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 6. 3(화)(맑음)
사내공모제가 말썽을 일으킬 것 같은 예감이 들어 사전에 미리 준비를 해놓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K처장이 나와 KM과장을 불러놓고 한바탕 불호령이다.
“도대체 사내공모제를 검토하라고 지시한 지가 언제인데 아직까지 안 되었느냐?”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준비해 놓은 검토서를 날름 내밀었다.
그러자 처장님은 그 특유의 습성대로 연필을 휘갈기며 보고서를 고쳐나가기 시작하였다.
처장님이 요구한 대로 보고서를 수정하여 한 부를 먼저 Y에게 주고 처장님에게 가져가니 다시 또 새롭게 고친다.
마지막 결재가 떨어질 때까지 그의 주문은 죽 끓듯 바뀐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기에 항상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어 내겐 그리 새삼스럽거나 불만스럽지 않다.
하지만 Y는 자기 의견과 다르다며 어휘가 틀렸네, 내용이 안 맞네 하면서 처장이 지시한 내용을 다시 자신의 생각대로 수정하란다.
나를 향한 Y의 수정지시가 계속 이어지는 중에 처장님이 나타나셨다.
아마도 그런 일련의 과정을 지켜봤을 것이다.
순간 여성구는 얼른 꼬리를 내렸다.
하지만 처장님이 집무실로 돌아가기가 무섭게 무엇이 맞네 안 맞네 하면서 말도 안 되는 자신의 주장을 내게 펼친다.
그 와중에 내가 마음속으로 느끼는 갈등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자신과 동격의 부장이고 처장 직속의 별도 조직인데 내게 이런 말도 안 되는 간섭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젠 포기할 만도 한데 그는 늘 그런 식으로 나를 힘들게 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말을 귓전으로 흘리며 내 방식대로 나갈 수밖에 없다.
나의 보고서를 수정하려 드는 그의 저의를 나는 안다.
어떻게 하면 자기 이익을 위한 보고서를 만들 수 있을까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이다.
내가 그의 직속으로 편입된 이후 지금까지 그가 보여준 행태는 승진제도건 이동제도건 자기를 위한 보고서를 만들기에 혈안이 되어 왔었다.
나는 그런 그의 극단적 이기주의가 정말 싫다.
그의 삶에 배어있는 잘못된 경향성이 그동안 회사를 얼마나 심하게 망가뜨려 놓았는가!
더 이상 나를 그의 잘못된 욕망을 채우는 도구로 이용하게 하고 싶지 않다.
덕분에 10시까지 야근하고 귀가했다.
집에 와 영화 ORANGE COUNTY를 보고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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