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삶의 지혜를 찾아서/인문학 산책

바다의 도시 이야기(시오노 나나미)

by 굼벵이(조용욱) 2014. 8. 18.
728x90

'시오노나나미는 어떠한 사상도 윤리도 도덕도 심판하지 않고,

인생무상을 숙명으로 짊어진 인간의 행적을 추적하고 싶어했다.

그녀는 1 천 년 동안 공화제를 지키다가

1797년 나폴레옹의 말발굽 아래 사라져간 베네치아 공화국의 멸망을

온갖 시련과 질병 끝에 천수를 다하고 죽어가는

인간의 자연사에 비유했다.'

천수를 누리다가 사라지는 자연사는 축복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발견되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천리(자연법칙)를 따랐다는 것이다.

자유롭게 사고하고 행동하는 자연인 만이 자연사 한다.

인간의 정신이 말살된 중세 그 험난한 종교사회 속에서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해주려는 국가적 노력이

베네치아란 나라에 천년의 자연사를 보장해 준 것이다.  

 

'나의 저작 태도의 근저가 되어온 생각은 '역사는 오락이다'라는 것 바로 그것이다.

굳이 재미있는 일들만을 골라잡지 않아도 그 자체로서 벌써 재미있는 것이 역사다'

라는 표현을 통해 역사의 불가측성을 설명한다.

만일 역사가 빤한 결론으로 이어지는 결과라면 오락처럼 재미있을까?

개구리 튀는 방향으로 아이러니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재미있지 않을까?

인생도 그렇지 않을까?

인생사 불가측 불가해한 것들의 범벅이기에

모두들 한방을 노리며 끈질긴 생명을 이어가는 것은 아닐까?

신 만이 할 수 있다는 기적을 만들며

사유를 통해 신의 경지를 왔다갔다 하는 게 바로 인간이다.

내 안에 부처가 존재하고 그리스도가 존재하며 스스로 신이 된다.

 

'특허제도가 처음 도입된 것도 베네치아였다. (1474)'

이미 1400년대에 특허제도를 보장했다는 것 하나 만으로도

베네치아의 자유정신을 읽을 수 있다.

베네치아는 품질개량에 중점을 두었으며

산업혁명기 영국처럼 대량생산을 노리는 것이 아니었다.

품질을 가지고 승부한 것이다.

품질에는 자신의 혼을 담는다.

혼을 담은 작품은 천년이 가도 무너지지 않는다.

베네치아의 자유정신과 인간존중 그리고 혼을 담은 몰입이

하잘것 없는 작은 도시국가를 유럽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주역으로 등극시킨 것이다. 

 

'갈릴레오 갈릴레이를 교수로 맞아들이는 등 학문의 자유로 정평이 나 있는

파도바 대학 법학부의 답신이 없는 한 어떤 판결도 무효라고 정하고 있으니

이단재판의 지도자격인 에스파냐나 교황청에게 만족스런 결과가 나올 까닭이 없었다.

이런 베네치아였으니 마녀재판은 단 한 건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 한 대목만 보더라도 베네치아의 정신세계가 어떠했는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마녀재판이 횡행하는 무지의 중세사회에서 이런 정도의 고차원적

인간존중의 사법시스템을 운영했다는 것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철저한 정통 카톨릭 국가이지만 프로테스탄트, 그리스정교, 유대교, 이슬람교 까지

모두 인정한 나라였다.

종교 때문에 발생한 전쟁으로 점철된 중세시대에

십자군 전쟁의 주역으로까지 나서면서도

어찌보면 오늘날 우리나라 만큼이나

개인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를 인정한 나라였다.

 

'그녀는 '교만한 자 오래 누리지 못하니 오직 일장춘몽일 뿐이다.'

(일본 군기문학의 고전 헤이케 모노가타리의 서두부분)라고 하면서 

'성자 역시 필쇠이다.'라는 말을 덧붙인다.'

盛者는 보통 교만하기에 必衰한다.

그것은 보편적 진리이다.

그러나 베네치아는 성자이지만 겸손했다.

그래서 천수를 다했다고 하는 것이다.

 

'긴 세월의 흐름 속에 투자대상의 변이가 이루어졌고 

그것이 베네치아 공화국의 쇠퇴로 이어지는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

 

'자연히 아이를 낳지 않게되었다.

결혼하고도 아이를 갖지 않는 부부를 볼 수 있게 되었고

나아가서 아예 결혼을 하지 않는 자도 흔히 볼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상태가 되면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은 오로지 현재 가지고 있는 것의 안전 뿐이다.'

베네치아가 마지막 국운을 다하고 운명을 다하는 순간에 일어나는 현상을 

시오노나나미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지금의 우리에게 나타나는 현상 그대로 베네치아 말기가 그랬다.

그녀는 아마도 지금의 일본을 겨냥하여

경종을 울리기 위해 이렇게 대미를 장식했는지 모르지만

오히려 우리가 더욱 절실하게 그녀의 경고를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