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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지혜를 찾아서/인문학 산책

상처로 숨쉬는 법(김진영) - 제17강. 우둔함과 사치

by 굼벵이(조용욱) 2022. 3.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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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7강 우둔함과 사치
​우둔함에 대해서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눠서 얘기해 보겠습니다
하나는 의학의 문제 또 하나는 투사의 문제를 얘기해 볼 수 있고 또 하나는 폴리페서 문제입니다
​아이가 자기가 어디서 왔냐는 기원을 물어보는 것은 근본적으로 성적인 터부의 영역이 아니라 쾌락의 영역일 수 있다는 거예요
쾌락의 영역은 우리가 정의 내리기 나름이지만 프로이트식으로 얘기하면 자아가 없는곳이죠
이것은 육체가 그 어떤 터부에 의해서도 구속 되지 않았던 상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오르기 상태, 카프카식으로 얘기하면 혼음 상태죠
이 영역은 사회적으로나 교육적으로 금기시 되는 영역이에요
​그런데 아이들은 왜 그것을 알고 싶어 할까요
어떤 기억 작용 때문이라 볼 수 있어요
자궁 속에 들어가 있던 어떤 상태, 모든 구속이나 제도나 규율로부터 해방 되었던 상태에 대한 기억이 그 질문을 만들 수 있다는 거죠
​이렇게 보면 아이들의 첫번째 질문은 호기심보다는 무의지적 기억을 통한 쾌락의 충동이 들어가 있는 거예요
프로이트식으로 얘기하면 죽음 충동이죠
죽음은 에고가 없는 영역이기 때문에 그것이 동시에 쾌락 충동이기도 하잖아요
​원래 상처 입은 사람들이 머리가 좋아져요
지나치게 보호 받고 자란 사람을 보면 약간 멍청한 데가 있죠
머리가 좋아질 계기가 필요 없어요
그러나 난관을 만나고 그것을 돌파하려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머리가 더 좋아지는 거죠
그래서 의사가 유능하게 컸는데 결과적으로 보면 우둔하단 말입니다
의사가 ​담배의 해악이다 뭐다 하면서 자기가 알고 있는 분야에서만 모든것이 결정되는 방식으로 사안을 처리하려 할 때 그것이 바로 우둔 함이죠
​첫번째 질문을 했을때 엄마에게 거절 당해요
거절 당하고 나서 아이가 여러번 얻어 맞고 나서 아 이건 물어보는 게 아닌가봐 하고 포기 된 부분이 무엇이에요
이부분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상처로 남는다는 거죠
수술 자국처럼 남아요
아이의 육체 속에는 계속 남아있어요
​거기서 원한 관계가 생기고 복수심이 생겨요
​상처 받은 것에 대한 복수심 바로 이것이 우둔함을 만들어 내요
​남의 어려운 일을 도와 주는데 자기를 쏟아 부은 사람들은 정직성과 성실성이 있습니다
어려움을 겪어도 외부의 유혹에 시달리지 않고 자기 길을 쭉 간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정직성이나 성실성이라고 부르죠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어떤 경우에 보면 바보처럼 된다는 거예요
폴리 페서가 된다든지 공천을 받는다든지 해서 정치로 건너가서 하는 행위들을 보면 참으로 우스꽝스럽게도 정직성이나 성실성 같은 자기 원칙을 스스로 배반해 버린 다는 거죠
​공부만 하겠다는것은 진리에 대한 사랑과 자신의 의무를 추구하는 일이기도 하겠지만 어떤 의미에서 보면 세상으로부터도피하는 것이기도 하지요
​동시에 자신이 살아오면서 당했던 일들에 대한 저항으로 나타나는 원한 관계일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봤을때 그들의 정직성과 성실성은 근본적으로 무엇입니까
자기 생존법의 하나이고 그 생존법을 통해 자기를 유지해 나가는 방식이라는 것이죠
이렇게 되면 정직성과 성실성 속에는 알게 모르게 사기성이 끼어 들게 돼요
무엇인가를 성실히 하는 것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또 다른 방식으로 자기를 유지해 나가기 위한 원칙을 가면으로 쓰고 있다는 것이죠
유능함이라는 것의 근본적인 작동원리가 있어요
첫번째 질문을 하지 않는 것이죠
그리고 이 첫번째 질문에 대해서 원한 관계를 가지고 이후에 주어지는 삶의 방식을 따라가는 일일수도 있다는 거예요
말하자면 이들이 성실하고 정직하게 나름의 원칙을 가지고 사는 일은 끊임 없이 첫번째 질문에게 타격을 가하는 일이고 자기를 수술하는 일이라는 것이죠
​딱딱해진 육체나 딱딱해진 이념은 부드러움을 잃어버린 것이에요
그렇게 되면 여러가지 상황들을 부드럽게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없어져요
그 능력이 없어지면 이상하게 섬망 상태에 빠져요
뭐가 뭔지를 모르게 된다는 거죠
​시대와 개인이 충돌 했을 때 마지막으로 상처 입는 건 개인이에요
​잘 살아야겠다는 이념의 부담을 자꾸 나의 육체로 떠 넘기면 안돼요
그 육체가 나중에 복수해요
