헉클베리 핀의 모험(마크 트웨인)
대부분의 경우 소설은 자전적인 경우가 많다.
이 소설도 다분히 자전적이다.
미시시피강 안내인(Pilot)이라는 직업을 가졌고
노예시장에서 노예를 사고파는 과정에서 울부짖으며 가족과 헤어지는 광경을 보며 자란 마크 트웨인이
인종차별 제도를 넘어 문명이나 인간성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가지고
미시시피강 여행을 주제로 소설을 쓰는 것은 당연하다.
그 시기가 인종차별이라는 시대적 지배이념이 변화하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시대적 지배이념은 늘 변화한다.
그걸 선도해 가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마크 트웨인도 그들 중 한 사람이다.
현재적 관점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인종차별이라는 야만적 행위가
보편타당한 정의로 받아들여지던 시기도 있었다.
그것도 얼마 오래되지 않은 불과 150년 전 최고의 문명을 자랑하는 미국에서...
(아직도 미국사회에서 인종차별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닌 것 같다)
우리가 현재 물과 공기처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여러 가지 사회 시스템이나 법, 문화 중에도
이와 유사한 것들이 많다.
대하소설류가 쏟아내는 이야기들도 사실은 현재적 관점에서 과거를 부정하고 비판하는 내용들이다.
과거의 부정을 통해 현재의 변화를 부각시키거나 촉진시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현재적 관점에서 생생하게 그려낸 과거의 사실은 그 자체로서 강한 비판의식을 불러일으킨다.
한국의 근대사를 보더라도 하루가 다르게 빠른 속도로 진화의 물결이 흘러갔고 그 안에서 소재거리를 찾아 사실주의적 묘사를 통해 독자로 하여금 아이러니를 느끼게 하는 작가들이 많다.
나는 일기를 쓴다.
매일 매일의 사실을 기록에 남기기 위해서다.
사람의 기억은 한계가 있어 사실이 사실로 인식되는 것이 아니고 현재에 각색되어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언젠가 과거의 역사를 과거시점에서 생생하게 되돌아보고
현재적 관점에서 재해석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사실주의적 입장에서 사생활의 역사를 통해 인간의 삶을 적나라하게 재조명해 보는 것도
가치 있는 일이다.
이런 것이 바로 사실주의 아닐까?
아니 자연주의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사실주의가 사설에 해당한다면 자연주의는 뉴스에 해당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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