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치시대는 당 태종 이세민이 집권했던 시기가 아닌가 싶다.
그는 형제의 난을 거쳐 힘들게 왕위에 오른 만큼
자신의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신뢰를 기반으로 한 문치시대를 열어갔다.
정관은 당 태종 이세민의 연호이고 정요란 정치의 요체를 뜻한다.
오긍이 정관정요를 저술한 시기는 당태종이 재위하던 시기가 아니다.
당태종의 재위기간은 627년 ~ 649년 까지 22년간이지만
오긍은 670년에 태어나 747년까지 살았던 사람이다.
그는 최고통치자의 잘못된 행동이 국가에 얼마나 큰 재앙을 초래할 수 있는지를 통감하고
이를 예방하기 위한 목적으로 당태종의 행적을 가감 없이 실록 정신으로 저술한 것이 정관정요다.
당태종은 간언을 거침없이 받아들이고 현신을 임용하는 군주의 도를 강조한다.
당태종에게 300번이나 간언했던 위징의 예는 두 사람 모두를 빛나게 한다.
간언은 비판성 제안이다.
그러기에 늘 통치자의 비위에 거슬린다.
하지만 경청의 진정한 의미는 듣기 좋은 이야기를 들으라는 것이 아니고
바로 이렇게 입에 쓴 간언을 수용하라는 뜻이다.
군주가 자기 얼굴을 보려면 반드시 맑은 거울이 있어야 하고,
자신의 허물을 알려면 충직한 신하가 있어야 한다.
위징이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당태종 이세민의 이러한 군주관 때문이다.
어떤 군주를 만나느냐가 결국 신하의 능력을 좌우한다.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사치욕이 늘 화를 부른다.
양의 동서를 막론하고 사치와 향락에 무너지지 않은 국가는 없다.
그래서 그는 군주의 愼所好, 愼言語를 주장한다.
아랫사람은 윗사람을 생각없이 모방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군주는 좋아하고 싫어하는 바를 함부로 내비쳐도 안 되고
말도 삼가서 조심해야 한다.
물고기나 새도 식탐 때문에 잡힌다.
따라서 군주는 탐욕과 비루함도 늘 경계해야 한다.
그는 인의로서 교화하도록 노력하면서 공자를 숭상하고
변방의 오랑캐와도 소통하려 하였다.
신의에 기반 한 군신 간의 격의 없는 진솔한 토론을 즐기면서
신하의 직언을 정치에 반영함으로써
소통과 상생의 원리를 이미 1400년 전에 깨달았던 사람이다.
대부분의 통치자나 CEO들이 입으로는 소통을 외치지만
곁에는 늘 달콤한 언어를 쏟아내는 무리들로 채우고 자만에 젖어 산다.
조직원 한사람이야 그래도 별 영향이 없겠지만
조직의 수장이 진정한 소통을 저버리면 조직 전체가 위험에 처할 수밖에 없다.
그러기에 수장은 다른 모든 것에 앞서 우선 위징 같은 사람을 찾을 일이다.
권력의 주변엔 늘 입에 꿀 바른 사람들만 득시글거릴 뿐
위징 같은 사람은 대부분 꼭꼭 숨어있어 잘 눈에 띄지 않으므로 적극적으로 찾아나서야 한다.
대통령의 패션 하나가 대한민국 전체를 어지럽힐 수 있으니
옷매무새도 늘 근검절약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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