이념을 섬망으로 만들고 유능함을 우둔함으로 만들죠
​객관적 권력의 시스템은 첫번째 질문을 금지 시켜요
말하자면 사람답게 사는 것 생을 충족적으로 사는 것을 금지 시키고 그 다음부터는 유능하게 살도록 세상을 만들어 놨어요
그런데 유능하게 살려는 사이에 우리는 이렇게 자유를 잃어 버리고 딱딱하게 된다는 거죠
이 불행한  변증법, 강요된 삶의 변증법 안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사실 없어요
​여행은 근본적으로 해방에의 충동이죠
​더 이상 이런 삶을 살고 싶지 않다는 충동이에요
​고대 로마를 보면 여행지의 숙소는 거의 유곽과 동일한 것이었어요
매춘이 이루어지는 장소만이 아니라 어떤 은밀성이 보장되는 장소로서의 의미도 가지고 있어요
​유곽이라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 사랑과 은밀성이 보장 되고 사건으로 열릴 수 있는 공간이지요
​슈베르트의 가곡을 장소 개념으로 보면 주인공이 물방앗간에서 보리수 그늘로 옮겨 가는 과정이에요
물방앗간은 희망의 장소죠
거기에 가면 허락되지 않은 은밀성과 내밀성의 사랑이 있을 거야
여행 갈 때 다들 희망을 품고 가잖아요
그러나 쭉 이어져서 맨 끝에 도달하는 것은 보리수 그늘입니다
보리수 그늘은 슈베르트 나 밀러에게 죽음의 장소에요
물방앗간에서 보리수 그늘로 건너가는 것 이 가운데 방랑과 여행과 사랑이 있지만 결국 이 방랑의 끝에서 좌절이 있고 죽음의 장소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죽음은 수많은 꿈들이 함께 있는 곳입니다
숙소를 찾아가면 그곳은 수많은 꿈들이 실현되는 장소가 아니라 무덤이 돼요
​여관에서 은밀한 성관계가 이루어져요
​이것은 이미 쾌락을 기억 하거나 지키기에는 너무도 지쳐버린 사람들이 서로 만나서 성의 이름으로 자기를 자해하는 절망적인 행위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무인 모텔은 사건이 사라질 뿐 아니라 사람이 사라지는 거예요
기계가 주인이 되는 공간 속에서 기계들의 쾌락일 수 있다는 거죠
​고급 호텔은 하나의 시스템입니다
들어갈 때부터 나올때까지 정해진 규율이 있단 말이에요
그리고 이 규율의 수행은 교환 관계를 따라 이뤄지게 돼 있어요
고급 호텔은 신혼부부가 결혼으로 도피 하거나 하고자 했던 바로 그 시스템이 가장 첨예하게 집중되어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는 것이죠
​취향은 '다름과 차이에 대한 열정이다'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이 열정은 곧 나의 독자성에 대한 열정이에요
나는 타자와 결코 공유할 수 없는 다름과 차이가 있다는 것이죠
이것에 대한 열정이 그 사람의 취향을 만들어 내는 거예요
그래서 취향은 사치스러운 것입니다
사치가 뭡니까
그 무엇에도 소용 되지 않는 거예요
쓸데가 없는 거예요
​사치스럽다 럭셔리하다는 것은 잉여입니다
​상류성의 본질적 정체성 중에 하나는 무관심이기 때문에 자기를 비교하지 않는 거예요
타자에 의해서 나를 인정 받으려고 하는 게 아니에요
스스로 자기를 인정하는 것이죠
이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자기 인정이라는것은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성격으로 건너가요
베풂으로 건너 갑니다
그것도 우월성 없는 베풂이죠
이것이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전통적으로 서구에서 내려오는 상류 계급의 자율성이고 취향이죠
그러나 오늘날 자본주의는 바로 이 취향이라는것을 시장화 해버려요
​자기에게만 중요한 사치라는 것이 없어요
그래서 아도르노가 얘기했어요
사치에서 사치가 빠져나간다
취향이라고 하지만 알고보면 무취향이다
이것이 오늘날 취향과 사치의 몰락이라 볼 수 있습니다
​보들레르의 중요한 캐릭터 중에 하나가 댄디즘입니다
​댄디는 유행의 첨단을 한발 더 나아가는 사람이다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지만 자기는 절대로 안 놀라는 사람이다
​그는 첨단을 달리고 있는 자신의 의상에 대한 혐오감을 가져요
더 현대적이고 세련 되며 사치스러운 것으로 가려 하는데 아직은 못 가고 있다는 결핍감에서 오는 거예요
랭보가 시인은 가장 아방가르드 해야 된다 했을때 대표적인 예가 보들레르에요
멋진 첨단의 옷을 입고 있으면서 멜랑꼴리한 표정을 짓고 있는 보들레르의 모습 그것이 스타일입니다
코디나 잘 했다고 스타일이 있는 게 아니에요
부정적 감각이 있어야 합니다
​권력이란 뭐냐 여러가지로 정의 내릴 수 있지만 아주 간단하게 말할수도 있어요
권력은 무취향이에요
권력자들은 엄청나게 사치스럽고 고급한 취향을 가지고 있고 정치적 권력이든 경제적 권력이든 문화 권력이든 그야말로 댄디들로 가득 찼으나 그들은 사실 알고 보면 취향 같은 거 없는 사람들입니다
취향이 없으면 개인이 아니에요
개인이 아니면 뭐예요
노예예요
그저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는 나사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