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균은(1569~1618) 조선시대를 통 털어 사대부들이 가장 싫어했던 인물 중 하나다.
성리학이 사회적 주류를 이루던 시기에
서얼들의 신분차별에 반기를 들고 나섰으니 그럴 법도 하다.
본시 특권층은 그들만의 리그를 즐기기 위해
그 대상범위를 철저하게 제한하려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단지 중세 조선시대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고
어느 시대 어느 조직사회든 그런 종류의 붕당은 늘 존재해 왔다.
하지만 사람이 제일 견디기 힘든 것이 공정성 침해 즉 차별대우다.
형제자매 간에도 부모가 아무리 잘해줘도 불공정한 차별대우 기색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심한 갈등상황이 발생한다.
그런데 호형호제 불가는 물론 입신양명의 기회마저 박탈당하는 등
각종 차별과 불이익을 받은 서얼들의 분노는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서얼의 자손은 문과, 생원, 진사시에 응시 불가)
중국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어서 춘추전국시대 서얼들은 주유천하 하면서
남의 집 식객 노릇하다가 실력을 인정받아 성공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허균 자신이 서얼출신인 것은 아니다.
그의 스승이 서얼출신이었는데 아마도 그의 영향이 크지 않았나 싶다.
거기에다가 불의를 못참는 강인한 성격이
무릇 권력은 백성을 위한 것이어야 함을 부르짖게 한 것이다.
그러나 원리나 원칙은 항상 권력의 하위개념이다.
공정경쟁을 거쳐 능력 있는 사람을 선발해야 국가가 바로 선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원리다.
하지만 권력이 이를 받아들여주지 않으면 이를 주장하는 이는 역모 죄로 처형당하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결국 허균도, 조광조도 뜻을 펼치지 못하고 젊은 나이에 유명을 달리해야 했다.
홍길동전은 중국소설 수호전의 내용을 참고했다고 한다.
중국의 고대소설들이 대부분 역사 속 인물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꾼에 의해 구전되면서 각색된 것이 많다.
조선시대에는 백성으로부터 호응을 받았던
홍길동, 임꺽정, 장길산의 3대 도적이 있었다고 한다.
홍길동전도 3대 도적 중의 하나인 홍길동을 각색했다고 한다.
허균은 자신의 반 권력적 성향을 담아 세간에 의적으로 소문난 도적을 주인공으로
이야기로 만들어 유포시킴으로써 빠르게 사회에 전파되어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는 이런 개혁 사상가들의 올바른 생각이 민중에게 퍼져나가면서
민중을 깨우고 민중이 움직이면서 서서히 정착하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오늘날 우리에게 거의 무한의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행복을 누리게 해준 선배 사상가들에게
머리숙여 깊은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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