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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지혜를 찾아서/인문학 산책

상처로 숨쉬는 법(김진영) - 3강. 상처 안에 머물기

by 굼벵이(조용욱) 2022. 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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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상처 안에 머물기
​희망이든 올바른 삶이든 유토피아든 현실 속에 없는데 선취해서 마치 그것이 있는 것처럼 얘기하는 것은 행복과 자유의 삶을 오히려 불가능한 것으로 만드는 객관적 권력의 작동방식입니다
​대자적 삶과 즉자적 삶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대자적이라는 건 내가 생각하는 나예요
내가 나를 생각할 때 떠오른 나
자유롭고 행복하고 그 무엇에 의해서도 억압 받지 않으며 정체성을 갖고 그 누구와 비교해도 꿀릴 것 없는 나
나아가서는 나의 목적을 실현해 가고 있는 꽤 괜찮은 나를 얘기합니다
​라캉식으로 이야기하면 상상적 자아예요
​즉자적 삶은 그것 자체를 보았을 때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에요
즉 본질이 나죠
​허위 의식으로 가득찬 삶을 행복으로 받아들이게 만드는것이 현대사회의 시스템이죠
​우리의 삶은 완벽한 허위 의식으로 만들어져 있어요
​우리는 상품을 단순히 상품으로만 받아 들이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는 불가능하지만 이루고 싶은 행복에 대한 소망을 투사해서 본다는 거예요
​내가 이 상품을 사면 내 현실은 그렇지 않지만 내가 원하는 삶을 가질 수 있는것처럼요
그게 바로 주물주의예요
​우리가 상품을 살때 그 상품에 나의 소망을 투사하는 행위는 현실에 대한 비판 의식에서 출발 한다는 겁니다
헤겔식으로 얘기하면 모든 진정한 자유는 불행하다는 의식이 생기면서 시작돼요
​이처럼 삶이 가상이 되어 버린 상황에서 삶이 원하는 행복을 가상한다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대자적이기는 하지만 즉자적이지 못한 주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픈 마음으로 응시할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아도르노는 그러한 주체를 시대착오적이고 감상적이라고 얘기하죠
 
​아포리즘이라는 글쓰기 방식이 있어요 촌철살인식 글쓰기죠.
(나는 그걸 '시적 언어로 글쓰기'라고 표현합니다.)
​주체와 객체 즉 개인과 사회 사이에서는 갈등이 일어나죠
이 갈등의 요인을 변증법적으로 정 반 합의 관계를 통해서 하나씩 하나씩 정화해 나가면 절대 정신이라는 완결된 주체성에 도달한다는 것이 헤겔의 변증법입니다
이 절대 정신이 도달하는 지점이 곧 시민사회가 완성되는 과정이죠
개인과 사회가 정체성을 이루는 과정입니다
살 만한 삶이 되는 거예요
주체라는 개인과 객체라는 사회가 상호간에 완전한 행복과 자유의 관계를 맺는 것이죠
그런데 아도르노가 볼때 헤겔의 이념은 훌륭하나 결국 헤겔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시민사회가 개인의 자유보다 더 우위에 있다는 거예요
​개인의 자유를 완전하게 성찰하거나 달성 하지 않은 채 이 개인을 시민사회의 이데올로기 속에 포함 시키고 있고 그런 의미에서 헤겔의 변증법은 권력적이라는 겁니다
결국 대의에 의해 작은 개체를 희생 시키는 거죠
개인을 중요하게 생각하면서도 실제로는 개인이 전체에 억압 당할 수밖에 없는 논리가 드러나는 부분입니다 
​헤겔은 이렇게 이야기 하죠
변증법은 정과 반이 있으면 그 반, 합으로 가지 않으려는 요소 안에 오랫동안 머물면서 그것들이 어떠한 희생도 당하지 않은 채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을 때까지 사유하는 것이다
이것을 지양이라 얘기해요
정과 반이 합의 단계로 넘어갈 때 필요한 사유 과정이죠
​아도르노의 사유는 머무름의 사유에요
자기 목적 때문에 머물러야 하는 시간을 단축하고 빨리 건너가지 않는다는 거죠
머무름의 성찰이죠
아도르노의 사유가 부정 변증법이라면 헤겔은 긍정 변증법이예요
헤겔은 너무 빨리 건너 갔어요
시민 사회를 위해서 합으로 건너가는 과정 속에 개인이 너무 빨리 포기되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개인이 자유를 획득한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민사회에 의해 억압을 받는 상태가 되어 버렸고 이 시민사회의 모순이 지금까지 내려온 결과가 오늘날 사회에요
​아도르노에게 개인은 자기가 생각하기에는 주체이고 행복과 자유를 보장 받고 있는 것 같지만 알고보면 상처투성이다 이거죠
즉 공적인 주체성을 다 잃어 버리고 사적인 영역에서만 주체임을 주장할 수 있는, 사실 주체가 될 수 없는 상처 덩어리라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날 개인에게 주체의 자리는 텅 비어 있어요
개인은 있지만 주체는 아니에요
​개인과 주체 사이가 텅 비어 있어요
개인에게 당연히 주어져야 하는 장소는 부재의 장소라는 거고요
​우리가 반드시 가질 수 있고 가져야만 했는데 그만 빼았겨버렸기 때문에 텅 비어 있는 장소가 우리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자유와 행복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들은 전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곳 오로지 환상만이 들어 있는 곳 이데올로기에 주입 당하고 주문 당하고 도취 당하고 자기 환각만을 일으키도록 되어 있는 알고보면 텅 비어 있는 장소 이것이 아도르노가 말하는 상처입니다
​이 상처를 치유 하거나 위안 하자는것이 아니라 상처 안에 머물자는 것이죠
일단 머물러야 되는 거예요
나아가서는 상처를 관통 해야 돼요
​사회라는 공적 담론이 불가능해진 오늘날의 사회가 무엇인가를 응시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성찰 공간이 바로 개인입니다
​정신이 전체로부터 떨어져 나와서 특수한 분야가 되었기 때문에 그 영역에 속해 있는 지식인들의 연구 또는 비판 행위가 오히려 객관적 권력을 더욱 깊이 은폐시킨다는 것이죠
​사회는 정신을 순화 시킬 필요가 있는 거예요
그 방법이 무엇이냐 그것이 바로 제도화 하는 겁니다
​사회는 정신을 통제할 필요가 있죠
그 방법이 뭐냐 정신을 특수 하는 거예요
그것을 제도의 영역에 묶어 놓는 거예요
거기서 태어나는 사람들이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입니다
​밥벌이 걱정이 없는 사람들이 더 밥벌이에 치중해요
정치도 한다 그러고 사회 인사가 되려 하고 프로젝트 따러 돌아다니고 나랏돈 흘러 들어오는 단체 기웃 거리고 그러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