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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의 역사(용욱이의 내면세계)/2003

20030520 마음 속 갈등들

by 굼벵이(조용욱) 2022. 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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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5. 20()

아침에 처장님 방에서 갑작스런 회의가 소집되었다.

처장님 주특기가 나온 거다.

그는 마음에 안 들면 모두 집합시켜 큰소리로 싸잡아 혼을 낸다.

내가 직원 시절 그로부터 질리도록 당했던 푸닥거리다.

비상임이사 간담회 준비자료의 내용이 부실한 것을 원인으로 삼았다.

OO부장은 같은 연배에다 부사장 동기여서 대놓고 직접 혼낼 수는 없기에 담당과장인 L과장과 다른 부장들을 모두 소집한 거다.

30여분 단체기합을 받았다.

처장님 훈시가 거의 끝나갈 무렵 내가 처장님께 먼저 양해를 구하고 일어섰다.

마침 회의 소집 직전에 전무님으로부터 어제 행동지침을 자회사에 내려 보냈는지를 묻는 전화가 왔었기 때문이다.

전무님께 긴급히 보고해야 할 내용이 있어 잠깐 보고를 하고 오겠다고 하면서 경색된 자리를 빨리 파하게 만들었다.

김처장은 OO팀에서 만든 비상임이사 간담회 자료의 내용이 별로 맘에 안 들고 내용이 매우 부실하니 이를 Y팀장이 보완하라고 지시했다.

회의가 끝난 후 자리로 돌아오니 Y는 그걸 내 책상에 던져놓았다.

정말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

대놓고 여에게 정말 힘들어서 못살겠다고 말해 버렸다.

허구한 날 나만 찾아대니 정말 괴롭고 힘들어서 더 이상 못살겠다고 덧붙였다.

Y는 자존심도 없는 데다 내게 화를 낼 수 있는 처지도 아니어서 구차하게 나를 달래는 말만 늘어놓으며 부탁을 거두지 않았다.

그럴 때가 좋은 때라는 둥 비열한 빈소리만 늘어놓았다.

내가 이렇게 대놓고 항변하는 이면에는 다른 속셈이 숨어 있다.

내가 과장 한 사람 더 받아야 한다고 요구할 때는 자기 멋대로 거절하면서 마치 나를 자기 부하처럼 대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그의 부하가 아니다.

P가 전산 결재라인 시스템을 계속 잘못 연결해 놓아 어제 그를 불러 제대로 고쳐놓으라는 지시를 했었다.

나의 결재라인을 인사관리팀에서 떼어 본래의 직무권한에 부합하도록 처장 직속으로 연결시켜 놓았다.

아마도 결재라인을 잘못 연결한 것이 여성구로 하여금 내가 계속 그의 부하인 것처럼 생각하게 만들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저녁에 처장님과 함께 OOOO처 M처장 이하 몇몇 사람과 저녁약속이 있었던 모양이다.

날자가 특정되진 않았지만 며칠 전부터 Y는 계속 내게 함께 갈 것을 이야기 해 왔었다.

오늘 고등학교 후배들에게 저녁을 사기로 했었는데 갑자기 오늘 그들과 저녁식사를 하자는 것이다.

결국 후배들과의 약속을 다음 주로 미루고 M가 좋아하는 홍수사로 갔다.

K처장님은 마침 부사장과의 저녁 약속이 생기는 바람에 자연스럽게 빠지고 Y와 나만 갔다.

OOOO처에서는 M처장 이외에 H부처장 그리고 OOOO팀장이 나왔다.

뒤이어 A도 불렀다.

사실 그렇게 마시는 술은 별로 재미가 없다.

M처장이 내게 왜 통 말이 없냐고 물었다.

나는 내가 끼어들만한 화제가 별로 없는 데에다 A가 떠는 주접이 별로 맘에 안 들었기에 되도록이면 말을 삼갔다.

Y가 신이 나서 A과 함께 계속 주접을 떨어댄 것도 나를 더욱 조신하게 만들었다.

나아가 H부처장도 그런 자리에서 만난 것도 처음이고 H OOOO팀장도 술자리는 처음이다 보니 내게는 모두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M처장이 A이 농간에 놀아나 과부집 BBC2차를 간다고 한다.

A가 전화로 불러낸 BBC여사장이 그랜져 승용차를 타고 우리를 모시러 왔다.

A이 나에게 동승할 것을 권했지만 나는 나중에 가겠다며 자연스럽게 빠져버렸다.

어제 내가 만든 윤리경영 행동지침을 선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룻만에 행동지침에 어긋나는 자리를 가질 수는 없다.

아무런 죄책감 없이 그런 자리에서 먹고 마실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울고 싶은 놈 뺨 때린다고 마침 H부처장이 차에 오르지 않고 그냥 집에 가기를 원했으므로 나도 함께 집으로 향했다.

그는 버스를 타고 가겠다며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내가 바라는 건전한 사고다.

A이나 Y에게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생각이다.

나도 버스정류장까지 그와 함께 걸어가 그를 먼저 보낸 후 나도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왔다.

집에 돌아오니 10시 반이다.

하루의 건전한 마무리로 딱 좋은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