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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윤회매를 만드는 손끝에 나 자신을 모두 실었다.
가난한 살림도 잊고, 어찌될지 모르는 내 앞날도 잊고,
꽃잎을 만들고 있는 내 존재마저 잊었다.
오직 내 손에서 피어날 맑고 투명한 꽃잎만을 생각했다.
윤회의 순간, 그것도 이글대는 불길이 주는 모진 고통을 견뎌낸 뒤에
다시 꽃으로 피어나는 그 순간을 보는 것이 나는 좋았다.
백탑 아래 작은 방에서 내가 피워놓은 매화를 바라보며 벗들은 이런 이야기를 했다.
“매화나무에 꽃이 피었을 때, 꽃은 자신이 꿀과 밀랍이 되리라 알았겠습니까?
더욱이 그 꿀과 밀랍이 다시 매화로 돌아갈 수 있다는 걸 알기나 했겠습니까?”
-책만보는 바보(안소영 지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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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무는 오로지 매화에 열중할 뿐이다.
밀랍이 꽃으로 탄생하는 순간에 열중할 뿐이다.
밀랍 꽃과 매화가 같다고 생각하는 것은 인간의 마음일 터
매화는 열심히 꿀과 밀랍을 만드는 낙으로 살고
벌은 그걸 열심히 날라 모으는 낙으로 살며
이덕무는 밀랍으로 윤회매를 만드는 낙으로 살면 되는 것이다.
그걸로 신분의 한도 잊고 가난의 아픔도 견디다 보면
어느날 소명에 따라 자신의 존재의미를 찾게 될 것이다.
책에서 피어나는 냄새와 기름 때까지 사랑한 그가
규장각 검서관으로 소명을 다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시대가 그를 낳았다고?
천만에!
화려한 정조시대가 그냥 탄생한 것이 아니고
서자출신 이덕무와 그의 친구들의 노력이 하늘을 감동시킨 결과다.
무언가 목표한 바를 얻지 못했다면 그건 노력을 덜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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