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9. 9 : 벌초, 그리고 태어나 처음 해보는 선물
오늘은 벌초하러 고향에 내려가기로 한 날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밀린 영어 공부를 했다.
공부가 많이 밀려 있어 7시가 다 되도록 공부하느라 아내를 깨울 생각을 하지 못했다.
아내는 자기를 깨워주지 않았다고 불평을 했다.
잠은 스스로 깨는 것이지 누가 깨워주는 게 아닌데 집사람은 언제나 내게 그런 불평을 한다.
더군다나 전날 내게 깨워달란 부탁을 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우리는 부랴부랴 채비를 마치고 시골로 향했다.
벌초하러 고향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 차가 밀리는 바람에 9시 30분 정도에 도착했다.
준비해 간 도시락으로 아침 식사를 하고 앞 메깟 선산으로 향했다.
먼저 온 종원들이 거의 전부를 이미 깎아 놓은 상태였다.
사람들 손길이 부족하여 갈퀴질을 제대로 못해 여기 저기 잘려나간 풀무더기가 널려 있기에 열심히 갈퀴질을 하였다.
종원들이 새참을 먹는 동안에도 늦게 도착한 죄를 대신하여 열심히 갈퀴질을 했다.
점심 식사 후 우리는 바탕골 선산으로 향했고 많은 종원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순식간에 깎아 나갔다.
용협이와 용성이에게 '나는 이제 그만 급한 일로 서울에 가야한다'고 이야기 하자
용협이는 “형님은 그만큼 했으면 가도 된다”고 했다.
용성이는 “용협이가 인정하면 된 것이다.” 하면서 동조해 주었다.
나를 믿고 사랑해 주는 동생들이다.
선산에서 돌아와 샤워를 한 후 곧바로 출발했기에 차가 덜 막혀 오후 5시 정도에 서울에 도착할 수 있었다.
금년말 승진인사를 생각해서라도 이번 추석에는 몇몇 분들께 선물을 해야 할 것 같다.
선물에 넣을 명함을 만들어 아내와 함께 수원목장으로 향했다.
“중추가절, (괜한 짓 했다고 너무 나무라지는 말아주십시오), 인력관리처 인사관리팀 조용욱 올림”
이라고 내가 직접 컴퓨터로 만든 명함을 수원목장 주인에게 전해주었다.
SKT, MH, JYS, HKE, LCH 다섯 분에게 각각 고기셋트 한 상자씩 택배를 부탁했다.
돌아오는 길에 가락시장에도 들렀다.
요즘 배 값의 시세를 물어보고 어떤 과일이 괜찮은지 알아보았다.
나중에 Y팀장에게도 선물하기 위해서다.
일반 과수원 배는 최상품이 3만원 정도 하는데 유기농 용법으로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한 배는 한 상자에 6만원씩 했다.
오늘은 너무 피곤하였으므로 일찍 잠에 들었다.
(돌이켜보면 괜한 짓이었다.
하지만 그 땐 그게 관례였다.
아니 나는 내가 잘 아는 꼭 필요한 고마운 분들께만 중추가절을 핑계삼아 선물을 했었다.
그러니 지방에서 근무하는 이름모를 승진 대상자의 가슴은 얼마나 타겠는가!
어느 직장이고 이런 일들은 있어왔고 아직도 진행중인지 모른다.
아니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불법, 부당, 불합리는 사람들이 정한 룰이지만 승진을 바라보는 사람들 마음 속엔 그보다 우선하는 가치가 도사리고 있다.
이런 부조화는 원시시대부터 지금까지 존재해 왔다.
우리는 모두 사냥을 나갔다가 돌아온 총각에게 몸을 선물하고 고기를 선물받았던 원시인의 후예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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