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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지혜를 찾아서/인문학 산책

상처로 숨쉬는 법(김진영) - 제13강. 미인

by 굼벵이(조용욱) 2022. 3.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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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강 미인
​소명이란 무엇이죠
신이 인간을 창조 할 때 무엇을 특별히 줬으면 그것이 신의 의도대로 쓰여야 하는 거예요
​아름다움이 축복이고 은혜라면 그리고 더군다나 소명이 그 안에 들어 있다면 아름다움은 무엇을 위한 것이죠
행복을 위한 것입니다
​결국 자신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어떠한 태도를 지니고 있는가의 문제예요
​성공을 위해 사랑을 포기하면서 행복을 추구할 때 그 행복은 유감스럽게도 아름다움이 소명으로서 지니게 될 행복하고는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거죠
아름다움의 소명으로 보면 교환을 잘 못하는 거예요
이렇게 됐을 때 불행한 미인이 태어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예쁜 여자는 뭘 하든지 예뻐요
예쁜 척 안하는 게 더 예쁘게 만들죠
​아름다움이 소유 되면 그다음에 남는 운명은 뭐냐
낡아 가는 것 밖에 없어요
소유된다는 것은 물화 되는 것인데 물질의 운명이 뭐예요
노화 되는 거예요
​내가 좋아하는 여인은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게 많아져요
이것이 소유될 수 없는 아름다움의 본질입니다
​이 본질로서 빛나던 여인이 이후에 그 아름다움을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아름다움으로 바꿔 나가는 모습을 볼 때 그 여인을 사랑했던 마음은 참담 해져요
'​그 사람이 아프다' 사랑한다는것은 그런 것이죠
그 사람은 타자이지만 그 타자와의 관계가 오래 될수록 그사람은 나에게 들어와서 신체의 장기처럼 되는 겁니다
나중에 헤어질때 왜 그렇게 아픈가 보면 두가지 고통때문에 아파요
그 사람을 잘라내는 게 아프기도 하지만 그 사람을 잘라내는 것이 곧 내 장기를 잘라내는 일이기 때문이죠
​객관적 권력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의 인간은 무능력해져요
즉 자기를 못 지켜요
자기에게 주어진 귀한 것을 지켜 낼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자신을 파괴해 버리죠
오늘날 우리가 무슨 힘으로 살아가는가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해하는 힘으로 살아가는 것 같아요
자기를 지키는 일을 스스로 포기하고 사회적으로 요청 된 것에 맞추어서 자기를 바꾸면서 살아가는거죠
​아도르노식으로 얘기하면 아름다움은 나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타자를 위해 있어요
​저는 그것이 연민과 인식이라 생각합니다
자, 나의 아름다움이 타자를 사랑한다는 것은 곧 타자를 아름답게 만드는 일이죠
이것이 사랑이에요
​처음 볼 때는 왜 저렇게 생겼어 할수도 있지만 사랑을 하다 보면 다 예쁘게 보이잖아요
그건 내가 자꾸 아름답게 해 주는 거예요
​객관적 권력이 지배하는 사회 속에서는 사실 그 누구도 아름다울 수 없습니다
알고보면 다 지저분 해요
왜 그래요
살려고 하다 보니까 나를 무엇에 맞춰야 되는 거예요
나를 그 무엇에 맞추는 것은 기형화 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자를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서는 두가지 성찰이 있어야 해요
하나는 타자가 추하다는 것에 대한 인식입니다
또 하나는 내가 사랑하는 그 사람이 저렇게 추하다니 라는 연민이에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아름다워야 하는 사람인데 저렇게 추할 수밖에 없구나
이런 연민이죠
그다음에는 아름다울 수밖에 없는 그사람이 왜 추해졌을까에 대한 인식입니다
이 두가지가 함께 있어야 해요
가엾이 여기는 마음과 냉철한 문제의식이 함께 있어야 되는 겁니다
​사람은 무언가를 이해할 때 비로소 진정한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연민과 인식은 그 이후 어떻게 되길래 이 추할 수밖에 없는 타자를 아름답게 만들게 되는가
여기에는 실천이 있다는 것이죠
​현대예술은 전통예술에 대한 저항으로 태어난 것이기 때문에 제일 먼저 저항의 성격으로 나타나는 것이 형식이에요
찌그러져 있고 왜곡 돼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형식 파괴라든지 열린 형식이라고 하죠
예술의 운명이 뭡니까
아름다움이에요
악의 꽃도 꽃이죠
​그런 의미에서 현대 예술은 하지만 아름다움을 위해서 추를 선택하는 것이에요
​현대예술은 어떤 대상을 아름다운 것으로 사랑 하려 하지만 그 대상이 추한 거예요
​현대예술은 연민과 인식 두가지가 축이 되어 나온 예술입니다
​본래 아름다운 것이 되어야 하는데 추해져 버린 것에 대한 연민이에요
​연민은 파토스에요
그냥 불쌍하게 여기는 게 아니라 저항 의식이 들어가 있는 거예요
파토스만 있으면 뭐해요
아무것도 못 해요
통찰이 있어야죠
그것이 인식이에요
​현대음악은 전통적인 형식을 전부 파괴 시키면 스스로 추한 것으로 계속 변해 가요
​타자를 사랑하려고 하는 미인은 필연적으로 점점 추녀가 될 수밖에 없어요
이 추를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기때문에 그래요
​이 마지막 얼굴을 저는 다름 아닌 미인이라 불러요
그런데 이 미인의 얼굴들이 아름 답습니까
추해요
왜 추합니까
누군가가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타자를 위해서 다 주어 버리고 나면 남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이것이 사랑이에요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의 에너지를 자기가 아닌 그 무엇에게 다 주어 버렸어요
그래서 마지막에 남은것은 허물 밖에 없어요
불면 날아갈 것 같아요
아무것도 안 남아 있어요
무엇을 위해서?
프루스트에게 그건 작품이에요
버지니아 울프에게도 그것은 작품이에요
벤야민에게는 역사에요
바로 그것이 사랑입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것을 추한 것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서 남김없이 다 줘 버리고 남게 되는 건 무엇이냐
추입니다
그래서 미인이 그 아름다움 속에 약속 되어 있는 행복을 추구하게 되면 마지막에 추녀가 된다는 것이죠
그런데 이 추가 아름답지 않습니까
사랑은 운명이에요
자기를 지키려 하는 사람이 자기를 아름답게 만들려고 하는 사람 자기에게 소명으로 주어진 아름다움을 잘 보존 하려는 사람은 사랑을 할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그 사랑의 운명이 뭐예요
나중에는 추가됩니다
아도르노는 그것을 현대 예술 혹은 현대음악으로 설명했고 저는 역사 속에서 남달리 사랑이 강렬했던 사람들의 마지막 얼굴로 얘기했습니다
​새롭다는 이유만으로 오래된 사랑을 끝나게 만들 권리가 그 새로움에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