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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지혜를 찾아서/인문학 산책

상처로 숨쉬는법(김진영) - 2강. 사유의 첫걸음

by 굼벵이(조용욱) 2022. 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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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유의 첫걸음

 

저는 대중 인문학 속에 깊은 절망이 뿌리 내리고 있는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우리 사회가 점점 구경꾼의 사회가 되어가고 있지 않습니까?
​트로이에라는 말이 있습니다
조건 없이 주인을 모시는 하인 근성이에요
하인은 주인을 섬기는것이 자기 삶의 도덕이죠.
이 성실성, 충실성이라는것이 있습니다
​아도르노가 끝까지 충실 하려는 주인은 이제는 그 누구도 따지지 않는 진리라는 개념이죠
​이 진리는 언제나 은폐 되어 있습니다
​부정성을 통하지 않으면 도저히 드러날 수 없는 진실을 밖으로 불러 내자면 특이한 주문이 필요한데 그 주문 중에 하나가 사안을 급진화 시킨다는 거예요
과장 하는 거죠
어떤 의미에서 보면 드라마로 만드는 거예요
드라마에서 왜 그렇게 극적인 상황을 만들어 내입니까
극적인 상황이 아니면 드러날 수 없는것을 드러나게 만들기 위한 하나의 테크닉이에요
드라마는 절박한 심정에서 찾아낸 고충어린 진리탐구의 테크닉입니다
 
​삶은 욕망의 세계에요
​문화는 인간이 인간답지 못하도록 만드는 환경 속에서 인간다운 삶을 희구할때 꾸며 나가고 싶어 하는 삶의 형태예요
인간의 삶은 육체적으로든 물질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에요
​그 제한성 때문에 행복이라는 궁극적 목적이 생겨요
이 제한성에서 행복으로 건너가려는 것이 인간의 본질적 욕망이고 삶의 운동성이에요
이 운동성이 제대로 되어 있을 때 나올 수 있는게 문화고요
​현대인의 욕망 즉 문화라는 건 전부 문화산업에 종속되어 버렸기 때문에 문화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문화가 없다는 건 삶의 행복의 가능성을 찾아가는 길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얘기와 똑같은 거예요
그래서 아도르노가 문화는 쓰레기다라고 얘기하는 겁니다
아도르노는 삶의 속살 풍경을 열어 보이는 거예요
어떤 주관적인 판단 논리적인 판단 도덕적인 판단을 전부 제거 하려 하죠
사유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그럼에도 사유 할 수 있는것이 있다면 논쟁이 아니라 세상은 이렇다는 발언 밖에 없다는 거죠
​사유가 할 수 있는 한 극단적인 상황까지 갔을 때 보여지는 풍경을 얘기해서 그걸 듣는 사람이 옳다 그르다 뭔가 판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몰고 가려는것이 이 아포리즘의 최종적 의미일 수 있어요
​무엇이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다는 가치판단이 이미 권력적이다
​그래서 논증도 권력적이다
논쟁은 중요한것과 중요하지 않은것을 나눌 때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니체도 나중에 책이라는 형태로 글을 쓰지 못 했어요
완전히 파편 적인 글을 씁니다
특히 후기로 가면 완전히 파편 적인 글쓰기를 보여 줍니다
​철학이 그렇게 추구 했던 올바른 삶은 오늘날 어떤 삶으로 변했나요
물질적 생산과정의 부속물이 되었습니다
물질 관계 속에 완전히 종속 되어 버렸고 결국 사적 영역 단순한 소비 영역으로 변했죠
개인이 밀폐된 사적 영역이라 믿는 고유한 자기만의 세계도 알고보면 소비 영역이라는 거예요
 
​중요한 건 지식인이기 때문에 공부하는 거예요 
말하자면 우리의 꿈이 실현되느냐 안 되느냐는 상관없어요
중요한 건 꿈을 놓치지 않는 거예요
비록 얻을것이 없어도요
이것이 아까 말씀드린 트로이에입니다
성실성 바꿔 말하면 직업윤리에요
직업은 소명입니다
내가 선택하는것이 아니라 그냥 할 수밖에 없는것이 있어요
그게 원래 직업의 뜻이에요
 
​독일 말로 직업은 베루프라고 합니다
성경에 보면 사도들이 누구예요
신에 의해서 부름을 받은 사람들이죠
그 때 베루펜이 됐다는 말을 쓰는데 그 의미가 지상에서는 직업으로 수용 된 거예요
직업은 아무때나 막 바꾸는 게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비정규직 같은 거 진짜 웃기는 거예요
비정규직의 근본적인 목적은 사람들을 그저 연명 하는 존재로 만들려는 거죠
​많은 지식인들이 자기 희망을 투사해 놓고 그 희망이 존재한다고 주장해요
아직 살 만한 세상이야 이렇게 착한 사람도 있어라며 희망에 가득찬 얘기를 하죠
​하지만 그건 상처들을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 하고 상처들을 절대로 보여 주지 않으려 하는 객관적 권력을 더욱 공고히 할 뿐이라는 겁니다
 
​이 개명한 사회에서 철학이 종교가 되어 갑니다
우리의 엄중한 현실 세계가 점점 종교가 되어가고 있어요
이것을 신화 시대라고 부르죠
우리가 중세로부터 탈출 했습니까
천만에... 그렇지 않습니다
​현실과 종교가 완전히 분리되어 있을 때에만 상호간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종교는 그럴려고 태어난 겁니다
​지금 종교는 정치 곧 돈입니다
​거기서 이득을 취하려고 진리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노동이라도 열심히 하다 보면 세상의 이치를 깨닫게 돼요
​그런데 수단과 목적이 너무 완벽하게 뒤집어져 있기때문에 수단이 목적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아무도 기억할 수 없게 되었다는 거죠
사는 건 원래 이런 것이라고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거죠
​모든것이 다 주관성에서 출발하는 거예요
그러나 그런 주관성으로부터 출발해서는 객관적 권력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객관적 권력은 절대로 자기를 드러내지 않지만 또한 드러내지 않을수가 없도록 되어 있어요
왜냐하면 자연스러운것이 아니라 억지로 만들어지는 것은 언제나 만들어진 흔적을 숨길 수가 없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