하는 대로 사는 것에 만족하는 것이다.

자연은 다음의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하나는 이성적 섭리가 지배하는 전체로서의 자연이다.(Macro)

다시 말하면 우주론적 입장에서의 광범위한 자연을 말한다.

다른 하나는 우주의 일부분으로서의 인간본성 즉 소우주를 말한다.(Micro)

내 삶은 우주의 일부분으로 대우주와 연계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는 스토아 철학의 기본 사상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좀더 솔직하고 정직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현실에 대한 냉혹한 분석(cynical)이 필요하다.

희비극적 관점(serious + comic)에서 불편한 진실들을 남김없이 까발려야 한다.

사물이 가지고 있는 어두운 모습을 남김없이 적나라하게 폭로해야 한다.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는 그 예로

성관계란 ‘내장기관의 마찰로 인한 점액의 경련성 반출’이라거나

‘어제는 한 방울의 점액 내일은 방부처리 된 고기 덩어리’로 인간을 표현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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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아첨을 하고, 오만하게 굴고, 의심을 하고, 음모를 꾸민다.

이제 이들의 삶은 더 이상 어디에도 없지 않은가?

다 익은 올리브가 자연히 떨어지듯

죽음은 자연으로 돌아가는 아름다운 휴식이라고 정의한다.

배우만 달라질 뿐 똑같은 연극이 계속 이어지듯

인생은 동일성으로 영원히 회귀된다.

단지 지금 여기 내 인생의 장에 배우가 나 일 뿐이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모든 것은 결국 소멸할 것이다. (죽음의 평등성)

누군가를 잊거나, 누군가로부터 잊혀지거나, 누군가를 칭송하거나, 누군가로부터 칭송을 받거나,

이 모든 것들이 결국은 소멸될 것이다.(망각의 평등성)

그러기에 개미의 관점보다는 매의 관점에서 살아야 한다.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 우연이지만 신의 관점에서 보면 필연이다.

작은 것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우주적 관점에서 작은 것의 부질없음을 이해해야 한다.

영원히 지속되는 시간 속에 우린 단지 한 점의 시간을 살고 있을 뿐이니까...

사유에 의해 전체 우주를 끌어안음으로써 우리는 보다 넓은 공간(대우주)을 마련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