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 조용욱(wooks@kepco.co.kr)
To : PYM(ooooo@freechal.com)
Sent : Thursday, Jul 28, 2005 03:45 PM
Subject : 선생님 전상서
오늘 아침 출근길에 敎大 정문 앞을 지나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얼른 집으로 전화를 걸었더니 큰아이가 아침밥을 먹다가 전화를 받길래 우산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아이가 가져온 우산을 펼쳐들고 교대 정문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저는 주로 전철을 이용하여 회사(삼성동)에 출퇴근하는데 교육대학 정문으로 들어가 후문으로 나오면 지하철 2호선 전철역에 쉽게 다다를 수 있습니다.
교대 안은 조용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우산으로 떨어지는 빗소리가 더욱 크게 들렸습니다.
‘똑.. 똑.. 또도독...’
아주 먼 옛날 생각이 났습니다.
산과 들을 지나 빗소리 들으며 학교 다니던 어린 시절 생각이 났습니다.
그 때는 대나무로 만든 비닐우산을 주로 쓰고 다녔는데 비닐에 떨어지는 빗물소리는 '딱..딱, 타다닥...'
훨씬 더 우렁찼었습니다.
비가 오는 아침에 애련하게 밀려드는 어린 시절의 예쁜 추억을 회상하며 길을 걷는데 쓰람이가 길가 숲에 떨어져 퍼덕거리며 ‘뚜...뚜...뚜...뜨’ 울고 있었습니다.
‘쓰람.. 쓰람’ 울어대는 쓰람이를 잡는다고 한여름 무더위도 마다않고 거미줄 매미채를 만들어 여기저기 매미 우는 나무를 기웃거리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그런 생각들도 잠시, 내가 좋아하는 ‘무대리’ 만화가 있는 “메트로신문”을 집어 들고 지하철에 올라 무대리가 연출하는 샐러리맨의 애환을 보며 씁쓸한 미소를 띠운 채 회사로 향했습니다.
지난번 대졸 신입사원 채용 때 면접을 보면서 조금 건방을 떠는 친구에게 지하철 신문 ‘무대리’를 보고 느낀 점을 한번 이야기 해 보라고 했더니 역시 기대했던 대로 무능하고 바보스러운 부분만을 이야기 해 좋지 않은 점수를 주었던 기억을 더듬었습니다. ........
아직도 비가 옵니다.
아이들을 생각하면 답답한 마음에 가슴이 아픕니다.
왜 아이가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커주질 못하는가!
내가 너무 기대가 큰가?
모든 게 나의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니 포기하자 싶어도 저 녀석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를 생각하면 더욱 답답한 생각이 듭니다.
선생님이 성적표 뒷면에 적어주신 편지를 보면서 그녀석이 아직도 계속 그렇게 정신을 못 차리고 방황하고 있는 것 같아 정말 답답했습니다.
그녀석 초등학교 때 연세대 교육대학원에서 실시하는 종합 지능검사에서 130을 넘는 IQ를 가지고 있어 조금만 정신을 차리면 되는데 갈수록 엉망인 삶을 살더군요.
성적표에 “가”가 3개씩이나 되고 전체적으로 보면 전교에서 완전 바닥권이더군요.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기 위해 지난번에는 호신이와 경신이(큰애 고2)를 데리고 생맥주집에 가서 생맥주를 마셨습니다.
술이라도 진탕 먹여놓고 그녀석의 가슴을 열어 그 무엇인가를 한번 찾아보겠다는 생각으로 시도해 보았던 것이지요.
결과는 영 아니었습니다.
깝쭉대고 1000CC를 30분도 안되어 마시더니 곧장 화장실로 가서 반납을 하고 말더군요.
그녀석이 술 마시고 나한테 한 이야기는 내가 직장에서 성공하기 위해서 필요한 사항들이었는데 ‘목민심서’ ‘탈무드’ 따위를 인용하면서 이야기를 하는데 정말 기도 안찼지만 차분히 앉아서 좋은 이야기 해 주어서 고맙다고 하고 언제 그런 좋은 책들을 읽었느냐고 물으니 아빠가 생일이나 크리스마스에 사다주신 ‘만화로 보는 목민심서’ 따위에서 보았다고 하더군요.
모든 욕심을 버리고 포기하려 했지만 속이 타들어 가길래 방학과 동시에 아이들을 독서실에 보냈습니다.
