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개의 찬란한 태양(A thousand splendid suns)은 아프간 출신 미국인 의사에 의해 쓰여 진
아프간 여성의 슬픔의 서사시이다.
호세이니는 아프간 출신이지만 미국에서 성장했으므로 문체는 미국 스타일에 가깝다.
표현이 강하고 웅장하며 서스펜스를 느끼게 한다.
의사가 왜 소설을 썼는지 그 이유를 정확히 모르지만 아마도 글이 그에게 더욱 천부적이지 않았나 싶다.
전쟁의 아픔을 이야기하지만 전쟁 속 여성의 아픔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처절하다.
더군다나 여성을 경시하는 이슬람권의 종교까지 가세하면 처절의 극에 달하는 수준이다.
거기다가 현세가 아닌 5~60년 전 이야기라면 가히 경악을 금치 못한다.
이 이야기는 그 시대 이슬람 여인이 전쟁 통에 겪었던 처절한 아픔을
현미경처럼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아니 어쩌면 현실은 소설보다 아픔이 더했는지도 모른다.
사생아 출신 다섯 살 어린 여아 마리암은 격리된 움막에서 엄마랑 살다가
엄마의 자살로 홀로되자 15세에 억지로 구두수선공 라시드에게 시집을 가지만
기다리는 것은 남편의 매질과 노예 같은 삶이다.
자유롭고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11살 소녀 라일라는 옆집 소년 타리크와 사랑에 빠지지만
전쟁 통 폭탄으로 부모를 잃고 라시드의 속임에 빠져 라시드의 후취가 되어
첫사랑 타리크의 아이를 낳지만 라시드의 폭력과 멸시 속에
마리암과 몰래 국외탈출을 시도하다 초죽음이 되도록 얻어맞는다.
라일라가 죽은 줄로만 알았던 타리크와 다시 만난 것을 알게 된 라시드가
라일라를 목졸라 죽이려 하자 마리암이 삽으로 머리를 쳐 라시드를 죽여 버리고는
함께 도망치자는 라일라의 제안을 거절하고 자신의 분신인 라일라를 위해 초연히 사형을 받아들인다.
이 과정에서 겪는 수많은 전쟁 속 이슬람 여성의 아픔이 놀라울 만치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우리가 오늘날과 같은 자유를 구가하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이야기가 아니다.
80년대 90년대 우리 회사만 하더라도 여직원은 대부분 30세 이전에 시집을 갔고
시집가면 회사를 다닐 수 없었다.
내 기억에 딱히 해고규정이 있었던 것도 아니지만 그런 관행이 존재했고
따라서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면 대부분 자의반 타의반 그만두어야 했다.
사실 여성은 남성보다 근력 빼놓고는 모두 우성이다.
그러나 전쟁 등 근력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여성이 처절한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자살한 마리암의 어머니 ‘나나는 눈송이 하나하나가
이 세상 어디에선가 고통 받고 있는 여자의 한숨이라고 했었다.
그 모든 한숨이 하늘로 올라가 구름이 되어 작은 눈송이로 나뉘어
아래에 있는 사람들 위로 소리 없이 내리는 거라고 했었다.’
그런 고통 속에서도 분노를 고작 작은 눈송이로 비유하는 가냘픈 여인이다.
머지않아 여성이 남성을 지배하는 사회가 도래할 것이다.
하지만 현세를 살아가는 여성들이 반드시 알아야할 것이 있다.
지난 과거의 처절한 아픔이 오늘의 성숙을 가져왔다는 사실이다.
그런 만큼 더욱더 가슴 깊이 이 소설에 공감하며 현실을 감내해야 한다.
역사는 어느 날 아침 눈 떠 간밤 내내 수북히 쌓인 눈송이를 바라보는 것처럼
그렇게 보이지 않게 소리없이 흐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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