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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의 역사(용욱이의 내면세계)/2003

20031127 인사정책 전문가의 애환

by 굼벵이(조용욱) 2022. 6.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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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11. 27()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내가 핸들링하고 있는 여러 가지 현안사항 일체를 처장님께 말씀드렸다.

처장님은 K과장은 뭐하는 사람이냐고 물으셨다.

K는 자기가 승진추천 서열 일번인줄 아는데 천만의 말씀이라는 말씀까지 하셨다.

난 입이 막혀버렸다.

진실을 감출 수도 없고 거짓말을 할 수도 없고 괴롭다.

아마도 처장님은 나보다 더 괴로울 것이다.

끝말을 흐리며 솔직한 감정을 표현했다.

내가 고쳐서 쓰기에는 시간이 부족하고 그래서 차라리 내가 직접 보고서를 만들자니 너무 힘들다고 했다.

그는 처장님과 회복 불능의 상태까지 꼬여있는 듯하다.

그렇다고 나와의 관계가 좋은 것도 아니다.

내게 살살 눈속임도 잘해 신뢰를 잃었음은 물론 가뜩이나 바쁜데 보고서의 내용을 차마 고쳐 쓸 수가 없어 내가 직접 해버리니 그를 좋아할래야 좋아할 수가 없다.

산전 산후 휴가기간 연장(3개월6개월)에 관한 사장 지시사항에 대한 검토 보고서를 빠른 시간 내에 올리고 다음 주 월요일에 있을 확대간부회의에서 이를 발표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는 처장지시를 받고 불이 나게 검토를 시작했다.

우선 여러 가지 법률적인 문제점이나 장애요인 따위를 먼저 검토한 후 오후 4시쯤 처장님 방을 찾았다.

지금 시간이 몇 시냐며 늦었다고 역정을 내시더니 읽지도 않고 밖으로 나가버리셨다.

그러거나 말거나 보고서를 책상 위에 펼쳐 놓고 나왔다.

아니나 다를까 저녁 퇴근 무렵에 처장님이 내 자리에 오시더니

도대체 하라는 이야기야, 하지 말란 이야기야?” 하신다.

장기적으로는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지만 그만큼 이에 따른 장해요인이 있으니 이를 제거하지 않고 시행할 경우에는 많은 문제점이 따른다고 부언설명하였다.

아무리 사장 지시라 하더라도 할 수 없는 일은 할 수 없다고 이야기해야 한다.

인사정책 전문가에게 가장 어려운 일이 바로 정부 정책에 반하거나 불법 부당 불합리한 지시를 하명 받았을 때다.

당신도 판단에 어려움이 있는지 그 이후 다른 말씀이 없었다.

K과장이 검토를 마쳤다며 내게 가져온 성과측정 부문 평가에 대한 보고서는 역시 예상대로 고쳐 쓸 수조차 없다.

그걸 처음부터 내가 다시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담당과장들을 퇴근시킬 수는 없다.

짬뽕 한 그릇 시켜 먹게 하고는 저녁 9시가 넘도록 과장 두 사람을 붙잡아 야근을 시켰다.

낼모레 승진을 앞둔 최고참이 제대로 된 보고서 하나 만들 수 없다는 측면에서 그 자신도 답답하겠지만 내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 간다.

그는 하루종일 책상에 앉아 무언가 일은 하는 듯한데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겠다.

말은 청산유수다.

그의 말을 들으면 기지도 있고 박식한 게 모르는 것이 없어 보이는데 보고서는 도저히 고쳐 쓸 수조차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