거기서 잠을 자든 글을 읽든 공부를 하든 멋대로 해 보라는 생각으로 일단 독서실로 보냈습니다.
물론 지키지 못할 것 뻔히 알면서 생활계획서를 작성하라고 했지요.
암튼 환경을 한번 바꾸어주고 무언가 몰입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면서 그런 방법을 썼던 것입니다.
집사람은 학원이나 과외 따위를 시키기를 원해 제가 “과외공부를 시킨 수학점수가 30점 밖에 안나왔는데 또 과외를 시킨다고?” 하면서 큰소리를 쳤더니 연약한 마음에 눈물만 흘리더군요.
그 이후 지금까지 집사람과 냉전입니다.
잘하는지 못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일단 저는 그런 결정을 내렸고 스스로 학습법을 터득하지 못하면 이다음 사회에 나가서도 아무것도 못한다는 생각입니다.
제가 잘못하고 있는 걸까요?
"The greatest thing in the world is to know how to be self-sufficient">
RE: 선생님 전상서
보낸 날짜 2005/7/28 22:57:17
보낸 사람 "PYM"<ooooo@freechal.com>
받은 사람 "조용욱"<wooks@kepco.co.kr>
안녕하세요?
무척 오랜만에 아버님과 연락을 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 그동안 아버님께 연락을 드리고 싶었지만 저도 아이 키우는 엄마라 아이에게 기회를 더 줘보자 하던 것이 이렇게 되었습니다.
저는 아직 아이가 초등학생이라 공부가 쉽고 아직 잘한다 못한다는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가 어려워 아이가 자율적으로 하도록 내버려 두고 있습니다.
가끔 제 기대를 충족시키기에 부족할 때가 있지만 아직 시간이 있어 나중을 기대하고 있는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호신이처럼 중 3학년이면 이제는 아이의 실력이 자리를 잡고 그 수준을 상향조정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다는 것도 잘 알기에 아버님의 걱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제가 아버님, 어머님 관계를 나쁘게 만든 장본인 같아 죄송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초등학교에 가보면 저도 저의 아이들 선생님께 저의 아이가 고쳐야 할 점을 말씀해 달라고 하면 무조건 칭찬만 하십니다. (집에서 단점이 보이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학교에서 하는 제가 알지 못하는 행동을 고칠 수가 있겠습니까?
칭찬은 고래도 춤을 추게 한다는 책도 있지만 저는 생각이 조금 다릅니다.
부모님들께 좋은 이야기만 해서는 아이를 똑바로 키울수가 없다고 생각하고 가정과 집에서 다같이 아이의 장단점을 알고 격려할 것을 격려하고 잘못된 것은 꾸짖어 고쳐 나가야 하지요.
아버님께서 얼마나 좋은 말씀을 아이에게 많이 해 주시는 것을 제가 알고 있기에 호신이 학습태도를 제가 솔직히 말씀드리면 너무 실망하실 것이 눈에 선해서 제가 호신이에게 기말고사 치기 전에 협박을 했지요.
너가 이런 태도로 계속하면 아버님에게 메일을 보내겠다고요.
호신이도 그때는 아버님의 실망하신 모습을 걱정했는지 열심히 하겠다고 지켜봐 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때 한 며칠은 정말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렇게만 계속 해 주면 좋겠는데 끈기가 없어서.
어른들 말씀에 자기 먹을 것은 가지고 태어난다고 하던데 호신이도 나중에 커서는 무슨 직업이든지 가질 것입니다.
다만 보통 부모님께서 당신들보다 더 나은 직업을 가졌으면 하는 기대감에 아이에게 많은 기대를 가져서 아이가 하는 행동이 마음에 안차시지요.
호신이는 성격이 누구하고나 잘 어울리고 적응력이 뛰어납니다.
아버님께서 걱정하시지만 장점을 봐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미 늦었지만 공부를 호신이에게만 맡겨 놓으시지 마시고 체크를 좀 해 주십시오.
호신이는 혼자서 알아서 공부하는 스타일이 아니니 이제라도 독서실에서 한 학습량을 구체적으로 물어보시고 저녁에 같이 아버님께서는 옆에서 신문이나 책을 읽으시고 잘 하면 또 맛있는 것이라도 사주시면서 격려하시면 어떨까요?
호신이가 저에게 섭섭해 하겠네요.
방학 때 열심히 공부해서 달라진 호신이 모습을 기대해 봅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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