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2. 14(토)
전무님에게 가 파견자 O와 만난 어제의 상황을 보고했다.
전무님은 충분한 협의 과정을 거쳤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도록 그들이 요구하는 대로 태스크 포스를 만들라는 지시를 하였다.
이를 처장에게 보고하니 처장은 발끈 화를 내며 그의 페이스에 말려들지 말라는 주문을 하였다.
그렇게 하려면 회사 측 태스크 포스는 완전히 맨투맨 식으로 파견자 개인별로 친한 사람을 찾아내어 한사람씩 매치를 하라는 주문을 했다.
몸에 전율을 느낄 만큼 그를 보좌하기 어렵다.
그는 겉으로는 늘 자기는 머리가 나쁘고 상대방은 머리가 좋다는 식으로 빈정거린다.
하지만 그는 부하든 상사든 그보다 잘난 사람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잘난 사람에게는 늘 마음을 주지 못하고 경계하며 이들을 이용하려고만 한다.
대신 그보다 못하여 맹목적 충성을 주특기로 살아가는 K부장 같은 사람들과 매우 친한 교분을 맺는 단점이 있다.
그의 주문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고 새로운 사장이 회사의 승진제도 개혁을 부르짖고 있으므로 사장이 오기 전에 먼저 선제공격을 하자고 했다.
지난번 내가 제안했던 신입사원 워크샵과 비슷하게 3,4직급 승진 대상자를 불러 모아 수안보에서 승진제도 개선 관련 워크샵을 개최하자고 하면서 검토서를 월요일날 보자고 한다.
주말에 나와서 쌔빠지게 일하란 이야기다.
갑자기 머리가 지끈거려 왔다.
진정사건 때문에 가뜩이나 골머리를 썩고 있는데 자꾸만 일을 벌려 놓고 모두 나보고 뒤치다꺼리를 하라니 미치고 팔짝 뛰겠다.
그러나 그의 생각이 맞다는 것을 인정한다.
인사제도가 그렇게 중요한데 왜 인사제도부를 없애버렸는지, 그렇게 중요한 인사제도 전담부서하나 제대로 만들지도 못하고 일할 사람조차 주지 않으면서 나보고 어쩌란 말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냥 꾹꾹 참고 넘겼다.
그래도 지나가는 말의 형식을 빌어 그렇게 중요한 인사제도부는 왜 없앴느냐는 항의성 푸념은 늘어놓았다.
그가 외롭게 혼자 식사하러 갈 것 같아 점심시간에 그의 방을 찾았더니 그는 G부장과 막 식사하러 나가고 있었다.
아무 말 없이 얼른 뒤돌아 와버렸다.
나는 그래도 그를 찾았는데 출근한 부장이라고는 나 하나 밖에 없는 것 알면서 같이 가자고 하면 안되나 싶어 마음이 조금 서운했다.
그의 마음속에 늘 나를 경계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아마도 나의 배신 가능성을 경계하는 것일 거다.
(하지만 결과는 당신 생각과 정 반대로 나타나 마지막까지 의심하고 경계했던 나 밖에 의지할 사람이 없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아마도 분통이 터졌을 것이다.)
KT과장 책상에 붙인 경구를 보았다.
삶이 그대를 속이더라도 미워하거나 슬퍼하지 말고 삶을 사랑하라는 글이다.
세상이 당신을 속이고 약삭빠른 사람들이 성공하더라도 정직하게 삶을 살라는 충언들인데 K처장의 그런 행각을 보는 순간 그런 경구들이 내 눈에 확대 되어 들어왔다.
나는 이런 이론을 'In spite of' Theory 라고 부른다.
의미가 서로 딱 들어맞는 것은 아니지만 반면교사와 비슷하다.
워크샵을 걱정하느라 토요일인 데에도 저녁 늦은 시간까지 회사에서 근무하다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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